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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소리 아닌 귀신 소리" 108년 전 녹음된 소리꾼의 목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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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인 소리꾼 박은정. 다음 달 4일 '춘향가 눈대목 비교 시연회'에 출연한다. 사진 경서도소리포럼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인 소리꾼 박은정. 다음 달 4일 '춘향가 눈대목 비교 시연회'에 출연한다. 사진 경서도소리포럼

춘향가를 부르는 소리는 100년동안 어떻게 변화했을까. 녹음된 음반, 또 그 소리를 재연한 실제 판소리로 들어보는 시연회가 열린다. 경서도소리포럼이 여는 ‘춘향가 눈대목 비교 시연회’다.

경서도소리포럼, 춘향가 눈대목 비교 시연회 열어 #옛 녹음 들어보고 젊은 명창들이 그대로 재연 #1915년의 김봉이 명창 소리 최초로 공개

시연회에서는 우선 100여년 전의 음반을 들어본다. 김봉이(1878~1929) 명창의 1915년 녹음반이다. 김봉이는 서편제의 시조로 알려진 명창 김창환의 아들이면서, 명창 임방울의 스승이다. 서편제의 초기 모습을 간직한 김봉이의 소리에 대해 판소리 명창 정광수(1909~2003)는 “사람 소리가 아니고 귀신 소리”라 평하기도 했다.

김봉이의 1915년 춘향가 녹음 중 ‘기생점고’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희귀본이다. 김봉이는 춘향가 중의 ‘이별가’와 ‘기생점고’를 미국 빅타 레코드사에서 녹음했는데 그 중 ‘이별가’ 실물만 1993년 확인됐다. ‘기생점고’는 한 판소리 애호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골동품 가게에서 2005년 발견해 구입한 자료로, 이날 시연회에서 들을 수 있다. 녹음한 지 108년 만에 듣게 되는 소리다.

음반을 들은 후에는 젊은 소리꾼이 무대에 선다. 선영악회 예술단 소속의 이효덕(37)이 김봉이의 ‘기생점고’를 재연해 부르는 순서다. 이효덕은 김봉이의 소리를 사전에 듣고 연구해 똑같은 스타일로 불러준다.

이런 식으로 청음과 재연이 이어진다. 춘향가 중 기생점고는 김봉이에 이어 김창룡(1872~1943), 박월정, 정정렬 명창의 녹음으로 들어본다. 중고제 명창 김창룡(1872~1943), 서도명창 박월정(1901~1960?)의 소리는 1925년 일동 레코드 녹음이다. 음반으로 들어본 네 명창의 소리를 젊은 명창 네 명이 나와 그대로 재연하는 식이다. 춘향가의 또 다른 눈대목인 ‘어사장모상봉’도 네 명창(이동백ㆍ박월정ㆍ정정렬ㆍ김초향)의 녹음, 네 젊은 명창의 소리로 비교하며 들어보는 순서가 이어진다. 이동백의 ‘어사장모상봉’도 1915년 녹음으로 이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젊은 소리꾼은 총 5명이 출연한다. 중고제 명창의 소리 재현에 힘쓰고 있는 이효덕,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 박은정(45), 구례동편 판소리를 잇고 있는 차세대 소리꾼 박지수(22), 판소리와 서도소리를 병행하는 이나라(36),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인 이성현(28)이다. 고수로는 김민서(44)ㆍ최재명(23)이 출연한다.

경서도소리포럼의 김문성 대표는 “100년동안 판소리가 눈에 띄게 변화한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0년 전에는 판소리의 시김새 등 장식적 음악 특징이 많지 않았다. 특히 분파되기 전 초기의 모습들이기 때문에 서편제와 동편제의 차이도 크지 않았다는 점을 이날 확인할 수 있다.”

시연회의 부제는 ‘논문 한 편을 보고 듣기’다. 이에 맞춰 김혜정 경인교대 교수가 김봉이ㆍ 이동백ㆍ김창룡ㆍ박월정이 부른 ‘기생점고’와 ‘어사장모상봉’ 대목의 특징과 가치, 또 명창들이 100년동안 발전시킨 판소리의 양상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관객과 질의응답 시간도 있다. 서울 삼성동의 민속극장 풍류에서 다음 달 4일 오후 5시 열리며 전석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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