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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한해 200조원 달하는 ‘공공조달’ 선진화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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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원희 한경대 총장

이원희 한경대 총장

우리나라 공공조달의 규모는 200조원에 육박한다. 국내총생산(GDP)의 9%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런데 그 규모가 무색하게 그간 우리 사회에서 공공조달에 대한 주목도는 그리 높지 않다. 공공조달을 물품을 구매하는 단순 집행 업무로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구매는 필연적으로 시장에 영향을 준다. 이에 많은 국가가 공공조달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 영국은 탄소중립, 사회적 가치 평가를 우선하는 조달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기술혁신 솔루션을 공공부문이 먼저 구매하도록 촉진하고 있다. 공공구매력을 산업정책, 혁신, 환경, 외교 등에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최근 조달청은 공공구매력을 바탕으로 미래 신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수출 확대 등 국가정책을 뒷받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공공조달이 성공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먼저 공공조달에 관한 기본 법률의 제정이 필요하다. 조달사업법은 조달청이 직접 수행하는 조달사업만 규율하고 있을 뿐, 그 외 139조원의 공공조달은 사각지대에 있다. 많은 특례제도들이 열 개도 넘는 여러 법령에 산재 되어 중구난방으로 자리하고 있다. 공공조달의 기본원칙과 입법기준을 세우고, 이를 체계적으로 통합·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의 수립은 필수적이다.

두 번째는 글로벌 표준과 트렌드에 맞게 공공조달제도를 선진화하는 것이다. 최근 잼버리 사태나 LH철근 사태에서 나타난 조달과정의 실책은 조달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미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공공조달에 민간쇼핑몰을 활용하는 등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혁신을 만들어가고 있고, 기업책임경영(RBC) 강화 등 국제 공공조달 규범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존 관행들을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다음으로 조달정보원과 같은 전자조달 전담기관을 설립하여 공공조달의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조달청은 2024년 한층 더 정교화되고 복잡해진 차세대 나라장터 개통을 앞두고 있고, 2027년까지 25개 개별 기관의 자체조달시스템을 나라장터로 통합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전문적으로 발전시킬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

1961년 설립 이후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조달청은 이제 미래 신산업 견인의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면서 전략적 국가 조달을 기획하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공공조달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기 혁신을 추진하기를 응원한다.

이원희 한경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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