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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 동아줄 놨다…한계기업 줄도산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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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6일부터 위기에 놓인 회사가 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활용해 회생할 기회가 사라진다.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연장안이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의 ‘3고(高)’ 여파 속에 한계 기업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기촉법 연장을 가로막아 구조조정 제도 공백을 불러온 정치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기촉법은 이날 일몰을 맞이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과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2건의 기촉법 연장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된 채 결국 일몰을 피하지 못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기촉법은 경영 상황이 나빠진 기업이 채권단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 ‘경영 정상화 계획’을 승인받으면 채권단 전체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워크아웃 제도의 근거법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며 2001년에 처음 제정됐다. 한시법 형태였는데 법안 제·개정 과정을 거쳐 이날까지 6차 기촉법이 시행됐다. 그사이 일몰 기한을 넘겨 효력을 잃은 경우는 4차례 있었다.

워크아웃 제도가 법적 근거를 상실하며 당장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에 대한 자금 신속 지원 및 채무 조정이 어려워졌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수단은 사실상 법정관리(회생절차)만 남게 됐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모든 채무가 동결되는 등 기업이 정상적인 사업을 영위하기 어렵다. 기업 정상화에 걸리는 시간도 워크아웃(평균 3.5년)이 법정관리(10년)보다 짧다. 워크아웃의 경우 법원 개입 없이 채권자 중심의 신속한 정상화 지원이 가능해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촉법은 하이닉스·현대건설 등 주요 기업의 정상화 과정에 기여하며 조속한 기업 정상화를 위한 유용한 제도로 인정받았다”며 “모든 채무가 동결되는 등 구조조정 강도가 센 법정관리와 비교해 워크아웃은 보다 신속하고 원활하게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중고’속에 한계기업이 많아지며 구조조정 수요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워크아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는 게 경제계의 목소리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상장회사 중 17.5%가 한계기업으로 나타났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 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한 회사다. 이 비율은 2017년 9.2%에서 매년 늘고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 둔화와 물가, 대출금리 상승으로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은 이자 상환이 어려워 구조조정 수요가 증가할 수 있는 만큼 효율적인 워크아웃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촉법 재입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당장 워크아웃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채권금융기관 구조조정 협약(안)’을 이달 중 발효토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자율 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기촉법 재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촉법 재입법이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관련 법안이 계류된 정무위 법안소위의 경우 지난 7월 4일 이후 개점휴업 상태다. 국민의힘이 야당의 민주화유공자법 단독 처리에 반발해 회의 일정을 전면 거부했다. 기촉법뿐 아니라 여야의 대립이 이어지며 경제·금융법안 관련 입법 논의는 멈춰서 있다. 야당과 법조계 일각에서 “법정관리가 있는데 굳이 기촉법이 필요한가”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변수다. 이에 기촉법 관련 논의가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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