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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주먹구구식 환경규제 사라져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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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임상준 환경부 차관

임상준 환경부 차관

“너무도 무리한 규제라서 도저히 지킬 수가 없어요. 그거 새로 설치하려면 3년 매출액을 다 쏟아도 안 돼요. 차라리 사업을 때려치우고 말지.”

“고강도 환경규제가 없었다면 우리의 수출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높은 기준에 맞춰 신규투자를 하고 제품을 혁신해서 지금 수준에 왔거든요.”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사회적 규제는 정의롭다. 그중 환경규제는 지존이다. 규제의 성은 견고하고 처벌은 응징에 가깝다. 킬러규제에 등극하기에 손색이 없다. 경제규제는 완화하더라도 사회규제는 목적이 공익에 있으니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차별화는 나름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규제의 예상치 못한 폐해는 경제규제와 사회규제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30년간의 공직 경험이었다.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그 수단으로 선택한 기제가 합리적이지 않다면 결과는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많은 선례가 보여준다. 2020년 정치적으로 급조된 임대차 3법은 시행되자마자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목적과는 정반대로 전세시장을 교란시켰다. 전셋값이 폭등하고 매물이 급감했다. 신혼부부와 사회초년생들은 전세를 찾아 헤매다 빌라 전세사기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2012년 불산 사고 등을 계기로 화학물질 관리를 대폭 강화한 화평법과 화관법이 2015년 시행되었다. 사고 예방이라는 목표에 집착했을까? 당초 벤치마킹하려던 유럽연합(EU)보다 10배나 높은 기준이 설정되었다. 사업을 접겠다는 중소기업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어떤 ‘수단’을 선택할 것인가?

환경의 보전과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는 정책의 목적은 불가침이다. 하지만, 그 신성한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을 선택할 때 우리는 오히려 냉정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규제는 그 목표가 이상적이고 계량화가 어려워 쉽게 정치적 성격을 띠고 대중주의로 흐르는 특성이 있다. 1970년대부터 많은 환경기준이 만들어져 왔다. 그중에는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혁신의 계기로 작용한 것도 있다. 한편, 당시의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해 단편적으로 접근하거나 때로는 이상에 치우쳐 주먹구구로 만든 규제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공공목적을 규제가 아닌 과학으로 달성할 만큼 높은 기술 수준을 갖고 있다. 우리 환경산업은 이미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 환경부는 100조원의 도전적 수출목표를 설정하고 올해만 15조원의 비약적 성과를 올렸다.

국민과 기업을 힘들게 하는 기준인지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기업을 혁신하게 하는 규제인지, 시장을 죽이는 정책인지 아니면 시장을 만드는 수단인지를 깊이 성찰하는 것이 우리 공직자들의 의무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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