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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승용차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도심(都心)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구루와 목민관 대화] 도시 전문가 박용남 소장과 강기정 광주시장이 말하는 ‘걷는 도시 광주’

■“기후 문제, 도시 문제 해결은 승용차에서 사람을 내리게 하는 것”
■“주차장 한 면 조성비 1억원… 차량 없는 공공주택 입주자에 인센티브”
■“지방 교통 연결망이 붕괴하면서 지역 소멸도 가속화 추세”
■“지방정부 재정의 일익 담당하는 지역 공기업 육성, 한국은 왜 못하나”

10월 12일 전통 한옥과 서양식 건축이 공존하는 광주광역시 동구 인문학당에서 대담을 가진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왼쪽)과 박용남 지속가능도시 연구센터 소장.

10월 12일 전통 한옥과 서양식 건축이 공존하는 광주광역시 동구 인문학당에서 대담을 가진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왼쪽)과 박용남 지속가능도시 연구센터 소장.

광주광역시는 2000년대 들어 폭염과 열대야 증가율에서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체감온도를 좌우하는 습도마저 치솟아 ‘광프리카(광주+아프리카)’ 별칭마저 따라붙었다. 광주광역시가 지난 6월 ‘가뭄·홍수·폭염 안심 도시 광주 추진 계획’을 발표한 것도 극단의 날씨가 주는 피해의 심각성을 절감한 탓이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시민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정량이 나날이 증가하는 이 도시의 활로를 ‘기후회복력’ 확보에서 찾는다. 기후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고, 충격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하는 광주를 만들겠다는 것. 그 일환으로 도심 교통과 건축 구조를 시민 친화적으로 재구성하고, 생태 도시의 면모를 갖추는 데 주력한다. 이를 통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강 시장의 시정 목표이기도 하다.

기후회복력 강화의 액션플랜을 고민하던 강 시장은 최근 한 도시 전문가의 책을 접하곤 새로운 세계가 활짝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원하던 도시의 미래가 마치 눈앞에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로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의 [기적의 도시 메데진]이 그것이다.

생태 도시 전문 연구자이기도 한 박 소장은 이 책에서 인간과 도시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기후위기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콜롬비아의 도시 메데진의 변모 과정을 추적했다. 메데진은 한때 세계 마약의 수도이자 세계 코카인의 70% 이상을 공급해온 ‘범죄 도시’였다. 그랬던 도시가 20여 년의 변신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 건축물과 시민 친화적인 교통의 도시로 부활했다. 메데진은 나아가 도시 전역에 식물 네트워크를 구축, 도시의 열섬 효과를 줄이는 등 생태 도시의 대명사로도 주목받았다고 박 소장은 말한다. 강 시장과 박 소장은 10월 12일 광주광역시 동구 인문학당에서 만나 지속가능한 광주의 미래상에 관한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두 분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된 건 어떤 연대감 같은 게 동력이 된 듯합니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_ “광주는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위기 상황에서 혹독한 고통을 겪는 도시입니다. 가뭄(2018년), 폭염(2020년), 홍수(2022년)가 줄을 이었죠. ‘이대로는 안 된다’, ‘기후변화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던 가운데 박용남 소장님의 근저(近著) [기적의 도시 메데진]을 만났습니다. 콜롬비아 마약 도시 메데진이 혁신도시로 거듭나는 과정을 접하면서 뭔가 확 꽂히는 기분이랄까요, 광주의 미래를 본 느낌을 받았지요.”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_ “사실 저는 강 시장과 일면식도 없는 관계예요. 2001년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펴낸 뒤로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을 알게 됐지만, 강 시장은 지난해 취임한 터라 따로 인연을 맺을 기회가 없었지요. 생각지도 않게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강 시장은 광주를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에서 창의적인 정책을 입히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더군요. 그렇다면 제가 소개했던 메데진이나 꾸리찌바 같은 케이스가 중요한 모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2026년 이후 광주 승용차 억제 정책도 가능”

메데진이 갖는 특성이 광주의 정체성과 오버랩되는 분야를 짚는다면?

박 소장_ “둘 다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형태의 아픔을 공유하는 도시니까요. 광주는 5·18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자들을 낳았고, 메데진은 한때 마약 관련 범죄로 인해 하루에 수십 명이 총에 맞아 숨지는 쓰라림을 안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마저 마약 카르텔에 동원되다 보니 이웃과 맘 놓고 얘기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도시의 공론장은 철저하게 파괴된 적도 있어요. 이런 지역을 한 20년 동안 시장과 시민이 노력해 혁명적 변화를 일궈냈으니, 우리가 다각도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메데진이지요.”

강 시장_ “저는 1980년대 5·18 광주를 경험한 세대입니다. 어쩌면 5·18 때문에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정치권으로 오게 된 것이죠. 광주는 민주주의의 심장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시장에 취임하고 보니 민주주의 심장치고는 광주가 너무 어수선한 겁니다. 빌딩은 무질서하게 치솟고, 도로는 승용차로 미어터지고 있어요. 이런 구조가 도심의 열섬 현상을 부르는 한 원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는 시민을 위한 도시라고 할 수 없지요. 도시 행정, 도시 개발에 일대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지금 광주 도심에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나요?

강 시장_ “제가 취임할 당시 광주 도심 건축물에는 용도별로 몇 층, 몇 층 하는 식으로 층수 제한만 뒀더군요. 높이와 용적률만 맞추면 디자인이나 경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허가를 내줬습니다. 저는 지역 특성에 맞는 경관과 조화를 이루거나, 친환경 녹색 기능을 강화한 건축물에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어요. 예컨대 층수 제한을 없애 용적률을 높이거나, 인허가 속도를 당겨 사업에 속도감을 불어 넣어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현재 승용차 중심으로 짜인 교통 체계 또한 대중교통 및 보행자가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를 주고자 합니다.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는 2026년쯤에는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더 활성화되겠지요. 이때쯤 승용차 억제 정책을 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메데진의 교통수단 1번은 뭔가요?”

박 소장_ “걷는 것이지요. 보행이 중심이 되는 도시가 메데진입니다.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는 네 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의자형 모델’과 같은 도시입니다. 첫 번째는 걷고 싶은 도시입니다. 자동차를 타건, 지하철을 이용하건 처음과 끝은 다 보행으로 귀결되지요. 궁극적으로 사람이 걷기 편한 환경이 최고입니다. 두 번째는 자동차 중심에서 자전거 중심으로의 전환입니다. 그러자면 자전거 이용의 편의성, 안전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해야겠지요. 세 번째는 재정 여건과 능력에 맞는 첨단 대중교통 체계 구축입니다. 세계의 주요 대도시는 기본 철도 기능을 갖추고 있고, 버스의 경우 전기차 등 친환경, 탄소 중립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광주가 폭염, 홍수, 가뭄 등을 대처하자면 친환경 에너지 활용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쪽으로 구조 개편을 해야 할 겁니다. 네 번째가 공원과 공공도서관 같은 공공시설 확보입니다. 이 네 가지 기둥 위에 도시가 설 때 시민 삶의 질이 좋아집니다. 이런 게 미비한데 경제적으로만 잘산다고 해서 살기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없지요.”

강 시장_ “광주시는 민선 7기 시절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구현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단계별로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줄인다는 시나리오는 있지요. 그런데 그 시나리오를 실현 가능케 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미흡합니다. 이는 단지 광주뿐만 아니라 웬만한 광역 단위의 지방정부도 같은 실정일 겁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도시 기능의 구조 개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물과 교통 영역의 혁명적 인식 전환을 통해 도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죠. 이게 핵심입니다.”

“혼자 이동하는데 체중의 20배 넘는 자가용 동행?”

기존 광주광역시 교통 시스템을 고려하면 만만치 않은 도전 같기도 합니다만.

강 시장_ “지금까지는 되도록 넓은 길을 닦아 승용차가 더 많이, 빨리 지나게 하는 게 교통 정책의 근간이었지요. 그런데 길은 사람이 다양하게,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길이지, 자동차가 이동하는 건 길이(갖는 우선 기능이) 아닙니다. 광주시는 시내버스, 지하철, 외곽순환도로 재정 보조에 매년 2000억원 이상을 투여합니다. 자가용을 주로 이용하는 분들은 지하철·버스 서비스 질에 대해 불평하는 경우가 드물지요. 도시 정책 결정권자에 가까이 접근하는 분들은 아무래도 자가용을 이용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고, 그래서 도시의 교통 정책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이제 광주도 승용차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가 온 것 같다는 취지에서입니다.”

박 소장_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이제 승용차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아닌가 합니다. 제 체중이 약 70㎏ 정도 나갑니다. 중형차는 중량이 대략 1600㎏ 이상이라고 보면 제 체중의 20~30배 나가는 셈이죠. 제가 혼자 이동하는데 굳이 화석연료를 태워가며 20배 더 무거운 차량에 탑승하는 게 올바른 선택일까요? 기후변화나 도시 문제는 다 여기서 출발합니다. 자동차를 양산한 헨리 포드는 ‘달리는 궁전(자동차)’을 한 가구에 한 대씩 준다고 했는데 지금은 두 개, 세 개 이상의 궁전을 가진 가구도 적지 않아요. 한 집에 여섯 대까지 보유한 가구도 있더군요. 어떻게든 승용차에서 내리게 하고, 이용 자체를 줄이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풀 길은 없는 겁니다.”

강 시장_ “광주에서 공공 주차장 한 면(1대 주차 공간)을 만드는 데 1억원이 듭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모두 깜짝 놀라죠. 땅값에다 제반 비용을 더하면 그렇게 나와요. 이래서는 지속 가능성이 없는 거죠. 광주시는 상무 소각장을 폐쇄하고 그 인근 부지에 공공임대주택을 세우려고 합니다. 청년, 신혼부부 등 무주택자들에게 분양할 33평형 이상 아파트 400가구 이상을 계획하고 있지요. 입주 자격 요건으로 승용차를 주말에만 쓰고 평일에는 이용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이렇게 하면 지하 주차장 등 주차 면적은 최소화하고, 주민 생활 공간은 더 키울 수 있으니까요. 제가 주변에 얘기했더니 ‘그게 되겠느냐’고 하더군요. 더 자세한 자격 요건은 더 연구해봐야 하는데, 저는 한번 해보려고 해요. 주말에는 피크닉도 가야 하니까 승용차로 움직이지만, 평일에는 지하철·버스 등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외국은 왜 주차장을 줄이나

지난 4월 20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도로 열기를 식히는 스프링클러가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20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도로 열기를 식히는 스프링클러가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 소장_ “한국에서는 이게 새로운 시도지만 유럽 도시에서는 이미 많이 도입돼 일반화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주차장법’이 정한 주차장 최소 기준을 맞추고자 주차장을 계속 공급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외국은 오히려 주차장 상한선을 둬서 주차장을 줄이는 추세지요. 파리의 경우 주차장을 새로 만들지 않을 뿐더러 있는 노상(路上) 주차장도 없애고 있습니다. 센강 옆의 고속도로도 보행자 전용도로로 바뀌었지요. 세상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우리는 지금도 옛날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통의 질(質)은 좋아지겠습니다. 그런데 교통의 양(量), 즉 수요를 감당하기는 벅차지 않을까요? 자칫 시민의 교통 편익을 줄인다는 불만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박 소장_ “이제 도시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아져야겠지요. 자전거를 편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면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도 늘어납니다. 파리는 지난 10년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 줄였는데 이 중 상당량이 교통수단에서 나왔습니다. 프랑스의 과거 동영상을 보면 도시가 차에 절어 있어요. 지금은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합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좋은 도시를 못 만들어요.”

강 시장_ “‘RE100’은 사용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R’은 리사이클을 뜻하지요. 광주시는 ‘걷고 싶은 길 RE100’을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R’은 ‘회복력’을 뜻하는 ‘Resilience’를 말합니다. 차곡차곡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갈 과제입니다. 최근에는 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부터 전남대병원 오거리 왕복 2차선 구간을 370억원을 들여 왕복 5차선으로 확장하는 사업을 계획 중입니다. 여기서 차로를 왕복 3차선으로 줄이고, 2개 차로 크기의 보행로를 만드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요. 오늘 저희가 만난 동구 인문학당 인근의 도심 철도 폐선 부지를 시민의 의견을 받아 ‘푸른길 공원’으로 조성했습니다. 또 메데진의 시클로피아 같은 도심 자전거 타기 계획도 준비되고 있지요.”

광주시는 또한 미래 전략 산업으로 AI와 모빌리티 분야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생태적 도시 환경과 미래 산업의 유치 및 육성 전략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강 시장_ “광주는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금호타이어 등 300인 이상 사업장이 14개밖에 없습니다. 제조업이 취약한 편인데요 그래서 미래형 산업인 AI와 모빌리티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문화산업을 더해 광주 도시의 경쟁력, 삶의 질을 끌어올릴 각오입니다. 물론 교육, 연구개발, 음식, 광산업 등 기존 요소도 함께 융합되는 광주로 나아갈 것입니다.”

“지방시대위 4대 특구 여건 녹록지 않아”

광주시가 남구 백운광장에 건설할 건설 예정인 공중보행로 조감도. / 사진:연합뉴스

광주시가 남구 백운광장에 건설할 건설 예정인 공중보행로 조감도. /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지난 20년 가까이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역 불균형은 심화됐습니다. 역대 정부의 재원 투여 전략 및 방향설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강 시장_ “저출산 정책과 균형발전 정책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는데, 사실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정책이죠. 노무현 대통령 때는 행정 수도 이전을 추진했고, 혁신도시를 만들어 공공기관을 이전했습니다. 적어도 문제의식을 던지고 수도권이 더 이상 과밀화하지 않는 데에 기여한 것은 맞아요. 문재인 정부 시절엔 기획재정부가 하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통해 지방재정을 조금 늘렸지요. 하지만 결국엔 역대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자인해야 할 것 같아요. 정부는 ‘지역혁신중심대학지원체계’(라이즈) 사업이라고 해서 지자체, 대학, 기업이 협의하면 재정집행 권한의 50% 이상을 지자체를 통해 대학에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이 정책의 성공 여부가 관건이지요. 또 정부는 소득, 법인세, 부동산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기회발전특구도 제안했습니다. 이건 잘하면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반도체 특구, 첨단산업 특구를 시도해본 제 경험으로는 좀처럼 기회가 잘 오질 않더군요. 이게 다 나라의 무게중심이 수도권으로 쏠린 탓이죠. 인구 비례가 아닌, 동등한 지역 대표성에 기초한 상원을 신설하는 쪽으로 개헌해야 균형발전의 단초라도 마련할 것 같습니다.”

박 소장_ “어느 나라든 이런 문제로 고통을 다 겪습니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후진국은 후진국대로 지역 간 불균등 발전으로 속앓이를 하지요. 요즘 들어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많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가시적인 결과는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도 마찬가지겠지요. 역대 정부에서 계속 노력해왔지만 제대로 안 풀리고 있으니까요. 지방시대위원회에서도 4대 특구를 중심으로 중앙과 지방의 균형을 잡아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좀 더 지켜봐야겠지요. 성과를 거두기에는 여건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강 시장_ “대학입시학원, 고시학원, 병원, 기업까지 모두 서울 등 수도권에 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지방에서는 교육, 취업, 결혼,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불이익을 당해요. 서울은 비좁고 복잡하지만, 대중교통은 잘 연결되지 않습니까. 광주는 승용차를 갖지 않은 청년들이 이동하기에는 불편한 고장입니다. 여기서 부산으로 가자면 대중교통이라곤 고속버스밖에 없습니다.”

박 소장_ “공감합니다. 사람에 따라 지역 소멸 이유를 제각각 설명하겠지만 저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로 지역 간 교통 연결망의 붕괴를 들고 싶어요. 여기서 열차를 타고 대구에 간다고 쳐요. 직통 열차 편이 없습니다. 오송까지 올라가서 거기서 환승해야 대구행 열차를 타게 됩니다. 이는 역대 정부, 특히 국토교통부에 기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죠. 자가용이 대중화되다 보니 그저 넋 놓고 보고만 있었던 겁니다. 지역 간 교통 연결망이 붕괴하다 보니 인접 시·도, 시·군 간에도 교류가 점점 줄어듭니다. 여기에 인구마저 감소하면서 규모가 있는 기초지자체에서 조차 버스터미널이 사라지는 풍경을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 소멸은 시간문제 아닐까요? 지역 사람들끼리 교류를 안 하는데 어떻게 지역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박 소장께서 메데진이나 꾸리찌바를 혁신에 성공한 도시로 지목하셨는데요, 그 나라 중앙정부는 권한을 쉽게 내려놓던가요?

박 소장_ “콜롬비아나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대한민국보다 권한 이양이 비교적 잘돼 있는 편입니다. 여건이 우리보다는 더 나은 것이죠. 그래서 지방은 도시별로 창의적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합니다. 인재양성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했지요. 메데진시는 2004~2007년 투자 예산의 52%를 교육 관련 프로그램에 투자했어요. 사회적 인프라 구축과 정책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 한때는 계측과 추적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도시의 변화를 촉발하는 중요한 모멘텀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합니다.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겠지만 이런 시도를 빼놓고 혁신을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요. 생태 도시로 유명한 브라질 꾸리찌바도 보완 통화(通貨)를 개발하는 등 부족한 재원을 조달하는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었습니다.”

“중앙지방협력회의 건의 사항 결국 없던 일로…”

강기정 광주광역시장과 박용남 지속가능도시 연구센터 소장(왼쪽)은 도시의 물리적 구조 개선을 통해 시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과 박용남 지속가능도시 연구센터 소장(왼쪽)은 도시의 물리적 구조 개선을 통해 시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전국 시·도지사와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참여하는 중앙지방협력회의가 현 정부 들어 세 차례 열렸습니다. 지역 회생의 활력소가 될까요?

강 시장_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여러 가지 건의를 합니다. 예컨대 ‘부시장 임명권을 달라’, ‘실·국장 정원을 풀어달라’는 등의 요청을 했지요. 도시의 특성을 잘 살리자면 그에 걸맞은 인력 운용이 필수적이니까요. 그런데 중앙정부는 잘 응하지 않아요.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참석하는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는 해줄 것 같은 얘기들이 나오지만 나중에는 감감무소식, 없던 일이 되곤 해요. 행안부가 부시장, 실·국장 임명권을 꽉 쥐고 놓으려 하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기회발전특구에서 세제 혜택을 준들 잘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기업은 사업에 필요한 여건이 갖춰지면 오는 겁니다. 광주에 AI데이터센터가 곧 개장하지요. 데이터를 가지고 실증 사업을 하려는 기업 160개가 광주에 이미 왔습니다.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 특별회계’를 통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웹툰 등 문화 콘텐트를 생산하는 청년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기업이든 청년이든 막연히 법인세, 소득세 깎아 준다고 해서 오지 않아요. 인재를 공급하고 시장을 열어주면 ‘우리가 여기서 돈 많이 벌어 법인세 더 내겠다’고 나설 겁니다.”

박 소장_ “메데진에는 EPM이라고 에너지와 통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 산하 공기업이 있어요. 지금은 콜롬비아뿐 아니라 남미 전역을 무대로 사업을 해요. 메데진에서 창업할 당시 영업이익의 30% 정도를 메데진시에 제공토록 한 법이 만들어졌고, 메데진시는 도서관, 공원 조성에 부족한 재원은 여기서 충당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사례가 없는데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창의적인 시도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사회·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장정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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