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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전국 224개 시·군·구에 영화제만 220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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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병재 문화자유행동 영화분과 위원

김병재 문화자유행동 영화분과 위원

매년 220개 이상의 영화제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다. 익히 아는 부산·전주·부천영화제 등 국제영화제부터 일반인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듯한 무주 산골영화제, 목포 국도 1호선 독립영화제, 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도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이런 영화제가 41개이고 전국의 크고 작은 영화제를 합치면 시·군·구 기초지방자치단체 숫자(224개)에 육박한다.

이처럼 영화제가 많은 이유는 가성비가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 콘텐트이고, 인기 배우나 연예인을 초청해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고, 적당한 예산으로 가격 대비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축제로 인식된다.

지역마다 앞다퉈 영화제 남발
주민들 외면받아 상당수 폐지
예산낭비 따지는 계기 삼아야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영화제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다 보니 부침이 심하다. 평창·제천·강릉·전주·울주 산악 영화제 등은 영화제의 정체성 논란과 예산 문제, 지역민의 무관심 등으로 사라지거나 내홍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9년에 시작한 평창 영화제는 태동 자체가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 보였다. 주로 북한 영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등 강원도민의 삶과는 거리가 먼 행사였다. 4년간 세금 84억5000만원이 투입됐지만 편향된 영화인, 그들만의 잔치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같은 강원도에서 열렸던 강릉 영화제도 3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지역 호응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폐지됐다. 제천 영화제의 경우는 영화제 집행부의 도덕적 해이가 논란이 됐다. 결국 엉터리 회계와 부실 운영으로 혈세가 투입됐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부산·부천·전주 영화제 등에 지자체 지원과는 별도로 매년 많게는 최대 12억8000만원(2022년 부산영화제)부터 적게는 1000만원(우리나라 가장 동쪽 영화제)까지 모두 53억원 안팎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이런 지원과 영화제 숫자의 폭발적 증가가 한국영화 발전과 지자체 주민의 문화복지에 얼마나 기여해왔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부산·전주·부천 등 이른바 ‘빅3 영화제’ 관계자들조차도 국내 영화제가 난립해 이미 포화 상태라고 지적한다.

영화제 전문인력 부족과 계약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 영화제 밥그릇 싸움에다 지자체와의 갈등, 불안전한 재원 확보 등으로 제살깎아먹기식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최근 영화제 예산이 삭감되자 일부 영화 관련 단체들은 “영화제 지원 축소는 영화 산업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한다.

주지하다시피 올해 들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으로 비상 국면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일찌감치 긴축재정 기조다. 이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 예산도 지난해 1100억을 정점으로 올해 850억으로 줄었고, 2024년엔 734억원으로 축소된다. 영진위 모든 사업에서 40~50% 삭감이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영화제들도 각 지자체 지원과 자체 수익사업 확대를 꾀할 수밖에 없다. 영화제 규모부터 줄여야 한다. 나라 전체 기조가 긴축재정으로 가고 있는데 지원금 챙기기 투쟁에 나서는 것이 공감을 얻겠나. 120억원으로 가장 큰 부산영화제의 경우 영진위(국고) 13억 지원에, 부산시가 절반 (60억원)을 지원하고 자체 수익사업으로 영화제를 치르고 있다. 영진위 지원금 중 50%가 삭감되지만 이젠 국고에 기대지 말고 지자체 차원에서 해결하거나 자체 사업으로 해결하는 게 합리적이라 본다.

코로나19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장으로 영화제의 위상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더 문’ 등의 추석 연휴 극장가 흥행 참패가 말해주듯이 코로나 사태 이후 대중이 모이는 행사에 가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OTT 등장으로 관람 행태도 크게 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군중이 모이는 영화제에 집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프랑스·이탈리아에도 적지 않은 영화제가 개최되지만 한국과 비슷한 규모의 나라에서 220개의 영화제가 열린다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정부 지원금에 손을 벌리기 전에 지역 영화제를 전반적으로 문제점을 점검하는 것이 순서다. 지자체 주민과는 상관없는 영화인들만의 영화제에 이중삼중으로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병재 문화자유행동 영화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