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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월대 복원 그 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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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요즘 경복궁관리소는 기쁨의 비명을 지른다. 지난 15일 새 단장한 광화문 현판과 함께 100년 만에 월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평시 관람객이 대폭 늘어서다. 힙플레이스에서 인증샷 찍는 게 일상인 젊은 세대와 한복 차림 고궁체험이 ‘액티비티’인 외국인들이 특히 붐빈다. 서수상(상서로운 동물상)을 만지며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복원한 결과물을 놓고 볼멘소리도 나온다. ‘어도(御道, 임금의 길)’라고 해서 갔더니 단을 살짝 높였을 뿐 격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식이다. 월대 바닥에 박석(얇고 넓적한 전통 바닥돌)을 깔지, 흔한 황토를 발라놓았다고 애석해하기도 한다. “수년에 걸쳐 겨우 이걸 했느냐, 외국과 비교하면 볼 게 없다”는 질타 아래엔 21세기 대한민국의 국력을 뽐내고 싶은 욕망이 역설적으로 비친다.

최근 100년 만에 복원된 광화문 월대의 난간석 가장자리에는 보행 약자를 위한 경사로 입구가 만들어졌다. 강혜란 기자

최근 100년 만에 복원된 광화문 월대의 난간석 가장자리에는 보행 약자를 위한 경사로 입구가 만들어졌다. 강혜란 기자

문화재청의 답변은 고증에 바탕을 뒀다는 것. 1910년대 흑백 자료사진에 보이는 대로 흙길을 깔았다는 설명이다. 한때 박석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옛 기록에도, 발굴 흔적에도 없어 선택지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고루한 원칙론 같지만 고충도 이해 간다. 고증대로 하지 않으면 무슨 근거로 그리했느냐는 호통이 날아드는 게 문화재 복원이라서다.

그렇다고 융통성이 없진 않다. 월대에 깔린 황토는 예사 흙이 아니라 평탄하게 면을 고르면서 배수도 원활하도록 포장 처리한 경화토다. 비 온다고 진창이 될 리 없고 관리를 애먹이는 잡초가 자라지도 않는다. 문루 아래 홍예(아치형 구조물) 근처 경사로 입구도 돋보인다. 고증대로라면 난간석으로 둘러쳐야겠지만 휠체어·유모차 등의 이동 편의를 고려했다. 이 같은 ‘배리어 프리’를 고종 시대엔 생각도 못 했을 거다. 21세기의 복원이 19세기를 답습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격변의 시대에 훼철(훼손)됐던 것을 복원하자는 게 윗세대의 ‘프레임’이었다면, 요즘엔 복원한 다음에 어떻게 활용할까 콘텐트도 함께 고민한다. 고증과 경관도 중요하지만 결국 향유하는 문화 없인 지속될 수 없어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은경 과장의 말이다. 옛 모습을 살리되 현재적 의미를 고려하고 지속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누가 ‘왕조 시대의 유산’에 감격하겠는가.

월대 복원도 원래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라는 큰 그림 속에 마련됐다. 보행자들이 즐기기 좋은 600년 고도 서울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때아니게 굽은 차로를 차량으로 휙휙 지나치면서 보는 입장에선 밉살스러울지 모른다. 반면 광화문광장에서 쭉 뻗은 월대를 통과해서 걸으며 일직선으로 뻗은 경복궁 내 풍광을 감상하는 느낌은, 횡단보도도 없어 빙빙 둘러오던 때랑 확실히 다르다. 이 문화를 지속해서 향유하며 물려줄 의지가 우리 세대에 있는가. 월대 복원 이후 질문은 그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