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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덮친 美국채 쇼크…코스피 2400 무너졌다, 시총 38조 증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약 7개월 만에 2400선이 깨졌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약 7개월 만에 2400선이 깨졌다. 연합뉴스.

20일 코스피는 전날에 이어 1%대 하락하며 2400선을 내줬다. 2400선이 깨진 것은 약 7개월 만이다. 코스닥은 1.89% 급락해 760선까지 밀렸다. 하루 사이 시가총액은 38조원 증발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16년 만에 5% 선을 뚫으며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진 영향이다. 중동 전쟁 확전 우려도 금융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20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69% 하락한 2375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가 2400선을 내준 건 지난 3월 이후 7개월여만이다. 이날 하락세를 이끈 건 기관이었다. 기관은 1744억원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팔자’를 이어가다 장 막판에 매수세로 돌아서 644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날 개인은 1121억원 사들였지만, 지수 하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코스닥의 낙폭은 더 컸다. 코스닥은 전날보다 1.89% 내린 769.25로 마감했다. 매도세에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의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8조3068억원 사라졌다.

한국 증시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이날 0.74% 하락해 3000선을 내줬다. 홍콩 항셍지수는 전날보다 0.72% 내렸고, 일본 닛케이255지수도 0.54% 하락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아시아 주가 하락의 도화선이 된 것은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5%선을 돌파하면서다. 미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19일 오후 5시 직후(미 동부 시간 기준) 연 5.001%까지 오른 뒤 4.9898%에 마감됐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5% 선 위로 올라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금리를 끌어올린 불씨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긴축 발언이다. 19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은 뉴욕경제클럽에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여전히 높다”며 “최근 몇 달간의 좋은 수치는 인플레이션이 우리 목표를 향해 지속 가능하게 하락하고 있다는 신뢰를 구축하는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탄탄한 경기와 노동시장을 근거로 ‘고금리 장기화’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험 확산도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을 부추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과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1000억 달러(약 135조원) 규모의 긴급 예산을 의회에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자금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채권가격 하락(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연방준비은행(FRED)]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연방준비은행(FRED)]

이뿐이 아니다. 중동 전쟁의 확전 우려는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 19일(현지시각)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2% 오른 89.37달러에 마감됐다.

상당수 전문가는 한동안 한국 증시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채권 투자로 돈이 몰리는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증시 반등을 기대할 만한 요인이 없다는 게 이유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미국 국채에 투자하면 연간 5%의 안정적인 수익이 나오는데 굳이 주식에 투자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투자 국면”이라고 말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악재는 쌓이는데 호재가 없다는 게 변수”라며 “더욱이 미국 국채 금리 오름세가 꺾일지는 다음 달 소비와 고용 데이터 흐름을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증권사에선 코스피가 연내 2300선도 위태롭다는 분석도 나왔다. 씨티증권은 “한국 증시가 올해 상승분을 반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말 코스피 종가(2236.4)를 고려하면 연내 코스피가 2200대까지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본격적인 조정으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고금리와 달러 강세가 증시에 부담 요인이지만,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사태 수준의 위기라고 보기 어렵다”며 “한동안 2400대 안팎의 박스권 장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소폭 상승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달러당 5원 오른(환율은 하락) 1352.4원에 거래를 마쳤다. 아시아 시장에서 미국 국채 금리가 최근 급등에 따른 되돌림 효과로 소폭 하락한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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