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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용과 천리마] 중공에 무기 지원한 김일성 따라 김정은도 러시아에 무기 보낸다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니치 우주기지 참관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쳐=뉴시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니치 우주기지 참관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쳐=뉴시스

북한이 국제사회가 우려했던 군사 장비‧ 탄약 등을 러시아로 보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지난 10월 13일 브리핑에서 북한-러시아 무기 거래 사진 3장을 공개했다. 커비 조정관은 “최근 몇 주 북한은 러시아에 1000개가 넘는 컨테이너 분량의 군사 장비와 탄약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동 경로는 러시아 선박이 지난 9월 북한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러시아 동부 두나이로 이동했다. 컨테이너는 여기서 철도로 러시아 서남부 티호레츠크에 있는 탄약고로 옮겨졌다.

이는 김일성이 1946년 봄 국민당에 쫓겨 고전하고 있던 중국공산당을 도와준 것과 거의 흡사하다. 중국공산당은 거의 괴멸하기 직전에 북한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다. 북한은 그때를 자랑스러워하고 중국과 협상할 때 항상 그때를 꺼낸다고 한다.

중국은 김일성이 도와준 것을 잊지 않고 1949년 건국 이후 물심양면으로 북한을 지원했다. 북한 외무성이 2022년 4월 홈페이지에 ‘조중친선의 갈피를 더듬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첫 번째로 소개한 것도 이때의 내용이다. 그만큼 중국을 지원한 김일성의 결정은 북‧중 관계에서 북한의 크나큰 자랑이다.

김일성의 이런 모습을 지금 김정은이 따라 하고 있다. 1946년과 2023년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제2차 국공내전이 발발하면서 중국공산당은 지금의 러시아만큼 고전하고 있었다. 급기야 마오쩌둥은 1946년 봄 천윈 동북국 부서기를 평양으로 보냈다. 천윈은 먼 훗날 정치국 상무위원을 거치는 등 주요 요직을 맡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개방 노선을 두고 덩샤오핑과 대립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천윈은 김일성을 만나 마오쩌둥의 부탁이라며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중국공산당이 동북 지방에서 국민당과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무기를 좀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북한도 1945년 해방 이후 군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중국공산당을 도울 여력이 없었다. 천윈은 “마오쩌둥 주석도 북한의 형편에서 무기를 해결하는 일이 몹시 힘에 겨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도와주면 중국 인민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윈을 돌려보내고 김일성은 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먼저 꺼냈다. 김일성은 “중국혁명이 큰 시련을 겪고 있으니 이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총 10만 정과 박격포, 각종 포탄을 비롯한 많은 양의 무기와 군수 물자들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참석한 간부들은 얼른 찬성을 표시하지 못했다. 지원하려는 양이 어마어마한 숫자였기 때문이다. 일부 간부는 총 10만 정이 너무 많으니 총 1만 정으로 줄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있는 대로 다 주라”고 결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시절 김일성의 상사였던 저우바오중은 그때를 회고하면서 “1946년 봄부터 1948년까지 2년 반 동안 북한이 보내준 지원물자가 2000여 차례에 달했으며, 그때 북한의 형편에서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일성이 내세운 논리는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나라 혁명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세계혁명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23년은 어떤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는 러시아가 지금 고전하고 있다. 금방 끝내겠다며 자신만만하게 2022년 2월 전쟁을 시작해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밀리는 상황이다. 급기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정전협정(7월 27일) 체결 70주년 행사가 열리는 평양에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보냈다. 러시아는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이 아닌데도 북한의 초청에 국방장관을 보냈던 것이다.

쇼이구는 김정은에게 무기를 요청했고 이를 김정은이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커비 조정관이 공개한 사진 3장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는 러시아는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전쟁 물자가 부족해졌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거세지자 외부에 손을 벌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를 북한이 잡아준 것이다. 1946년 봄 마오쩌둥이 천윈을 보낸 것과 유사한 장면이다.

중국은 현재 외교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할지 몰라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는 곤란하다. 그럴 마음도 없어 보인다. 러시아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국에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도와줄 나라는 지금 북한밖에 없다. 그런 러시아에 대해 김정은이 1946년의 김일성을 소환한 것이다.

김일성은 1946년 봄 중국에 ‘무상’으로 지원했다. 북한이 2016년 발간한 『중국 동북해방 전쟁을 도와』에서 그렇게 기록돼 있다. 중국에 무상으로 지원한 것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그 이후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등 북한에 진 ‘빚’을 톡톡히 갚았다.

김정은은 김일성이 중국에 했듯이 러시아에 무상으로 지원했을까? 지금 북한은 다른 나라를 무상으로 지원할 만큼 여유가 없다. 김일성은 1946년 봄 힘에 겨운 상황에도 중국에 무상으로 지원했지만, 김정은은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김일성은 중국공산당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김정은은 러시아와 그런 인연이 없다. 따라서 러시아로부터 어떤 ‘대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언론들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군사 정찰 위성‧미사일 기술 등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은이 김일성을 따라 하는 사례는 많다. 이미지를 같게 하려고 체중 늘리기, 중절모 착용, 군대가 아닌 노동당 중심의 운영 등 죽은 김일성이 통치하는 나라로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국내 정치는 몰라도 외교는 다르다. 김일성 때와는 외부 환경들이 너무 변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다시 김일성의 외교로 돌아가는 듯하다. 외교는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그때가 맞다. 비록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로 과거로 U턴했지만, 방향을 다시 돌려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미래가 보인다.

글 고수석 국민대 겸임교수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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