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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반품·초저가로 40대남 공략 주효, 중국 '직구' 급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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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13면

대륙 e커머스의 공습

캠핑 마니아 김유혁(43)씨는 7월 캠핑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중국의 인터넷 쇼핑몰(e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알리)에 가입했다. 중국 쇼핑몰을 이용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은 있었지만, 저렴한 가격을 포기하기 어려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김씨는 “접이식 의자와 책상, 방수 텐트, 타프, 에어 매트리스를 구매했는데 결제금액은 10만원이 채 안 됐다”면서 “고급 캠핑용품에 비하면 질은 떨어지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소비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온라인 ‘직구’(직접구매)가 보편화하자 중국 e커머스의 공습이 시작됐다. 저렴한 가격과 맞춤형 서비스를 앞세워 한국시장을 파고들면서 덩치를 키우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국 온라인 직구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120% 증가(7778억원), 증가율로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에 기록했던 증가율(90%, 6246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중국 직구가 급증한 건 중국 e커머스 업체들이 한국시장에 직접 진출한 영향이다. 2010년 홍콩에서 시작돼 2018년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알리는 그동안 일부 직구족에게만 인지도가 있었다. 한국시장에 진출한지 5년이 된 지난해까지도 월 이용자 수는 100만명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알리가 3월 한국시장에 올 한 해에만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용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8월 알리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전년 동기(195만2346명)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379만4722명을 기록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알리는 올해부터 한국어 상담 서비스를 지원하고, 배우 마동석을 모델로 앞세워 국내 인지도를 빠르게 높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신규 쇼핑 애플리케이션 설치 1위를 기록했다. 레이 장 알리 한국 대표는 지난달 12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글로벌 상위 5위 안에 드는 중요한 핵심 시장”이라며 “한국시장에 매우 진심이기 때문에 한국 내 투자를 향후 더욱 키워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알리를 운영하는 알리바바그룹은 국내 e커머스 업체인 SK스퀘어의 11번가 인수를 추진하는 등 한국시장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의 또 다른 e커머스 기업인 핀둬둬의 ‘테무’는 북미, 유럽 시장에서 한차례 열풍을 일으킨 뒤 올해 7월부터 한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테무의 8월 기준 MAU는 전월 대비 4016% 급증했다. 눈에 띄는 광고나 모델은 없지만 최대 90% 할인 등 초저가 전략이 가격을 우선시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 e커머스의 확산에는 가격 외에도 배송 속도와 저렴해진 배송비의 역할이 가장 컸다. 물품의 가격은 저렴하지만 배송이 오래 걸리고, 배송비가 비싸다는 점은 그간 직구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알리는 5일 내 배송 보장이나 배송 지연 시 보상으로, 테무는 모든 주문 건에 대해 1회 무료 반품, 90일 내 전액 환불 가능 조건을 내걸며 불편을 크게 줄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벽 배송만큼의 빠른 속도감은 없지만, 국내 일반 택배사와 비교해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 소비자들을 이끌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리는 이에 더해 카카오·네이버·토스 등과 회원가입 및 간편결제 시스템을 연동시켜 회원가입이나 결제 과정에서의 허들도 낮췄다. 한송이 알리 한국 마케팅 총괄은 “한국시장에 맞춰 사용자 경험·환경(UI·UX)을 새로 구성하고, 국내 결제 업체와의 결제 연동 시스템을 갖췄다”며 “한국 시장에 대한 책임감도 커져 더 빠른 상품, 더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e커머스의 주 타겟이었던 20~40대 여성이 아닌 구매력을 갖춘 ‘40대 남성’ 공략 전략도 유효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52.1%)의 해외 직구는 통계 이래 처음으로 여성(47.9%)을 앞질렀다(건수 기준). 알리 관계자는 “기존 쇼핑 플랫폼에서는 의류, 화장품 등이 주를 이뤘다면 알리에서는 가성비 소형 전자제품이나 캠핑용품, 가구 등 40대 남성이 주로 찾는 제품의 판매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어 양국 e커머스 간 경쟁은 당분간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e커머스의 역습에도 불구하고 이들 업체가 국내 업체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업체들은 이미 로켓배송이나 도착 보장 등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e커머스 점유율은 쿠팡이 21.8%, 네이버가 20.3%로 ‘2강’ 구도가 단단하게 형성돼 있다. 중국 e커머스는 특히 가격에만 집중해 품질이 낮다는 평가가 많아 재구매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용자가 늘면서 개인정보 보호 이슈도 부각되고 있다. 미국 CNBC는 지난달 5월 “조사 결과 핀둬둬(테무의 모기업) 애플리케이션에서 악성 코드가 발견돼 구글 앱스토어에서 삭제됐다”며 “테무의 경우 드러난 악성 코드는 없지만 개인정보 접근 권한을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테무에서 생활용품을 구매한 김모(31)씨는 “초저가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중국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보안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구매 후 바로 탈퇴했다”며 “아직까지는 비교적 안전한 한국 쇼핑몰을 이용하는 게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번거로운 애프터서비스(AS)도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는 영역 중 하나다. 8월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해외 물품 직접구매 중 피해를 본 소비자의 60.8%가 알리를 통해 물품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피해 해결이 되지 않은 소비자도 38.7%에 달했다. 이에 알리 측은 연내에 수도권에 가품·불량품을 관리할 센터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가 AS를 받지 못하거나, 반품 시 구매 비용보다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며 “국내 안전기준에 부적합한 제품 등 안전성 문제가 여전해 직구 열풍을 마냥 좋게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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