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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불 지폈지만 결국 제자리, '예금보호한도' 공은 국회로

중앙일보

입력

23년째 묶였던 예금보호한도가 당분간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한도 상향에 대한 이득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고 사실상 결론지으면서다. 국회가 움직일 경우 한도 상향은 가능하지만 이른 시일 내에 관련 논의를 재개하기는 어려울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 예금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금융당국과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원으로 유지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았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 예금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금융당국과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원으로 유지하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았다. 연합뉴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예금보호한도를 현재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할 경우의 영향에 대한 예금보험공사의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예금보호한도 확대 취지로 발의된 ‘예금자보호법일부개정법률안’ 의 대다수는 한도 1억원으로의 조정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는 예금보호한도 상향 반대에 기울어있다. 1억원으로 한도 상향 시 보호를 받는 예금자의 비율은 98.1%에서 99.3%로 1.2%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한도 상향의 편익은 소수 5000만원 초과 예금자(1.9%)에만 국한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신 금융 소비자에겐 손해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도 상향 시보호예금 비율은 51.7%에서 59%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보호 효과가 다소 강화되나 기금의 위험노출액 증가로 장기적으로 예금보험료가 인상돼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한도 상향에 따른 자금 이동이 소형 저축은행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했다. 보고서는 “주로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자금 이동이 발생해 저축은행 예금이 16~25% 정도 증가할 것”이라며 “은행 예금의 1% 내외로 시장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저축은행 업권 내 소형사에서 대형사로의 자금이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해 과도한 수신 경쟁이 벌어지면 소형 저축은행에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봤다.

이런 보고서에 기초해 금융위는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 다수 발의된 만큼 향후 찬반 논의, 시장 상황을 종합 고려해 상향 여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지만 당장 한도를 조정하는 것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친 것이다.

이러면서 당분간 예금보호한도 조정은 물 건너간 모양새다. 당초에는 한도 상향이 우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미국 실리콘뱅크은행(SVB) 파산과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등이 이어지며 예금자에 대한 보호망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법 지원기관인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보호 한도 상향론에 반대 의사를 나타내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3 국정감사 현안 보고서’에서 “한도 상향은 일부 상위계층에만 유리하고 예금보험료 인상으로 예금자 부담은 확대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예금자보호한도를 현재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시 영향에 대한 예금보험공사의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예금자보호한도를 현재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시 영향에 대한 예금보험공사의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연합뉴스

다만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예금보호한도 인상으로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편익을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예금보호한도 개선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에 참가했던 한 전문가는 “현재 예금 분포는 현행 한도에 소비자들이 적응한 결과로 한도 상향 시 분산 예치 부담이 완화되는 간접 혜택 등을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7000만원을 예금에 넣으려는 소비자 입장에서 현재는 보호를 받기 위해 계좌를 2개 이상으로 쪼개야 하는데 한도가 1억원이 되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 대비 한국의 예금보호 한도가 낮다는 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향 시 한도 비율은 1.2배다. 미국은 3.3배, 영국과 일본은 모두 2.3배다.

다만 국회에 계류된 법이 통과되면 예금보호한도 상향은 가능하다. 국회가 움직이면 된다는 얘기다. 여야 모두 인상안을 담은 법 개정안을 내놓은 만큼 이견은 크지 않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와 향후 예산산 심의 등의 일정을 고려하면 당장 관련 논의가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예금보호한도는 현안에서 빠진 분위기”라며 “내년 4월 총선 전에 논의가 시작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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