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화계에서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흥행을 기록한 영화로는 ‘스즈메의 문단속’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한국 관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인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은 재난 3부작의 최종편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인 스즈메가 규슈부터 고베·도쿄·도호쿠까지 과거 큰 재난을 겪었던 지역을 돌며 재난의 문을 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문을 닫는 영화’인 셈이다. 감독은 이 순례의 과정을 통해 재난의 아픔을 딛고 치유의 길을 모색하고자 했고, 여기에 감독 특유의 서정적인 비주얼이 더해지면서 보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무려 555만 명이 극장을 찾은 가운데 올해 흥행 순위에서도 ‘범죄도시3’ ‘엘리멘탈’에 이어 당당히 3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스즈메는 문을 닫아 재난 막았지만
선거에선 문을 열어야 승리하는 법
문단속은 최근 포스트시즌이 한창인 프로야구에서도 큰 화두 중 하나다. 아무리 8회까지 앞서 있어도 9회 마운드에 오른 세이브 투수가 역전을 허용하면 한순간에 패하고 마는 게 야구다. 더욱이 144경기를 치르는 정규시즌과 달리 3~4승으로 1년 농사 성적표가 좌우되는 플레이오프에선 단 한 번의 역전패가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어느 감독이든 가장 구위가 좋고 강심장인 투수에게 9회 마무리 문단속을 맡기는 이유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다 좋게 받아들여지는 건 인생도, 야구도 매한가지다.
여의도 정치권도 문단속에 한창이다. 문제는 최근 여의도의 문단속을 보면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집토끼 단속에만 혈안인 게 치명적 허점이다. 보수·진보·중도층이 각각 30%대로 삼분화돼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간단히 산수를 해봐도 집토끼만 챙겨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옴에도 여든 야든 강성 지지층에만 의지한 채 선명성 경쟁만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선 아무리 문단속을 한들 여기저기 사방에 뚫린 구멍으로 민심이 계속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여야 모두의 비호감도가 60%를 넘나들고 정당 지지율도 30%대에서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한 건 여야 고정 지지층을 제외하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중도층이 정치권 전체에 등을 돌린 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자동차가 마주 달리는 치킨 게임처럼 사생결단으로 맞붙는 한국의 극단적인 정치 현실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던 유권자들마저 ‘호의가 계속되니 당연한 권리인 줄 착각하는’ 정치권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재난이나 야구는 문단속이 중요하지만 정치는 문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문을 열어놔야 새로운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야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환기가 되지 않은 방에 3년 넘게 갇혀 있는 유권자들은 퀴퀴한 냄새에 얼마나 화가 치밀어 있겠는가. 다음 총선에서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겠는가. “선거는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라는데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의 심판이 어디로 향할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 아니겠는가.
경제가 시장을 이기지 못하듯 정치는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 강을 버려야 바다가 되고 꽃을 버려야 열매가 되듯 한국 정치도 문단속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편견과 관습부터 버려야 비로소 정상화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선 문을 닫아야 재난을 막을 수 있었지만 여의도의 문단속에선 반대로 문을 최대한 열어둬야 더 큰 재난을 피할 수 있다. 선거는 민심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겸손의 문, 포용의 문을 ‘먼저’ 여는 쪽이 늘 승리해 왔다. 내년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박신홍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