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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책임지는 인공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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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초거대 인공지능 개발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제기된 소송만 하더라도 10여 건에 이른다. 주요 쟁점은 저작권 침해 여부다.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제·이용했다는 것이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사진·영상 콘텐트 전문기업인 ‘게티 이미지’가 낸 소송이다. 청구 금액이 최대 24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사진 1200만 장이 도용됐다고 주장하는데, 법적으로 사진 1장당 배상액이 약 2억원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송 결과에 따라 인공지능 산업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저작권 침해 놓고 소송 잇따라
‘포토샵’의 선제적 조치 주목
이용자들에게 면책 조항 제공
AI 개발사부터 신뢰성 갖춰야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올해 초 구글이 음악 생성 인공지능을 개발했지만, 저작권 문제로 출시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이 인공지능은 이용자가 듣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 말로 설명하면 그에 맞추어 새로운 음악을 생성해 준다. 하지만 구글의 자체 평가 결과, 생성된 결과 중 1% 이상이 학습에 사용된 음원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글은 음원의 저작권 침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이러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현재 여러 소송에서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중이다. 법적으로는 여러 복잡한 쟁점이 얽혀 있지만, 주된 논점은 저작물을 인공지능에 학습시키려면 저작권자로부터 이용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아닌지이다. 저작권자들은 정당한 사용료를 지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대로 인공지능 개발사 입장에 선 이들은 인공지능 학습도 ‘배움’의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배우기 위해서는 저작물을 읽고 보고 듣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한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견하기 어렵다. 결론이 날 때까지 수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인공지능과 저작권 침해 문제는 법적으로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런데 인공지능 개발사들은 새로운 전략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자사 인공지능의 이용자에게 지식재산권 면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의 고객을 상대로 소송이 제기되면, 인공지능 개발사가 나서서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여 소송에 대응해 주고, 소송 결과에 대해서도 모든 책임을 부담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로써 이용자들은 안심하고 인공지능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저작권 침해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례로 포토샵을 들 수 있다. 포토샵은 단순한 사진 편집 도구를 넘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제 포토샵에 탑재된 인공지능에 간단한 지시를 내리면 손쉽게 배경을 바꾸고, 여러 콘텐트를 추가·삭제할 수 있다. 얼굴 모습을 보정하고, 머리 모양이나 복장을 바꾸는 작업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포토샵을 개발하는 ‘어도비’ 측은 인공지능 기능을 출시하면서 저작권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적법하게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 저작권이 없거나 만료된 데이터로만 인공지능을 학습시켰다고 한다. 기업용 제품의 이용 약관에는 지식재산권 면책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이용자에게 저작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대신 책임져 준다는 내용이다.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도 서비스 이용 약관에 비슷한 취지의 지식재산권 면책 조항을 추가하였다. 물론 한계가 없지는 않다. 예컨대 이용자가 의도적으로 타인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려고 인공지능을 사용한 경우는 면책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선의의 이용자가 손해를 입는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해 준다.

이처럼 인공지능 기업들이 앞장서서 법적 위험을 해소해 주는 것은 인공지능 활용 확산 측면에서 긍정적인 일이다. 새로운 입법이 마련되거나 소송에서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전에 미리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한결 유리하다.

비슷한 사례로 자율주행차를 들 수 있다. 자동차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켜고 운행하다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인지는 여전히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어떠한 형태의 사고가 어떻게 일어날지 미리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자동차 제조사는 고객에게 면책을 약속하기 시작했다. 자율주행 중 사고가 발생하면 제조사가 책임지겠다고 한다. 자사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떤 인공지능이 안전한지 아닌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는 바로 그 인공지능을 개발한 회사다. 인공지능 기술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생소하다. 지금처럼 여러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면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꺼려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일수록 무슨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개발사가 책임지겠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고객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