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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 뱃속 아이 잃은 엄마…"美 못믿겠다" 한국을 찾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1일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자궁경부무력증 클리닉 25주년 기념 행사에서 이근영 산부인과 교수(가운데)가 산모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지난 21일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자궁경부무력증 클리닉 25주년 기념 행사에서 이근영 산부인과 교수(가운데)가 산모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김슬기 씨는 6년 전 뱃속 아이를 잃었다. 자궁경부무력증이 이유였다. 자궁경부무력증은 임신 중기(15~28주)에 닫혀있어야 할 자궁 경부가 진통이나 자궁 수축 없이 열리는 질환이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않으면 유산이나 조산의 위험이 커진다.

 임신 26주에 양수가 터졌지만, 의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를 떠나 보냈다. 부부는 “미국보다 의료 체계를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한국에 왔다. 다시 임신을 시도했고 인공수정 끝에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자궁경부무력증이 또 찾아왔다. 또 다시 아이를 잃을 위기에 처한 부부는 수소문 끝에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자궁경부무력증 클리닉을 알게 됐다. 이곳서 자궁경부봉합술을 받은 뒤 무사히 딸을 출산했다.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자궁경부무력증 클리닉은 김씨 같은 자궁경부무력증 환자를 25년간 봐왔다. 대학병원 중 유일하게 자궁경부무력증 클리닉을 운영한다.

 병원 측은 지난 21일 ‘25주년 기념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고 김씨를 비롯해 이 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이겨낸 산모와 아이들 80여명을 초대했다고 밝혔다. 고위험산모신생아집중치료센터장인  이근영 교수(산부인과)는 “건강하게 회복한 산모와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무척 반갑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산모들은 자궁경부무력증을 극복하고 출산에 성공한 경험담을 나눴다. 김슬기 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고위험 산모 치료가 더 발전하길 바란다며 5000만원을 병원에 기부했다.

 이 클리닉을 통해 그간 6500명의 태아가 살았다. 1998년 이 교수가 국내 최초로 자궁 밖에 빠져나온 양막을 모두 살리며 응급 자궁경부봉합술을 성공한 뒤 환자가 몰렸다. 클리닉에선 ‘복식자궁경부봉합술(TCIC)’도 850례 시행했다. 복식자궁경부봉합술은 배를 열고 자궁을 꺼낸 뒤 양막과 혈관 사이를 뚫고 들어가 자궁 경부를 묶는 방법인데, 출혈과 양막이 터질 위험이 있어 초고난도의 수술로 여겨진다.

임신 관련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임신 관련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A씨는 첫 임신 때 자궁경부무력증으로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다시 임신하게 된 뒤 이근영 교수를 찾았다. 이 교수는 “자궁이 두 개인 자궁 기형 산모였고, 임신 도중 여러 문제가 있을 게 눈에 보여 TCIC를 권했다. 굉장히 긴장하고 수술을 했는데 다행히 잘 됐다”고 설명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는데, 19주에 또 위기가 찾아왔다. 조기 진통이 온 것이다. 임신 중 위험한 상황이 올 거란 이 교수의 예측이 맞았다. A씨는 100일 넘는 시간을 고위험 산모실에서 버틴 뒤 지난 2월 32주차에 응급 제왕으로 출산했다.

 A씨는 “병원에서 권유해준 TCIC를 통해 자궁을 단단히 묶지 않고 간단한 맥도날드 수술(질을 통한 수술)을 했다면 100일 넘는 조기 진통을 견디며 아이를 품고 있었을까 싶다”며 “교수님 등 의료진께 감사하다”고 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산 산모 중 자궁경부무력증 케이스가 많다. 자궁경부무력증을 해결하는 게 조산 극복의 중요한 길목”이라고 강조했다. 임신 37주차가 안 돼 출산하는 걸 조산으로 보는데, 조산하는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6일 연구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에서 태어나는 아기 10명 중 1명이 조산으로 출생한다”고 밝혔다. 국내 조산율도 지난해 기준 9.8%로 매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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