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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이 흑자라고? 10분기 만의 '굿 뉴스'에도 우울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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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전 본사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전 본사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2021년 이후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던 한국전력이 10개 분기 만의 흑자 전환을 앞뒀다. 하지만 재무 위기의 늪에 빠진 한전의 경영 환경은 여전히 위태롭다. 전기요금 추가 인상 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주요 자금 조달처인 한전채의 발행 한도 축소가 확실시되면서 내년이 더 큰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가는 한전의 올 3분기 흑자 전환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전의 3분기 영업이익이 2조1000억원으로 시장 기대치(1조6000억원)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했다. 신영증권도 이날 보고서를 통해 3분기 영업이익이 8426억원을 기록할 거라고 내다봤다. 전망대로면 2021년 1분기(5656억원) 이후 처음 '플러스'를 기록하게 된다.

이는 한전이 전력을 손해 보면서 파는 '역마진'이 해소됐다는 판단에서다. 8월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전력 구입단가는 ㎾h당 149.1원, 판매단가는 166원으로 판매단가가 더 높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닥쳤던 지난해 8월(구입단가 179.7원, 판매단가 132.9원)과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문제는 3분기에 흑자가 나도 국제유가 상승, 고환율 같은 악재가 많아 한전의 연간 실적이 크게 개선되긴 어렵다는 것이다. 올 상반기에만 약 8조4000억원 영업적자가 쌓인 데다, 4분기 실적도 흑자를 장담할 수 없다. 전기료와 직결되는 'LNG(액화천연가스)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천연가스 가격은 공급 차질 우려가 지속하면서 상승 압력이 확대됐다"고 경고했다.

증권가에선 한전이 올해 7조원 이상의 순손실을 기록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신한투자증권은 "에너지 가격 등으로 4분기 이후 수익성 저하 우려가 크다"면서 한전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한전도 역마진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판매단가가 구입단가보다 최소 22원 높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21년부터 47조원 넘는 적자가 누적되면서 하루 이자 비용만 118억원에 달한다.

이러면 자금줄 역할을 해온 한전채부터 흔들린다. 지난해 글로벌 에너지 위기 속에 발행 한도를 '자본금+적립금'의 5배로 늘리는 한전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내년 자본금+적립금 규모는 적자 여파로 올해보다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증권가 예상대로 연간 적자를 7조원으로 가정하면 올해 104조6000억원인 발행 한도가 내년 70조원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달 기준 발행 잔액이 80조1000억원인 만큼 신규 발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법을 또 개정해 발행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추가 발행 대신 기존 한전채부터 갚아야 하는 셈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실제로 한전은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올해만 12조원 가까운 한전채(원화 사채 기준)를 새로 찍어냈지만, 7월 이후엔 5000억원만 발행했다. 발행 한도에 가까워지면서 자체적인 속도 조절에 들어간 셈이다. 한전 관계자는 "발행 한도 관리를 위해 재원 다변화를 추진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정감사서도 한전채를 우려할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19일 국감에서 "사채 발행 한도가 목에 차서 추가 발행이 불가능하다. 누적 적자·부채 속에 단기 운영자금 조달을 어떻게 하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전채 한도를 늘리는 법 개정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전은 최악의 경우 CP(기업어음)나 은행 차입금으로 운영 자금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는 사이 기자재·공사 업체 등 전력 생태계의 자금 압박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에 따르면 연말까지 전기료 추가 인상이 없으면 약 15조9000억원의 한전 판매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기준연료비 ㎾h당 45.3원 기준). 하지만 전기료 인상 논의는 미뤄지고 있다. 지난 5월 25조원 규모 자구책을 발표한 한전은 이르면 다음 주 추가 자구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희망퇴직이나 본사·사업소 조직 축소 등이 담길 가능성이 크지만, 노조 협의라는 고비가 있다. 산업부가 추가 자구책을 전기료 인상의 조건으로 건 만큼 그 후에야 요금 조정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회 관계자는 "아직 당정 협의 등 구체적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시내 주택가 외벽에 부착된 전력량계. 연합뉴스

지난달 서울시내 주택가 외벽에 부착된 전력량계. 연합뉴스

한국가스공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LNG 가격 급등 여파로 올해 6월 미수금이 12조2435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조6579억원 늘었다. 올 연말엔 13조원까지 불어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자금 조달을 위한 회사채 발행도 늘고 있다.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24일 국감에서 "사채 발행은 30조원 정도 했다. 일부러 CP와 (은행) 차입금으로 많이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이후 동결 중인 가스요금의 인상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최 사장은 "원가 보상률이 78% 수준이라 요금 인상은 필요하다"면서 "지금 정부와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국제 가스값이 출렁이는 만큼 전기료를 올리지 않으면 한전 재무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긴 어렵다"면서 "당장 내년 한전채 발행이 막히면 자금 조달부터 사면초가에 놓인다. 늦었지만 4분기 요금을 ㎾h당 25원 이상 인상해야 그나마 경영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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