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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잘못은 할 수 있지만 잘못해서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纸上谈兵(종이를 놓고, 전쟁을 논하다. ‘책상물림’은 한계가 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중국에서의 정보는 발로 뛰어라’(앤도 이사오 교수)

황홀(恍惚)의 사전적 해석은 ‘눈이 부시어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하거나 화려함(〈네이버 국어사전〉)’이다. 그런데, 원래 한문을 풀어 보면, 황(恍)은 ‘빛이 너무 밝아 눈이 부셔서 안 보이는 것’이고, 홀(惚)은 ‘빛이 너무 어두워서 안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최진석). 결과는 똑같이 ‘안 보인다’이다. 너무 어두워도 안 보이지만, 너무 밝아도 역시 안 보인다.

중국은 정보가 부족해서, 혹은 언론이 통제되어서 사실(또는 정보)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있어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너무 적은 정보로는 정확한 사실을 알아낼 수 없다. 한편, 많은 정보 역시 진실을 가리게 되기는 매한가지다. ‘황홀’이다.

“완전한 정보를 끝까지 입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정보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입수하는데 소용되는 비용이 입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초과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신제도학파 기업이론〉 呂運昇)”

중국에서는 양질의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많이 뛰다 보면, 정보의 양도 늘어나고 질도 좋아질 것이다. 현실은 안타깝게도, 정보를 구하려는 노력도 부족하고, 정보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기업의 리더가 직접 발로 뛰지도 않을뿐더러, 또 직원들이 보고하는 정보의 진위에 대해 ‘확인’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앤도 이사오 교수는 일본인이다. 저명한 컨설팅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학자다. 그런데 놀랄 만큼 현장을 잘 안다. 일본인인 교수가 ‘우리나라 기업의 중국 사업’에 대한 의미 있는 지적을 했다.

엔도 이사오 교수와의 간담회 기사 (모 일간지 2012.5.6 )
“현장을 뛰세요…. 컴퓨터가 아니라 발로 뛰며 땀을 흘려 얻는 정보로 승부해야 합니다…. 영업 및 기획 등 정보를 다루는 부서는 반드시 발로 뛰어야 한다. 중국은 오픈된 정보가–많이 좋아 졌지만–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또 정확성이 떨어지므로 발로 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방 출장은 고사하고, 북경 내에서도 교통이 불편하다든가, (정보를 갖고 있는) 기관, 부서 등의 문턱이 높으므로 직접 만나기가 어렵다.

한편, 내용이 미묘하다든가 미발표된 정보 등은 직접 대면해야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열심히 현장을 뛰어야 하는데 그런 이유는 대략 3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나는, 인터넷 등으로 전화 등으로 파악한 정보만으로도, 중국을 잘 모르는 한국인 상사가 만족하기 때문이다.

둘째, 현장으로 다니면서 가치 있는 정보를 구할 만큼 동기 부여가 없다. 이런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분석할 만한 능력 있는 관리자가 드물다. 분석 능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한국계 직원의 일하는 방식 역시 어느 정도 ‘형식주의’가 많다. 이는 ‘첩보’에 대한 보고에 대해 본사의 무관심과 무시를 당한 경험으로 인한 일종의 학습효과일 수 있다.

셋째, 이러한 미묘한 정보 내지는 미발표 정보 수집에 대해서, 현지 (중국인) 직원들은 과거의 ‘간첩’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십여 년 전의 기사다. 당시 이 기사를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현장감 있는 지적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중국 경영학을 가르치는 대학들도 이런 깊이의 강연을 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교수의 지적은 깊이는 물론이고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이 있다. 이 기사가 발표된 지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여러 장소에서 소개했었는데, “나도 이 기사를 봤다”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진에게는 금과옥조인데,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이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해변에서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리면, 익사(溺死)자도 늘어난다. 인과관계가 있다?

어느 책에서 통계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했다. 여름철 해안가에서 아이스크림의 판매량이 늘면, 익사자가 많아진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의 어떤 성분이 바닷물과 만나면, 우리 몸에서 어떤 화학작용을 하는 걸까?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얼마 후에 입수를 해야 하나? 얼마큼 먹어야 안전한 걸까? 여러 질문이 많아진다. 도대체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걸까? 최소한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작자는 말해주는 정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이다. 여름에 바닷가에서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리는 날에 익사 사고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믿을 만한 숫자와 통계가 그렇게 나와 있다. 그런데, 두 사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정답은 뻔하다. 날씨 탓이다. 날씨가 무더워지니 해변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 거고, 더울수록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냥, 해변에 사람이 많다 보니, 그만큼 사고가 더 많이 생기는 거다. 비슷한 장소와 시간대에서 확인되는 사실들 중에는 인과관계 혹은 상관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가 있다.

정보에 있어서도, 내가 아는 것만 혹은 파악할 수 있는 것만 가지고 억지로 퍼즐을 맞춰서는 안된다. 황홀의 홀이다. 정보가 적으니 어두워서 앞을 볼 수가 없다. 한편,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는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고, 본질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황홀의 황이다. 정보가 넘쳐나서, 즉 빛이 너무 밝아서 앞을 볼 수가 없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런 것도 파악이 안돼?”  

‘있는 것’보다, 그런 규정이나 사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더욱 어렵다.

어디까지 파악한 후 판단을 내려야 할까? 어렵다. 중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실력을 쌓아야 직관력이 생길 것이다. ‘어느 정도 정보가 쌓이면, 그리고 더 이상의 정보 파악이 매우 어려울 때’ 바로 이때는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본사나 혹은 리더들은 대부분 ‘더 많은 그리고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라고 다그친다. 현지에서 일하는 ‘진짜 중국통’들은 위에서 아무리 호통을 친다고 해도, 틀린 정보(?)를 보고할 수는 없다. 없는 정보, 아니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할 수도 없다.

중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늘 “혹 나중에 뜻밖의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이 있다. 당연하다. 그런데, 리더라면 판단을 하고, 현장을 감안해서 지시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모두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나중에 문제가 되면 당신 책임이다”라는 식의 책임전가형의 지시를 내리는 경향이 많다.

“그런 규정이 없나 확인하라구! 없는 게 확실해? 혹 있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그렇게 당하고도,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해?”라며 호통을 친다. ‘있는 규정’과 ‘있는 사례’를 찾는 것이 늘 용이하지는 않겠지만, 그 끝이 있다. 찾으면 끝난다. 그런데, ‘없는 규정과 사례’ 즉 ‘존재하지 않는 규정과 사례’를 찾아서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정말로 골치 아프다. 경영현장에서 (규정이나 사례가) ‘없다는 것을 담보’하기는 정말 어렵다. 심지어 그런 규정을 담당하는 중국 정부의 담당자마저도 “그런 거 없음을 보증합니다”라고 말하려면, 오히려 ‘용기’가 필요하다.

중국 사업의 리더는 정보를 수집하는 노력도 당연히 해야 하지만, 멈추고 판단해야 할 시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중국기업의 리더들은 ‘정보가 부족하다’며 판단을 고의로 미루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든다. 이런 리더를 보좌하는 중국통들은 매우 고통스럽다. 고통을 느끼면 중국(혹은, 관련 업무)을 떠나려고 한다. 여기서 안 끝난다. 이를 바라보는 후배들은 중국통이 되려는 꿈을 접는다. 개인도 회사도 중국에서의 경쟁력을 잃게 된다. 우리 기업은 지금 거의 여기까지 온 듯하다.

한편, 책임회피를 해가며 승승장구한 ‘무늬만 중국통’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리더들은 “내가 틀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정보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책임 전가를 한다. 결국, “성공한 것은 나 때문이고, 실패한 것은 (나의 지시를 제대로 못 해낸) 당신들 탓이다”라는 볼썽사나운 상황을 종종 보여준다.

사례: 때로는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대응’을 해내야 한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지금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특정한 사례라기보다는,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일반적인 상황이라 소개해본다)

몇 달 전인가 중국 최고 지도자가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의 P 기업을 방문했다. (이런 경우, 즉 중국의 최고 VIP가 방문할 경우 해당 사업체는 ‘성역(聖域)’이 된다는 우스개도 있다. 그만큼 드러나지 않는 많은 혜택이 생길 수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P사의 한국 주식이 당장에 얼마나 올랐다는 기사를 봤다. 그 소식은 당연히 P사의 전망에 대해 매우 낙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런데 뜻밖의 이슈가 있다고 한다. P기업은 ‘해당 공장’을 매각하려 한다는 소문이다. 한편, “방문 사실을, P사는 당일에서야 알았다!”고 한다.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는, 매우 흥미로운 화제였다. 즉, “소문대로 P사가 철수를 할 것인가?”, “중국 정부가 (P사는 물론) 우리나라 기업에 보내는 호의적인 신호인가?”, “최고위층이 방문했으니, 이제 P기업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줄까?“, 그런데 “(최고위층이 방문했는데도, 체면을 안 세워주고) 만약 철수를 강행하게 되면, 그 후유증은?” 등등 추측이 난무했다.

중국 VIP의 방문에 대한 의중을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고 계속 ‘의중’ 파악에만 몰두해야 할까? 혹, 방문 사실과 드러난 과정만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려울까? 판단이 안 된다고 머뭇거리며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어떤 경우라도, 대응책은 마련했어야 했다. (물론 이런 상황을 맞게 되면, 대부분의 조직에서도 당연히 대응책을 보고한다. 결론은 뻔하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상황을 확인 중이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라는 식의 고전(古典)적인 결론이었을 것이다. 한결같이 ‘신중히 검토 중’이라는, ‘신중한 변명’을 한다)

少见多怪(경험이 부족하면, 당연한 일도 이상하게 보인다)

P사의 현지법인이 당일에서야 방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이해가 안 되지만’ 분명 사실일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P사는 중국 VIP의 방문 일정을 사전에 정말로 몰랐을 것이다. “설마 몰랐을까?”라며, 우리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중국 실전 경험이 많은 이들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 정부인 광둥 성 정부는 어땠을까? 미리 알았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겠다. 다만, P사의 공장방문은, 광둥 성 정부가 추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된 상황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진 추측은 가능하지만, 일단 방문을 한 이상 후일담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어야 했다. “고위층들의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종종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P사는 본사의 사업부장 수준이 아닌, 그룹의 최고위층에서 향후 대응 방안에 관한 심각한 회의를 해야 할 때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할 것이다. 확인 못 할 정보(이런 상황을 정확히 말해 줄 인맥이 없을 것이다. 특히 중국인이라면 정확한 정보를 안다고 해도 이런 민감한 상황은 정확히 말해주지 않는다)를 파악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그러기보다는 VIP 방문과는 상관없이 원래 계획대로 공장을 철수할지, 아니면 다시 중국 사업에 집중할지에 대한 그룹 차원의 결정을 해야 할 때다”. 당시, 주위 사람들과 이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방문한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를 알아보려는 노력은 ‘당연해 보이지만, 실재로는 무의미’하다. (솔직히 말해보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만한 ‘중국 실력’이 부족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가지고 판단을 해야 한다. VIP 방문을 엄청난 변수로 인식하고, ‘철수냐, 아니면 다시 집중하냐’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피동적으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전 통보 없이 방문’한 상황에 대한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여기서 소개하기는 불편하고, 또 불필요하다고 했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은 그 과정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향후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P사가 하기 나름’이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고위층의 방문은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방문을 잘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지만, 잘못 대응하면 ‘중국에서는’ 매우 위험하다.

可以过错 但’不可以错过’
잘못(过错)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놓쳐 버리면(错过) 안된다.

고위층의 방문은 어떤 ‘신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이라고 한 이유는, 늘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때마다 ‘중국식 사유에 의거’한 분석과 판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실천을 해내야 한다. 가만히 ‘정보가 취합될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机不可失 时不再来(기회는 놓치면 안 된다.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잘못을 할 수는 있지만, 잘못해서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可以过错 但不可以错过)’는 말을 자주 한다. 잘못을 하고 나면 실패로 배우는 노하우라도 갖게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판단하고 실행할 소위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설령 ‘발생한 상황’이 본래 그런 의미가 아니었더라도, 중요한 신호로 바꿀 수가 있다. 비유하면, 상황은 요리의 중요한 재료와 같다. 동일한 식자재라도 어떻게 요리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P사의 경우 VIP 방문이라는 상황은, 우리가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내어 극적인 기회로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몰라서 기회를 놓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어려워 보여서, 불편해서, 심지어는 귀찮아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안일한 개인으로 인해 회사도 국가도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아무 일도 안 한다고 해서, 아무 일도 안 생기지는 않는다. ‘움직이지 않으니 제 자리에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逆水行舟(물살을 거슬러 배를 몰다. 노 젓는 일을 멈추면, 배는 뒤로 간다). 남들이 앞으로 달릴 때, 그만큼의 속도는 내줘야 최소한 뒤처지지는 않는다.

리더라면, “정보를 더 많이, 더 정확하게…더 더 더….”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판단해야 할 시점’을 ‘판단’해야 한다.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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