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외제 로봇이 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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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고령화 사회 문제를 푼다?

유럽의 3대 로봇 연구소로 꼽히는 독일의 프라운호퍼 생산기술연구소(IPA)와 헬름홀츠 로봇 연구소, 이탈리아 성안나고등과학원 로봇연구소(ARTS 및 CRIM) 취재를 최근 다니면서 고령화 사회의 난제를 풀 열쇠가 의외의 곳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 연구소가 개발 중인 로봇은 노인들의 식사.세면.잔심부름 수발을 들고, 다리 관절이 허약한 노인에겐 보조대 역할을 해 계단을 오르내리게 했다.

이런 '실버 로봇'이 고령화 사회 문제도 풀고 날로 번창하는 실버 산업의 중요한 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감상이었다. 실버 로봇 연구비의 상당 부분은 유럽연합(EU) 차원의 '프레임워크 프로그램'에서 지원받는 걸 보고 부럽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유럽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다. 고령화 속도는 이미 구미 선진국의 선례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노인 복지와 로봇을 연결지으려는 노력은 유럽에 비해 크게 부족한 편이다. 우리나라 로봇 연구 프로그램은 '성장동력사업' '국민로봇사업' 같은 구호 아래 근래 활기를 띠고 있지만 고령화 쪽은 아직도 찬밥 신세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로봇 분야에서 복지와 재활 쪽이, 미국은 군사 로봇 쪽이 강한 편이다. 일본은 인간을 닮은 로봇(휴머노이드) 분야의 첨단으로만 알려졌지만 실제 국가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해 이런저런 분야에 두루 손을 대고 있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딱히 색깔 있는 로봇 정책이나 철학을 떠올리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로봇 분야의 연구개발비가 늘고 있지만 로봇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지 고령화 시대의 노인 건강.복지 같은 특정 수요에 대한 미시적 예측.대응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로봇 기술은 하루아침에 개발되거나 비약을 이루기 힘들다. 핵심 기술은 선진국이 쉽사리 넘겨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일찌감치 손을 대 일부 상용화에 성공한 산업용 로봇 분야마저 국산화율이 18%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우리나라 노약자들은 외제 실버 로봇의 봉양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박방주 과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