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러니 극단선택…박카스병 얼굴 맞아도 참아야하는 그들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근로복지공단 울산본부에서 특별민원(악성민원)을 담당하는 A씨는 지난달 민원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칸막이 하나 없는 민원실에서 대화하던 중 민원인이 돌연 욕설과 함께 박카스병을 집어던진 것이다. A씨는 목 부위에 맞아 타박상을 입어야 했다.

#2.같은 달, 근로복지공단 한 지사에서 근무하던 B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B씨는 산재 노동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재활보상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극심한 업무 쏠림과 과다한 민원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밝혔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이 정작 과중한 업무와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 7월부터 전속성 요건 폐지로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100만명 넘게 확대됐음에도 인력은 거의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재 신청 접수건수는 2018년 13만8576건에서 2020년 14만7512건, 2022년 18만1792명으로 매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올해 1~8월 접수건수는 12만945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7% 증가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산재신청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직원들을 괴롭게 만드는 특별민원도 증가 추세에 있다. 근로복지공단 특별민원은 2019년 54건에서 2020년 60건, 2021년 78건, 2022년 80건으로 매년 조금씩 늘었다. 올해도 1~9월 기준 67건 기록했다. 특별민원은 폭언 또는 협박을 3회 이상 하거나 성희롱·폭행·위험물 소지·난동 등을 벌이는 경우를 의미한다. 2회 이하의 폭언·협박까지 합치면 실제 특별민원 건수는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인력 충원이 더딘 탓에 공단 직원 개개인에게 쏠리는 업무 부담은 훨씬 커지고 있다. 2019년 대비 2022년 민원인 수가 22% 증가하는 동안 재활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수는 7.7% 늘어나는 데 그쳤다. 1인당 담당 접수 건수도 5399.6건에서 6031.6건으로 11.7% 증가했다.

특히 지난 7월 1일부터 전속성 요건이 폐지되면서 업무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동안 배달라이더·대리기사 등 여러 업체에서 일하는 특수고용직(특고) 노동자나 플랫폼 종사자는 전속성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지만, 사각지대 완화를 위해 올해 전면 재편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전속성 폐지와 적용 대상 직종 확대로 132만4000명이 새롭게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재 신청건수도 1만9000명 정도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라이더유니온 소속 배달 노동자들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의 취약노동자 보호대책에 배달노동자를 포함해야 한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라이더유니온 소속 배달 노동자들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의 취약노동자 보호대책에 배달노동자를 포함해야 한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대대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력 증원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근로복지공단은 ‘노무제공자 전속성 폐지로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이유로 374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산재보상 및 요양에 약 275명, 보험급여 및 채권관리에 약 18명, 사회복귀 지원 약 38명, 시스템 개발 및 운영에 약 36명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검토 끝에 필요 인력의 50%는 인력 재배치, 신규 채용 등을 통해 자체 흡수하라며 180명으로 줄였다. 이어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두 차례 심의를 거쳐 8명으로 대폭 감축했다. 최초 요구안의 46분의 1 수준이다. 사실상 ‘동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산재보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충분한 인력이 없다면 공단 직원들은 물론 산재 노동자들의 피해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진우 근로복지공단 노조위원장은 “매년 민원인이 급증하다 보니 업무 강도가 점점 세지고, 악성 민원까지 겹치면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공단 직원들이 많다”며 “처리 소요기간이 늘어나면서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의 피해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웅래 의원은 “노동자들의 삶을 보호하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이 업무 과중으로 오히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공단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