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정재훈의 음식과 약

부작용이 희소식이 될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약의 부작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부작용이 약효가 있다는 표시가 되기도 한다. 요즘 탈모치료제로 많이 사용되는 미녹시딜이란 약이 있다. 미녹시딜 사용 초기에 역설적으로 머리카락이 더 빠지기도 한다. 모발의 휴지기를 단축하기 때문이다. 탈모 치료를 원하는 사람에게 이는 희소식이다. 모발의 성장기도 그만큼 빨리 시작되고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탈모 치료를 위해 미녹시딜을 먹거나 바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에 머리가 조금 더 빠진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미녹시딜이 제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꾸준히 약을 사용하면 머리털이 더 빨리 자라고 모발 밀도가 높아져 머리숱이 많아진다.

탈모에 대한 고민에선 남녀가 없다.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 탈모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탈모에 대한 고민에선 남녀가 없다.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 탈모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불행히도 미녹시딜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녹시딜은 본래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지만 모낭에서 황산전달효소에 의해 활성화되어 약효를 낸다. 모낭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을 확장해 혈액 흐름을 좋게 하고 모낭이 더 커지도록 한다. 모낭 주변에 혈관이 새로 생겨나도록 해주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모낭세포 속의 황산전달효소 수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약물을 활성형으로 바꿔주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미녹시딜 사용 처음 2~3주 동안 탈모가 증가하는 건 그래서 반가운 부작용이다. 모낭세포 속 황산전달효소가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스피린을 비롯한 소염진통제는 황산전달효소의 작동을 방해하여 미녹시딜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탈모 완화를 위해 미녹시딜을 사용 중인 사람이라면 기억해둬야 할 상호작용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에 가벼운 몸살 증상도 약효가 나고 있다는 표시이다. 열·오한·두통·피로감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인체의 면역반응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막 시작되었던 2020년 12월 미국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이다. 백신 2차 접종 뒤에 피로·불편감·두통 같은 증상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항체 수준이 거의 두 배였다. 피부 체온이 1°C 높으면 2차 접종 6개월 뒤에 항체 수치가 거의 세 배로 높게 나타났다.

이전에 백신을 맞고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면역 반응이 덜 나타나서 효과가 떨어질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같은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다른 연구 결과에서는 백신을 맞은 뒤 아스피린·이부프로펜 같은 소염진통제를 복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항체가 더 많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을 맞은 뒤에 소염진통제를 먹었다는 건 접종 뒤에 가벼운 몸살 증상이 있었다는 거고 그만큼 면역반응이 활발했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부작용이라고 너무 미워만 할 일은 아니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