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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기차 10대 중 4대 중국산…LFP배터리 성능 높여 ‘쾌속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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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질주하는 중국 자동차 ② 배터리

비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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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동차의 시대가 왔다.” 왕촨푸 비야디(BYD) 회장은 지난 8월 중국 선전에서 열린 비야디의 500만 번째 전기차 생산 기념식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시장조사업체 캐널리스에 따르면 BYD는 올 6월까지 아토3와 돌핀, 송PRO 등 인기 차종을 앞세워 세계 시장 점유율 21%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 팔린 전기차 다섯 대 중 한 대꼴이다. 미국 테슬라는 93만5000여 대를 팔아 2위였다. 누적 생산량으로 따져도 BYD가 테슬라(496만 대·9월 말 기준)를 뛰어넘는다.

1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브랜드들이 세계 시장에서 판매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톱10 전기차 브랜드에 BYD와 상하이자동차, 지리자동차, 광저우자동차 등 4개가 포함돼 있다. 이들의 올 1~7월 합산 점유율은 38%를 훌쩍 넘어섰다. 캐널리스는 올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 규모가 1400만 대, 중국 업체의 점유율이 최대 40% 안팎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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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에서도 맹주로 떠올랐다. 캐널리스에 따르면 중국은 올 상반기 214만 대의 전기차를 수출해 토요타·혼다·닛산을 앞세운 일본(202만 대)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지난해 독일을 따돌리고 2위를 기록한 데 이어 세(勢)를 더 불린 것이다. 자동차 본고장으로 불리는 유럽에선 8%, 동남아시아에선 75%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2009년부터 보조금…총 220조원 투입

이 같은 중국 전기차의 질주에 대해 김용화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장(부사장)은 “중국 업체들의 생산 방식과 속도를 쫓아가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신흥 업체들은 ‘뿌리부터 전기차식(式)’”이라며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변환하는 전통의 완성차 업체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토로했다. 중국 전기차의 폭발적인 성장 뒤에는 ▶국가 역량을 총동원한 전폭적 지원 ▶공급망·기술 경쟁력 강화 ▶탄탄한 내수 시장이라는 3박자 시스템이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중국 정부는 전기차 개념도 없던 1990년대부터 전기차에 승부수를 띄웠다. 2009년부터 전기차 제조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했고, 2010년에는 신에너지차(전기차·수소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7대 신흥 산업으로 선정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기차 사업을 지원하는 데 1조2500억 위안(약 220조원)을 투입했다고 추산했다.

기술 경쟁력도 키웠다. 전기차 성능의 핵심으로 불리는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통해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다.

LFP는 한국 업체가 주도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와 비교해 30~40% 저렴하다. 그동안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거리가 짧고 무거워 수요가 많지 않았지만, 최근 단점을 크게 개선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CATL은 올해 안에 완충 기준 700㎞, 10분 충전으로도 400㎞ 주행이 가능한 고성능 LFP 배터리 ‘션싱’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또 10조원을 투자해 헝가리 데브레첸에 10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테슬라와 현대차·포드·폭스바겐·스텔란티스·BMW·메르세데스 벤츠·토요타 등 유수의 기업이 LFP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LFP는 삼원계 대비 약 2배의 수명과 높은 안전성을 넘어서 기술적인 우위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중국이 오랜 기간 LFP 주도권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세계적 전략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는 중국을 전기차 산업 경쟁력 순위(2020년 기준)에서 독일·미국·일본보다 높게 1위 국가로 꼽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전기차 관련 63개 품목 평가에서 중국을 16개 분야에서 1위에 올렸다. 올 상반기 기준 글로벌 톱7 배터리 업체 중 중국 기업은 3개다.

저렴한 가격도 경쟁력이다. BYD의 돌핀은 3만 달러로 경쟁 차종보다 1만 달러가량 싸게 팔린다. 그러고도 BYD는 올 상반기 15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원자재 채굴·가공부터 배터리 생산→전기차 제조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탄탄하게 구축한 덕분이다.

가령 양극재 생산 원가의 42% 수준인 탄산리튬의 경우 수요량의 70%를 쓰촨·장시·칭하이 등 자국에서 조달한다. 인산철 전구체의 주원료인 인광석은 중국이 세계 생산량의 47%를 차지하고 있다. 음극재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흑연도 중국의 점유율이 67%에 이른다.

과잉생산으로 최근 줄도산 그림자도

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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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14억 인구라는 거대 내수 시장도 한몫했다. 특히 대도시에선 대기오염 등을 이유로 내연기관차 번호판 발급을 제한하면서 전기차 구매를 강제하다시피 했다. 이 같은 지원을 통해 지난해 중국에선 689만 대의 전기차가 팔렸다. 신차 판매량의 38%가량이다.

다만 그림자도 뚜렷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8월 상하이와 항저우 등 대도시 외곽에 대량으로 버려진 ‘전기차 무덤’을 소개했다. 보조금 정책에 기대 우후죽순 등장했던 전기차 업체들이 줄도산하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의 과도한 보조금 정책으로 전기차가 저가에 과잉 생산되다 보니 유럽도 조사에 나서는 등 전 세계가 경계하고 있다”며 “다만 ‘반값 전기차’가 대세가 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전기차용 변속기 같은 신사업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항구 자동차산업연구원장은 “일관된 전기차 지원 정책이 핵심”이라며 “기후변화와 전기차 변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정부나 완성차 업체 모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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