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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민생 현장 찾아야"…선거 패배 뒤 어공 목소리 커졌다

중앙일보

입력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입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처음으로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이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입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처음으로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이다. 연합뉴스

역대 정부마다 ‘늘공(직업 공무원)’과 ‘어공(정치인 출신 공무원)’은 서로의 보완재 역할을 하며 공존해왔다. 새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따라 정부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공’의 몫이라면, 현실성을 따지고 실행 계획을 짜 이행하는 건 전문성에 바탕에 둔 늘공의 임무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늘공’에 무게가 실린 정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자신 역시 늘공(검찰 공무원) 출신인 윤 대통령은 인수위 때부터 “각 부처의 에이스 공무원을 대통령실에 우선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출신과 성향에 따라 인사의 성패가 갈린 지난 정부와 비교되며 ‘능력중심주의 인사’의 일환으로도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분위기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패배 뒤 분야별로 어공에게 ‘정무적 조언’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3일 “늘공이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자신의 분야에 갇혀 넓게 생각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그런 빈자리를 어공이 채워주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중동 순방을 떠나며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직급별로 국민의 생생한 절규를 들으라”고 지시한 이후, 어공들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핫한 민생 현장을 찾으려면 어공과 늘공이 함께 머리를 싸매야 한다”고 말했다. 관료들의 정책 경험과 정치 현장을 누빈 어공의 감각이 합쳐져야 한다는 취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당4역 지도부와 오찬 회동을 진행한 후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의동 정책위의장, 김기현 대표, 윤 대통령, 윤재옥 원내대표, 이만희 사무총장.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당4역 지도부와 오찬 회동을 진행한 후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의동 정책위의장, 김기현 대표, 윤 대통령, 윤재옥 원내대표, 이만희 사무총장. 사진 대통령실

대통령실도 이번 주 초부터 김대기 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석 및 비서관 모두 민생현장을 찾을 예정이다. 30대 행정관까지도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전 직원이 ‘창의적인 일정’을 찾으려 고심 중이다. 이 과정에서도 늘공들이 어공에게 “좋은 아이디어 없느냐”며 물어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뻔한 현장 방문은 오히려 역풍을 부를 수 있어, 일정 확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총리실도 각 부처 장관들의 일정과 관련해 당의 의견을 수렴한 ‘현장 방문 리스트’를 정리하는 중이다. 여기엔 총리실 내 어공들의 의견도 상당 부분 반영됐다. 한 총리는 해당 리스트가 완성되는 대로 직접 장관들에게 목록을 전할 예정이다. 복수의 총리실 관계자는 “막연하고 뻔한 일정은 다 빼고 민생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파고들라는 것이 한 총리의 지시”라고 말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김대기 비서실장(가운데)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긴급경제안보점검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은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김현동 기자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김대기 비서실장(가운데)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긴급경제안보점검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은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김현동 기자

이를 두고 보궐선거 패배 뒤 총선 모드에 돌입한 당에 힘이 실리며 자연스레 어공의 영향력이 늘어난 것이란 분석도 있다. 22일 정부 출범 뒤 처음으로 국회서 열린 고위 당정도 이런 변화를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매번 총리 공관에서 열렸던 과거와 달리, 이번 당정은 장소 선정부터 당이 주도적으로 움직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더욱 긴밀한 당정 협의를 통해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민생 현안을 챙기고 국민 눈높이에서 점검하겠다”며 당정회의의 3대 방향으로 ‘성과·개혁·경청 당정’도 제시했다.

대통령실과 여당 모두 총선까지 주요 정책 추진에 있어 당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늘공과 어공은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라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각 상황에 따라 늘공와 어공이 더 잘하는 분야가 있어 누가 무조건 더 옳다고 볼 수는 없지 않으냐”며 “분야별로 최적의 사람을 앉히겠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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