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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총선서 우파 8년만 실각 위기…친EU 야당연합 "이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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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제1야당 시민플랫폼의 도날트 투스크(가운데) 대표(전 총리)가 15일(현지시간) 총선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제1야당 시민플랫폼의 도날트 투스크(가운데) 대표(전 총리)가 15일(현지시간) 총선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치러진 폴란드 총선(하원 선거)에서 출구 조사 결과 집권 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날트 투스크 전 총리가 이끄는 야당 연합이 8년 만의 정권 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발표한 출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족주의 우파 성향인 여당 '법과 정의당'은 36.8%의 득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총 460석의 하원 의석 가운데 200석에 해당하는 수치로, 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231석)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법과 정의당은 2019년 총선에선 235석을 얻었다.이대로면 신생 극우 정당인 '자유독립연맹당'(출구 조사 결과 6.3%, 12석 예상)과 연합해도 과반이 안 된다.

반면 야당은 각각 '시민플랫폼' 31.6%, '제3의길' 13%, '신좌파당' 8.6%를 얻어 총 248석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연합 정부를 구성해 법과 정의당을 몰아내겠다”고 다짐했다. 친(親) 유럽연합(EU) 성향의 야당연합이 집권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15일(현지시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폴란드 총선에서 집권 여당 법과정의당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대표가 투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폴란드 총선에서 집권 여당 법과정의당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대표가 투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같은 조사결과가 나오자 시민플랫폼을 이끄는 투스크 전 총리는 “오늘만큼 기쁜 2등이 없었다”며 “오늘은 나쁜 시대가 끝나는 날로, 폴란드가 이겼고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집권당의 야로슬로프 카친스키 대표는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사실상 패배를 시인하면서도 “희망을 잃지는 않겠다”고 여운을 뒀다.

투스크 전 총리는 2007~2014년 총리를 지냈다. 총리 퇴임 이후인 2014~2019년엔 EU 이사회 상임의장을 지냈다. 이같은 성향에 비춰 재집권하면 폴란드의 대외 정책이 좀 더 EU에 가까워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그가 이끄는 야당 연합이 정부 구성에 성공하면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간 투스크 전 총리는 EU와 발맞추기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폴란드의 지속적인 지지를 강조해왔다.

폴란드 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부터 우크라이나에 전차 등 주요 무기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지만, 최근 들어 곡물 가격 하락 등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우크라이나 측과 갈등을 빚어왔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공개 비판에 나서자, 폴란드 정부는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도 “(그간 도와준 것을 잊고) 우크라이나는 구조자를 물 속으로 끌어내리듯이 행동한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올해 4월 폴란드를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총리와 서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4월 폴란드를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총리와 서 있다. AP=연합뉴스

이를 놓고 서방 진영에선 ‘대러시아 단일 대오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각에선 폴란드 정부가 10월 선거를 앞두고 내부 결집을 위해 반이민·반EU 정서를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공격을 받자 카친스키 대표는 투스크 전 대표를 “EU의 꼭두각시”라고 반격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폴란드 여당이 지난 8년간 과도하게 우클릭한 데 대한 반발이라는 분석도 있다. 법과 정의당은 2021년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성 소수자에 반대하는 정책을 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유권자들 사이에선 폴란드가 점점 EU와 멀어지고 (극우주의 정당이 집권한) 헝가리 등과 가까워지는 걸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폴란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1989년 공산주의 붕괴 이후 치러진 선거 중 가장 높은 투표율(72.9%)을 기록했다. 최종 선거 결과는 17일쯤 나올 전망이다.

관례에 따라 두다 대통령이 최다 득표당인 현 여당에게 먼저 정부 구성을 제안하고, 1당이 과반 연합 구성에 실패하면 차순위인 야당 연합에 정부 구성을 제안하는 수순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오는 12월에야 새 정부가 들어설 전망이다.

변수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폴란드에 앞서 치러진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출구 조사 결과는 친서방 정당이 우세했지만, 실제 결과는 반대였다”며 “폴란드의 양극화된 정치 지형을 고려할 때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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