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명 중 3명 꼴 백세인, 명상·독서 통한 인격 수양이 ‘묘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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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호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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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년 164일.

공식적인 세계 최장수인 고(故) 잔 칼망(1875년 2월 21일 출생)의 수명이다. 85세에 펜싱을 시작했고 110세까지 자전거를 탈 정도로 일생을 건강하게 살았다. 어릴 때 인상파 천재 화가 반 고흐(1853~1890)의 초상화 모델이 돼달라는 요청을 그의 남루한 차림새를 보고 거절했다가 훗날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인구조회국(PRB)은 19만 년 전 지구촌에 처음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가 2022년 현재까지 약 1170억명쯤 살았을 것으로 추산한다. 칼망은 공식적으로 120세를 넘긴 유일한 인류다. 그녀의 뒤를 잇는 최장수인들은 119세 2명, 118세 1명, 117세 7명 등 수명이 줄어들수록 숫자는 증가한다.

21세기 들어 급속한 고령화로 초고령 인구가 급증하자 사피엔스 수명의 한계점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 현재 100년 인생을 사는 백세인(centenarian)은 1만 명 중 3명(0.03%)정도며 여성이 85%다. 이들 1000명 중 한 명은 110살을 넘겨 초백세인(supercentenarian)이 되는데 95%가 여성이다.

봉사활동·문화생활도 정신 건강에 도움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100년 이상 생존하는 최장수인은 보통 사람들이 적절한 식단·운동·수면·스트레스 관리 등을 평생 꾸준히 실천해도 극복할 수 없는 특별한 ‘장수 유전자’를 타고난다. 장수 유전자는 노화를 늦추거나, 질병을 회피하는 특징이 있다. 시름시름 앓으면서 병든 노후를 보내는 기간은 아주 짧게, ‘건강 수명’은 매우 길게 늘리는 식의 마법을 부린다. 실제 백세인들은 평생 심신의 기능과 독립성을 유지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장기 기능과 면역력이 동시다발적으로 저하되면서 요로 감염 같은 사소한 병으로 사망한다.

21세기 장수 연구자들은 첨단 의과학의 힘을 빌려 유전자 차원에서 노화의 원인과 특징을 찾아내〈표 참조〉 이를 타개하는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과연 건강 수명 100세 시대, 최대 수명 120세 시대는 현실화될 수 있을까. 또 인류 최초의 지구촌 100년살이는 축복이기만 한 걸까.

19세기 초만 해도 당시 최고의 패권국이자 부자나라였던 영국의 평균 수명은 40세(상류층은 45~50세), 첫 돌을 넘기면 46세까지 살았으며 20세까지 생존하면 60세도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19세기 중반에도 영국에서 출생한 아이가 50세까지 생존할 가능성은 절반에 못 미쳤다. 지금은 97%가 50세 이상 산다. 19세기 영국을 통치하던 빅토리아여왕의 수명은 81세다.

현대 의학이 도입되기 전 한국인의 수명은 공식적인 출생·사망 기록이 있고 위생과 영양이 좋았던 국왕을 기준으로 하면 고려시대 34명의 왕 중에서는 6명이 60세 이상 생존했다. 이중 명종은 71세, 충렬왕은 72세까지 살았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은 왕 46.1세, 왕비 51세, 후궁 56.6세며 일반 백성은 35세로 추정한다. 27명의 조선 왕 중 환갑을 넘긴 사람은 태조(73세)·정종(62세)·광해군(66세)·영조(81세)·고종(67세) 등 5명이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 의학이 보편화하기 전에는 인간의 기대 수명이 길어야 70년, 드물게 80년을 사는 사람이 있었다. 구약성경에 쓰인 ‘우리의 수명은 70세, 강인하면 80세(시편 90장 10절)’라는 구절과도 일치한다. 호주의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ISRO)가 2019년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발표한 선사시대 초기 인류의 최대 자연 수명인 38세와 비교해 보면 문명화 과정을 통해 인류의 수명은 두 배쯤 길어진 셈이다.

20세기 현대 의학은 위생·백신·항생제·첨단 치료 등을 앞세워 영아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감염병을 비롯한 흔한 질병을 퇴치하면서 기대 수명을 늘렸다.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기대수명은 80.5세다. 장수 국왕으로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이나 영조보다 오래 사는 시민이 보편적인 시대가 열린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기대 수명 83.5세, 노인 인구 960만명, 최빈사망연령 90세를 넘어섰다. 고령화가 지금처럼 지속되면, 2050년에는 0~64세 인구보다 65세 인구가 많은 국가가 된다. 여기에 억만장자 부호들이 뛰어든 현대판 불로초 개발 사업이 결실을 맺으면 기대 수명 100세 시대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 기대 수명 83.5세, OECD보다 높아

의학적 관점에서 100세 시대의 가장 큰 걱정은 뇌의 퇴행성 변화로 감정, 심리, 성격, 인지기능 등에 이상이 생기는 상황이다. 본능과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쉽게 화내고 분노하며 폭력도 동원한다. 매사에 융통성이 없어지고 변화를 거부하며 독단적 행동을 한다. 돈이나 음식에 대한 집착도 강해진다.

물론 이 모든 문제 행동은 노화 때문에 생긴다기보다는 원래 내재해 있던 나쁜 인격을 통제하는 힘이 약해지면서 드러난다. 따라서 100세 시대 노후를 잘 보내려면 젊을 때부터 의식적으로 좋은 언행을 반복 연습해 몸에 배야 한다. 공자는 70세를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뜻의 ‘종심(從心)’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나이 든다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게 아니며  평생 공자처럼 인격을 수양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21세기 한국은 국민 다수가 신체 건강을 위해 노력해 왔고 덕분에 장수국가가 됐다. 이제는 길어진 노년기 내내 자타가 공경하는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명상·독서·봉사활동·문화생활 등은 정신건강을 풍요롭게 만드는 대표적인 묘약이다. 노인 인구 천만 시대를 목전에 둔 올해는 ‘경로의 달’ 10월이 유난히도 막막하게 다가온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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