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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빚 갚아야 해 암울" 2030 우울증 5년 새 배로 늘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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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호 10면

빚더미에 시름하는 청년들 

서울 명동거리에 붙은 대출 명함. [뉴시스]

서울 명동거리에 붙은 대출 명함. [뉴시스]

이정진(37·가명)씨는 7개월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고 있다. 증상을 느낀 건 1년 전쯤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업무를 끝까지 마치기가 어려웠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이씨는 “제대로 자지 못했고 잠이 들어도 계속 깨곤 했다”며 “한 달 내내 이런 증상이 이어지니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 했는데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는 받지만 대출 이자에 아이들 교육비까지, 걱정의 근본 원인인 빚더미가 해결되지 않으니 여전히 좋지는 않다”며 “이대로 평생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암울하다”고 덧붙였다.

“고립 동반 사회적 합병증 유발 우려”

지난해 국내 우울증 환자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2018년 75만2976명 대비 32.9% 증가한 수치다. 특히 2030 환자가 절대적으로도 증가하고 그 비율도 높아졌다. 20대 우울증 진료 인원은 18만5942명. 18.6%를 차지해 연령대별 최다다. 30대가 16만108명(16%)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2030 청년 34만 여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5년 전인 2017년 15만 여 명에서 2.3배 늘어난 수치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30은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나가야 할 세대인데 이들이 우울증에 계속 빠지면 우리 사회도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라며 “그 우울은 정체와 고립, 경직을 동반하며 사회적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 합병증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정명(35)씨는 “대기업·공기업 등 좋은 곳에 취업을 못하면 첫 번째 패배자가 되고, 집을 사지 못하면 두 번째 패배자가 된다”며 “하루라도 빨리 돈을 모아 집을 사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는 상황이라 무리해서라도 대출을 받았다”고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 같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실제 지난 1년여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로 늘어난 부채 규모가 47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청년층이 진 빚은 133조원을 넘어서 전체의 30%에 육박한다. 청년들은 집을 사는 데 가장 많은 빚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동안 75조4604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8조4888억원의 신용대출도 더해졌다. 주식 신용거래 46조890억원, 미수거래 3조7709억원으로 빚투를 위한 부채 또한 적지 않았다. 신규대출액이 늘면서 연체 또한 함께 증가했다. 2030세대의 올해 7월 연채액은 4940억원으로  작년 연체액인 3524억원에 비해 1416억원의 증가세를 보였다.

권 교수는 “꼭 우울증 진단을 받지 않더라도 그 직전에 있거나 심각한 우울감에 빠져있는 2030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우울증 진단을 받은 2030세대(34만명)에 이런 ‘위험 단계’와 ‘숨은 환자’까지 더하면 4~5배 수준으로 폭증할 것이라고 권 교수는 추정했다. 약 130만~150만 명에 이른다는 말인데, 2021년 기준 2030세대 인구가 1343만명임을 감안하면 청년 열 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을 앓거나 고위험군이라는 것이다. 권 교수는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권 교수는 경제 문제를 청년 우울증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우울증을 겪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경제 문제와 얽혀있다는 것이다. 그는 “취업도 포기하고 집도 포기하는 등 흔히 말하는 N포 세대가 지금의 청년들”이라며 “경기는 안좋고 미래는 불확실 하니 우울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노동-대출-부동산’이란 연쇄고리 속 청년들의 소득 격차는 선명한 계급 격차로 이어진다. 6개월전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는 이상훈(34)씨는 “지금 아니면 영영 집을 사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다”며 “그런데 금리가 오르고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달에 나가는 이자만 1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누구는 아무 노력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물려준 집에서 잘사는데 나같은 일반 시민은 아등바등해서 간신히 집 한 채를 마련하고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며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와서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계급이 따로 있다는 것을 느끼고 박탈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사회적 계급 격차로 인한 청년층의 박탈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하게 만든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2 자살백서’에 따르면 상대적 박탈감이 청년층을 극단적 선택으로 이끄는 주된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보건복지부 연구팀은 ‘상대적 박탈감이 클수록 자신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고, 이는 다시 사회적 고립감을 높여 극단적 선택 위험성이 커진다’는 가설에 대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거의 대부분의 자살자가 우울증을 겪는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 보건사회연구학술지에 오른 ‘같지만 다른 그들, 청년:성별 자살생각과 자살시도 영향요인의 탐색 연구’ 논문에 따르면 만 20~39세 청년 1012명의 42.1%(430명)가 지난 1년 내 극단적 선택을 고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감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경험이 있다는 20대 김우연씨는 “취업도 잘 안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겹치니깐 오히려 죽는게 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느 순간 내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이 생각으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80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 시도자 2만6538명을 분석한 결과 20대 27.9%(7400명), 30대는 13.6%(3607명) 등으로 집계됐다. 극단적 선택으로 응급실을 찾은 10명 중 4명이 2030인 셈이다.

경제적 문제 뿐 아니라 코로나도 청년 우울증의 유의미한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 주변 환경이 비대면으로 변화하면서 일, 학업과 휴식 간 경계가 사라지고 코로나 이전 대비 오프라인 환경에서의 움직임과 긍정적인 정서 교류가 감소했다”며 “굉장히 제한된 공간에 고립되면서 우울감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코로나  상황은 수그러들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이 현재 심화하고 있는 것은 시간 차를 두고 나타나는 ‘심리적 후유증’ 때문이라고 임교수는 전했다.

회복탄력성 훈련·안전망 확보 필요

경제 문제와 코로나로 취약해져 있는 청년들에게 소셜미디어(SNS)는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시시각각으로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연예인이든 엄청난 부자들이든 다들 어떻게 사는지 SNS를 통해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그 확산 정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큰데 2030세대의 경우 SNS에 담긴 다른 사람의 좋은 모습들만 보면서 자신과 끝없이 비교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SNS를 모두 삭제했다는 이은진(32)씨는 “휴대폰에 앱 이용시간이 뜨는데 인스타그램만 하루에 5시간을 넘게 했더라”며 “매번 해외여행을 가거나, 좋은 집에 사는 친구들을 보며 질투하는 스스로가 구차해서 SNS를 아예 안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다만 2030세대의 우울증 진단 증가 원인이 정신과 진료 문턱이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권준수 교수는 “이전에는 정신과에 다니는 것이 남들에게 알려질까 봐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우울 증상이 생기면 병원에 도움을 청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라며 “자신의 우울감을 깨닫고 적절한 치료를 찾는 젊은 층이 많아졌다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적으로는 회복 탄력성을 높이려는 훈련이, 사회적으로는 안전망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명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며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한다”며 “사회적으로는 안정적인 주거 대책과 연금개혁 등 다양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SNS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곽 교수는 “SNS 서비스 제공자들도 자신들의 서비스가 청년들의 박탈감과 위화감을 조장하는 데 쓰이길 바라진 않을 것”이라며 “과도하거나 허위적인 게시물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정작용이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정해 두려는 논의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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