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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현목의 시선

정부 정책보다 나은 출산 장려 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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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현목 기자 중앙일보 문화부장
정현목 문화부장

정현목 문화부장

양치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충치 생긴다” “치과 가서 주사 맞는다”고 겁박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뭘까. 양치하고 나면 “입에서 좋은 냄새가 나네”라고 칭찬해주는 것이다.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아동심리 전문가 조선미 교수가 제시한 훈육법 중 하나다.

이런 방법은 세상사 많은 일에 쏠쏠하게 적용할 수 있다. “폐암 걸린다”라는 경고보다 더 효과적으로 금연을 권하는 방법은 “담배 안 피우는 네 모습이 훨씬 더 좋다”고 칭찬해주는 것이다. 금연 후 금단증상에 힘들어했던 필자의 마음을 다잡아준 건 그런 칭찬의 말이었다.

육아·가족의 뜻 되새기는 광고
‘출산은 애국’ 획일적 사고 탈피
국민의 공감 끌어내야 효과적

그때 경험 때문일까. 요즘 금연 캠페인 광고에 눈길이 간다. 한때는 망가진 폐의 모습 등 섬뜩한 광고가 많았지만,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부끄러운’ 손, 아빠의 ‘노담’(NO 담배)을 소망하는 딸의 모습 등을 거쳐 요즘은 ‘노담 사피엔스’(노담이 능력이 된 새로운 종)라는 신조어를 앞세운 광고가 등장했다. ‘노담’ 청년의 장점을 다양한 상황에 접목해 금연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뛰어난 미각과 기억력으로 이성의 호감을 사는 대학생, 남다른 집중력과 평정심으로 게임 실력을 과시하는 여고생, 강철 체력과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 포상 휴가를 획득한 사병 에피소드 등 딱딱한 금연 메시지를 재밌고 재치 있게 전달한다. 담배를 끊으라는 윽박지름보다 이처럼 노담의 장점을 일깨워주는 게 금연 확산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눈여겨보는 광고가 또 있다. 유튜브 조회수 3594만회를 기록 중인 화제의 모 건설사 광고다. 젊은 부부의 고단한 육아 일상을 담았다. 우는 아기를 달래는 아내의 머리엔 샴푸 거품이 묻어있고, 남편은 기저귀를 갈다가 오줌을 얼굴 정면에 맞고, 아내는 한밤중 우는 아기를 달래라며 자는 남편의 베개를 잡아당기고, 부부가 육아 분담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현실적인 육아 장면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예전 기억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부부는 밝은 표정으로 “근데 뭐, 둘보다는 셋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하나 더 낳고 싶기도 하고”라는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아이 키우기 힘들지만 아이가 없던 때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부모 마음과 공명하는 대목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부부는 ‘육아 노예’가 돼버린다. 그런데도 행복한 노예 생활이라 할 수 있는 건, 아기가 선사하는 기적 같은 순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천사 같은 미소를 보여줄 때, 아빠(또는 엄마) 소리를 처음으로 내줄 때 등 말이다.

아기가 처음 ‘아빠’ 소리를 내는 걸 아내가 휴대전화 너머로 남편에게 들려주던 이동통신사 광고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하는 건 그만큼 공감 가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나라가 위기라고들 한다. 한국의 초저출산율을 본 미국인 교수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머리를 움켜쥔 영상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출산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사교육·부동산·경력단절 문제 등 아이를 낳고 싶지 않게 만드는 사회적 허들을 낮춰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을 터다.

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건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혼자보다 둘이, 둘보다는 셋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출산이 애국이라느니, 애를 안 낳으면 나라가 망한다느니 하는 겁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시대착오적이며 전체주의적 발상이란 비아냥을 사기 십상이다.

결혼·출산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으로, 비혼 또는 딩크족이라 해서 지탄받아선 안 된다. 각자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되,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일 또한 한 번뿐인 인생에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선택이란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소파라는 공간에서 어린 딸을 키우고, 사위를 받아들이고, 예쁜 손주를 품에 안는 행복한 순간을 아버지의 시선에서 그려낸 소파 광고 또한 눈길을 끈다. 건설사 광고의 초보 아빠가 겪게 될 삶의 행로일지 모른다. ‘아이는 부모라는 소파에서 자랍니다’라는 카피는 광고 문구 이상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모와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한다.

어찌 보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상업광고가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때문에 연애·결혼을 하지 않고,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때문에 애를 낳지 않는다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이 또한 시대착오적 발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