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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언더? 의대 가자"…의대 증원, 직장인까지 홀리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대구 중구 삼덕동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이 근무지로 향하고 있다. 뉴스1

대구 중구 삼덕동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이 근무지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수특 펴라. 2부 리그 비메디컬 연·고대 떠나야지.”

최근 연세대 커뮤니티에 한 학생이 올린 게시글이다. ‘수특’은 EBS 수능특강 교재의 줄임말로, ‘수특 펴라’는 재수를 하라는 의미의 밈(meme·인터넷 유행어)이다. 의대 증원 이슈가 나오면서 의학 계열이 아니라면 재수를 하자는 글은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서울대 커뮤니티에는 “현우진 뉴런(수학 교재) 폈다” “서른 언더면 직장인이어도 수특 펴야” “치·한·약·수도 수특 펴야 함” 등의 글이 올라왔다.

정부가 의대 증원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교육계에서는 의대 입시 과열 우려가 나오고 있다. 초·중·고교생 뿐 아니라 대학생이나 직장인들도 의대 정원 확대를 재수 기회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확대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입시 전형을 섬세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취업난에 ‘수특’ 펴는 재수생 속출할 듯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교육계에선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입시 과열은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본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의사에 대한 직업 선호도가 절대적으로 높고 임금 격차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특히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만큼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재수·반수생이 속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치동의 한 재수학원 원장은 “주로 연세대, 고려대 등 최상위권 대학생들로부터 정말로 의대가 증원하느냐, 재수 가능하느냐는 문의가 많다”며 “수능에서 한두 문제로 의대에 미끄러진 학생들이 더 욕심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대 생명과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씨(22)는 “이번 학기가 끝나면 재수를 준비할 계획이다. 킬러문항 배제로 수능이 쉬워진 데다 요새는 취업도 쉽지 않으니 차라리 한 번 더 수능에 도전해서 어느 의대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재수로 인한 대학 내 이탈 현상은 학과나 계열을 망라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계열, 이공계열뿐만 아니라 같은 의학 계열 내에서도 중도 탈락 학생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 수시·정시모집 최초 합격자 중 1018명(10.3%)이 등록을 포기했는데, 이 중 치의학과(치의학대학원)가 34.2% 이탈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뒤이어 간호대(26.8%), 약학대(20.2%), 수의과대(18.9%) 순이었다. 서 의원은 “서울대 치대, 약대 등에 합격한 최상위권 학생들마저 다른 대학 의대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입시에 지방 학생도 대치동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들. 연합뉴스

대치동을 중심으로 성행하는 의대 입시 사교육이 과열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의대 전문 학원은 초·중·고부터 재수생까지 다양하다. 메가스터디, 이투스 등 대형 학원들이 의대 전문관을 운영 중이고, 학원가에는 초등 의대반부터 의대 면접, 컨설팅 등 세분화된 학원이 들어섰다.

이처럼 의대 전문을 표방한 학원이 성행하는 이유는 의대가 최상위권의 수능·내신 성적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수시모집의 면접 방식도 다른 전공과 달라 특수한 사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져있어서다.

일부 의대는 다양한 상황의 제시문을 주고 질의응답을 하는 다중미니면접(MMI)을 실시한다. 보통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제시하고 학생이 어떤 윤리적 결정을 내리는지 평가하는 고난도 면접 방식이다. 예를 들어 환자 진료를 하는 중 병원의 원칙과 환자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황을 주고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 묻는 식이다.

대치동에서 의대 전문관을 운영하는 학원 관계자는 “학교에서 까다로운 입시를 대비하기 어렵다보니 지방에서도 대치동에 오는 의대 지망생이 많다”고 말했다. 윤종호 경북 순심고 교사는 “의대 정시 모집에서 서울 소재 고교 출신이 많은 이유는 관련 사교육의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도 지방학생 쿼터를”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교육계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안정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의대 입시의 부작용을 함께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지금의 교육 격차라면 수도권 학생들이 지방대 의대 정시모집을 상당수 장악할 것”이라며 “지방대 의대가 지역인재전형을 확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수도권 의대도 비수도권 학생 선발 쿼터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대를 앞세운 과도한 선행학습 광고에 대해서는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는 “고소득 전문직이란 이유만으로 의사가 가장 좋은 직업으로 생각되지만, 입학 후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도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학생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줄 수 있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이후 변호사 공급 과잉 문제가 제기되는 것처럼 의대도 지속적으로 정원을 늘리면 쏠림 현상이 장기적으론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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