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까지 덮친 아프간, 1500만명이 끼니 걱정하는 상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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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 서부 헤라트주 한 마을에서 11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있다. 이 지역은 지난 7일 규모 6.3 지진이 강타한 데 이어 11일에도 같은 규모 지진이 발생해 최소 1000명이 숨지고 500명 이상이 실종됐다. [AP=연합뉴스]

지난 7일 오전(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서부 헤라트주에 규모 6.3 지진이 강타했다. 전 세계 이목이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에 쏠린 때였다. 지진은 취약한 아프간 시골 마을 20곳의 흙집 2000채를 흔적도 없이 무너뜨렸다.

11일 기준 사망자 수는 약 1000명. 실종자가 500명을 넘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피해 규모가 결코 작지 않지만, 서방 국가들에 아프간은 ‘잊혀진 나라’가 돼 가고 있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이후 주요국은 원조의 손길을 사실상 끊었다.

샤웨이 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샤웨이 리(47·사진) 아프간 국가사무소장은 12일 국회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이번 지진으로 가뜩이나 취약한 이들이 집과 소유물을 모두 잃었다”면서 “어떤 마을은 지진 이후 건물이 거의 없는 평원이 됐다”고 말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전날 방한한 그는 외교부와 국회 관계자들을 만나 지원을 요청했다.

리 소장은 “지진이 일어났을 때 집 안에 머물러야 했던 여성과 어린이가 주로 목숨을 잃었다”며 “탈레반 정권이 여성에게 공적 활동을 사실상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생존자들은 지진이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나도록 변변한 구조 장비 없이 맨손으로 잔해를 치우며 가족을 찾고 있다.

리 소장은 “여러 이유로 아프간은 국제 사회에서 잊힌 비극이 돼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가 보유한 자원도 거의 떨어져 가고 있어 약 1500만 명이 다음 끼니가 어디에서 올지 알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생아·산모 140만 명을 포함해 700만 명의 취약 가구를 지원하려면 최소 4억 달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리 소장은 “특히 전쟁 등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아이를 홀로 키우며 경제 활동조차 할 수 없어 극도의 빈곤에 몰려 있다”면서 “이들에게 WFP 지원은 마지막 생명줄”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을 겪었던 한국 젊은이들의 조부모 세대는 굶주림 앞에 국제 사회의 도움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아프간 여성과 아이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리 소장은 여성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탈레반 치하 아프간에서 ‘히잡 쓴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독특한 존재다. 2021년 8월 미국이 병력을 전면 철수하기 한 달 전 아프간에 배치돼 대피 현장을 지켜봤고, 지난 1월 소장에 임명됐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 재원으로, WFP 합류 전엔 미 국제개발처(USAID)에서 일한 중동·아프리카 인도주의 문제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