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로봇배송 걸음마도 못 뗀 한국…3중 규제에 성장판 닫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겉도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 육성

국내에 설치된 승강기는 83만 대지만 로봇과 연동되는 기기는 적다. 충주시 현대엘리베이터 스마트 팩토리에 있는 로봇팔 모습. 강기헌 기자

국내에 설치된 승강기는 83만 대지만 로봇과 연동되는 기기는 적다. 충주시 현대엘리베이터 스마트 팩토리에 있는 로봇팔 모습. 강기헌 기자

지난 6일 충북 충주시 용탄동 제5산업단지에 자리한 현대엘리베이터 스마트 팩토리. 주황색 로봇이 강판을 접자 엘리베이터 해치도어 모양이 점차 드러났다. 원자재 입고부터 본드 살포, 보강 접착 작업도 로봇이 맡았다. 엘리베이터 문(도어)을 1차 조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 남짓이었다. 가공이 끝난 도어는 무인운송 지게차(LGF)가 실어 날랐다.

스마트 팩토리 1·2·3공장에선 모터 조립 등 일부 라인을 제외하곤 작업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윤장진 현대엘리베이터 스마트 팩토리 담당 상무는 “제1공장에서만 47대의 로봇이 엘리베이터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며 “공장 자동화율은 78%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 주요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이다. 충주 스마트 팩토리는 3320억원이 투입돼 지난해 7월 준공했다. 현재는 협력사 10곳을 포함해 16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이곳은 국내 유일의 ‘라스트 마일(Last Mile)’ 생산 기지이기도 하다. 라스트 마일은 상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물류 배송의 마지막 구간을 뜻한다. 지난해 10월 완공한 경기도 판교 네이버 제2사옥 1784에 도입한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는 라스트 마일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로봇은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로 건물 곳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이기복 현대엘리베이터 기성대우는 “엘리베이터는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모빌리티 플랫폼의 중심축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는 택배 차량 출입 제한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아파트 단지 등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럭스리서치는 2030년 글로벌 자율주행 로봇 시장 규모가 221억 달러(약 29조8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전체 배송 물량 중 20%는 로봇이 담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하지만 한국은 ‘라스트 마일 후진국’이다. 국내에 설치된 승강기는 83만 대(올 8월 말 기준)에 이르지만, 로봇과 연동되는 기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자율주행 로봇은 호텔이나 식당 등 일부 실증지역을 제외하곤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규제 장벽 때문이다. 도로교통법과 공원녹지법 등에 따라 자율주행 로봇의 실외 이동은 제한된다. 택배 사업은 이륜차와 화물차만 가능하다.

심각한 인력난도 미래 모빌리티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 제조업의 경우 협소하고 높은 곳에서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젊은 인력 유입이 원활하지 못하다. 국내 엘리베이터 유지 관리 업체는 1000여 곳에 불과한데 이들이 전국 83만 대 엘리베이터 관리를 도맡고 있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도 한국승강기대와 한국교통대뿐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여기에다 관련 유기적 지원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대년 충주시 투자유치팀장은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쉰들러의 경영권 공격으로 충주 지역의 승강기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라스트 마일 산업을 육성하려면 유지보수는 물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승강기 전문 인력 육성이 필요하다”며 “또 산업 전반에 자리한 최저가 입찰 관행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異種) 산업 간 화학적 결합이 가능하도록 모빌리티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승강기 업계 관계자는 “라스트 마일 규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규제를 몇 개 푼다고 해서 산업을 제대로 키우기 힘들다”며 “밑바닥부터 통째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