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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전쟁’ ‘혁명’ ‘개혁’, 맛있는 상해 대갑게

중앙일보

입력

알이 꽉 찬 상해 대갑게. 셔터스톡

알이 꽉 찬 상해 대갑게. 셔터스톡

옛날 중국에서 가을은 게 먹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했다. 게가 통통하게 살쪄서 맛이 좋아 생긴 말이다. 그래서 게를 먹으며(食蟹) 한잔 술을 곁들이고(飮酒) 시를 읊으며(賦詩) 국화 감상(賞菊)하는 것을 금빛 물결 넘치는 계절인 가을의 즐거움으로 여겼다.

가을을 맞아 게를 맛보는 식도락은 굳이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대 중국에서도 가을이면 미식가들은 게 먹을 생각에 군침을 흘린다. 특히 10월과 11월에는 맛있기로 유명한 상해의 대갑게(大閘蟹)가 오동통 살이 올라 최고의 맛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상해 대갑게가 얼마나 맛있는지는 중국인들이 대갑게 먹는 모습만 봐도 어림 짐작할 수 있다. 포정해우(庖丁解牛)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소 잡는 백정이 뼈의 마디를 따라, 살코기의 결을 따라 칼을 움직여 솜씨 좋게 소 한마리를 해체한다는 뜻인데 그만큼 경지에 오른 최고의 숙련된 솜씨와 기술을 일컫는 말이다. 고전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눈 감고도 소를 해체할 수 있는 달인의 경지를 일컫는다.

중국인들 대갑게 먹는 모습도 마치 포정해우의 수준에 버금간다. 게를 먹을 때 껍질에 붙은 깍은 손톱만큼 작은 살점까지도 샅샅히 발라서 완벽하게 먹는다. 때문에 주먹 만한 크기의 대갑게를 다 먹으면 껍질만 한 숟가락 크기로 소복하게 쌓인다. 옆에서 곁눈질로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홍콩의 게 먹는 고수들은 상해 대갑게를 먹고 난 후 껍질만으로 게의 원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해체해 먹는다는 말도 있다. 게살 한 점을 놓칠세라 그만큼 알뜰살뜰 먹는다.

대갑게가 아무리 맛있기로 서니 게 한마리 놓고 뭘 그렇게 요란을 떨까 싶지만 사실 맛있기는 맛있다. 크기는 주먹만 한 것이 별로 먹을 것도 없어 보이지만 살이 꽉 차 있어 풍부한데다 식감도 탱글탱글하고 게살에서 마치 밤맛이 느껴지는 것 같아 독특하다. 맛은 주관적이니 우열을 가릴 수는 없겠고, 다만 우리나라 꽃게나 대게와는 또 다른 맛이다.

대갑게를 달인에 버금가는 솜씨로 완벽하게 해체해 먹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 그만큼 귀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대량 양식에 성공했기 때문인지 예전만큼 비싼 것 같지는 않지만 꽤 오래 전에는 달랐다. 상해의 한 음식점에서 접시에 어른 주먹 만한 크기의 대갑게 두 마리가 달랑 놓여있고 새우찜이 곁들여 나왔는데 그 값이 당시 북경의 가정부 반달치 월급에 해당됐다.

2000년대 들어 경제발전으로 상해에서 대갑게가 유행을 했지만 사실 대갑게가 유명해진 것은 홍콩 덕분이었다. 홍콩 부자들은 가을이 되면 개혁개방 이전,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상해에서 싱싱한 대갑게를 공수해 와 식도락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니 홍콩에서도 그 값이 만만치 않았는데 물건은 드물수록 귀하고, 음식은 귀할수록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니 홍콩 부자는 물론 일본에서도 홍콩까지 날라와 먹었으니 미식가들 사이에서 대갑게에 대한 입소문이 퍼졌다.

상해 대갑게가 중화권에서 명성을 얻은 것은 홍콩 덕분이지만 중국 본토에서 대갑게가 맛있다고 소문난 것은 꽤 오래 전부터다,

1000년 전인 송나라 때의 『태평광기』에 양자강(長江) 하류에서 잡히는 다양한 지역 특산 게에 대한 기록이 보이니 중국인들은 이때에도 가을이면 게 맛 볼 생각에 입맛을 다졌던 것 같다.

다만 지금은 상해 대갑게, 특히 인근의 양징호(陽澄湖)에서 나오는 대갑게를 최고로 치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문헌마다 지역 특산 게를 놓고 갑론을박 품평이 요란했는데 강소성 소주시 옆의 태호(太湖) 게, 항주 옆 가흥시의 남호(南湖) 게, 지금은 상해시로 편입된 숭명(崇明)현의 게가 최고봉 자리를 놓고 우열을 다퉜다. 심지어 남과 북 사이에서는 게는 역시 천진에서 나는 북쪽 게가 맛있다는 주장과 남쪽 게가 더 낫다는 주장이 맞섰다. 하지만 어디에도 상해 대갑게, 즉 양징호 대갑게는 보이지 않는다.

이랬던 양징호 대갑게가 현대에 들어 유명해진 데는 배경이 있으니 상해의 부침과 관련이 있다. 상해는 1842년 아편전쟁이 끝난 후 이듬해 영국과 청나라와의 조약에 따라 대외무역항으로 지정된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거류지가 형성되면서 도시가 빠른 속도로 발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큰 돈을 번 중국 상인들이 생겼다. 이들이 가을이 되면 가까운 곳에서 조달해 먹었던 게가 양징호 대갑게였다. 양징호의 상해 대갑게가 옛 문헌에서 이름을 떨쳤던 소주나 가흥, 숭명현 게를 누르고 더 유명해진 일차적 계기다.

그러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상해의 돈 많은 부자들은 물론 중산층이 대거 홍콩으로 이주했고 이들이 홍콩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상해 대갑게 먹는 계절이 되면 홍콩의 상해 음식점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이어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광동성 경제가 발전하면서 대갑게를 비롯한 홍콩의 음식문화가 광동성에서 유행한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광동성에 이어 상해가 경제중심지로 급성장하면서 원산지 상해에 가을철 양징호 대갑게 먹는 문화가 역수입돼 퍼졌다. 중국의 공산화와 개혁개방이 가을철 게 먹는 풍속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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