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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악기’ 반도네온…스승과 제자의 서울 탱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첫 내한 공연을 연 반도네온의 거장 네스토르 마르코니(오른쪽)와 그의 제자 고상지를 지난 12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첫 내한 공연을 연 반도네온의 거장 네스토르 마르코니(오른쪽)와 그의 제자 고상지를 지난 12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0여 개의 키를 눌러 만들어내는 140가지 소리. 탱고 음악의 상징인 반도네온은 흔히 ‘악마의 악기’로 통한다. 연주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독일인 하인리히 반트가 고안했고, 이후 이주민들이 아르헨티나로 전파했다는 이 악기는 아코디언과 비슷하게 생겨 간혹 오해를 받는다.

주름통에서 나오는 공기 힘으로 소리 내는 아코디언과 달리 반도네온은 키를 누르는 자체로 소리를 낸다. 스타카토 등 짧은 음 연주가 가능해 보다 정교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다만, 피아노 건반처럼 음계가 순차적으로 배치되지 않고, 같은 키를 눌러도 손의 각도와 주법, 앞서 연주한 음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 연주가 쉽지 않다.

반도네온의 세계적 권위자 네스토르 마르코니(81) 이름 앞에 ‘테크니션’이 붙는 이유다. 그는 누에보(새로운) 탱고의 창시자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92) 생전에 함께 연주했고, 2008년부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고 있다. 국내 정상의 반도네온 연주자인 그의 제자 고상지(40)는 “마르코니 선생님 연주는 전 세계 모든 반도네오니스트에게 교본과 같다. 극도의 테크닉과 경지에 이르는 연주로 감동을 준다”고 격찬했다.

마르코니는 최근 경기 부천(11일)과 연천(14일), 서울 마포(15일)에서 세 차례 탱고 공연을 했다. 고상지가 게스트로 등장해 깜짝 듀오 무대도 꾸몄다. 첫 방한인 그를 지난 12일 서울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났다. 스승의 인터뷰 소식에 고상지도 한달음에 달려왔다.

첫 내한인데, 한국의 인상은 어떤가.
▶마르코니=“근처 일본까진 와 봤지만, 그간 한국을 올 기회가 없었다. 처음 방문하는 나라라 사실 걱정됐고 신경도 예민해졌다. 가장 놀랍고 감동적이었던 건 관객 반응이었다. ‘무대를 좋아하겠지’ 짐작은 했으나 이렇게 환호해줄지는 몰랐다.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다른 나라지만, 탱고 안에서는 비슷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스승과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인터뷰 전날 11일 부천에서 함께 공연했다.)
▶고상지=“반도네온을 배우기 위해 카이스트 자퇴 후 2009년 아르헨티나에 갔다. 탱고 오케스트라 학교 에밀리오발카르세 입학 전형 때 마르코니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당시 학교 총디렉터였던 선생님은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반도네온 연주를 가장 잘하는 분이라 생각한다. 선생님과 함께 연주하고 무대를 꾸민다는 건 내게 황금 같은 기회다.”
반도네온은 낯선 악기다. 매력이 뭔가.
▶마르코니=“반도네온은 탱고를 가장 잘 표현하는 악기다. 전에 클래식, 전통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는데, 탱고가 나 자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반도네온에 끌렸다. 10살 때 아버지가 반도네온을 가져왔는데, 악기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이것저것 눌러봤다. 그렇게 시작했고, 이제 탱고를 표현하는 데 있어 반도네온 소리가 내 목소리다.”
피아졸라 같은 거장과 공연했고, 피아니스트 오라시오 살간(1916~2016)이 결성한 ‘킨테토레알’에서도 연주했다.
▶마르코니=“탱고를 하는 사람들끼리는 모여서 연주하는 기회가 늘 있다. 함께 연주하며 많이 배운다. 피아졸라의 경우, 탱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각자 개성이 뚜렷한 음악가들이라 다툼과 갈등이 생길 법도 한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마르코니는 어떤 스승이었나.
▶고상지=“연주뿐 아니라 작곡·편곡 활동에 있어서 내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분이다. 학교에서 보는 것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선생님 음반을 많이 들었다. 선생님만의 독특한 리프(반복 악절), 코드 등을 많이 듣다 보니 나중엔 몸에 배어 작업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 스타일이 나오더라. 최근 가수 김동률 노래를 편곡했는데, 선생님 음악 스타일의 느낌을 담아 작업했다.”

제자의 칭찬에 마르코니는 “역량을 발휘하는 데 (제 가르침이) 긍정적이길 바랄 뿐”이라고 화답했다. 반도네온과 탱고를 즐기는 법을 묻자 그는 “많이 들어야 매력을 알게 된다”고 조언했다. “음악은 듣는 이의 마음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라며 “꾸준히 듣는 기회를 만든다면, 그 매력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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