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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시부모님, 이스라엘에 갇히셨다" 결혼식 전 터진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결혼식은 기약 없이 연기됐고, 한국인 시부모님도 고국으로 돌아갈 길이 없어 막막합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 도시 헤르츨리야에 사는 로템 라비(32)는 지난 7일(현지시간) 새벽, 도시 전체에 울리는 공습 경보에 눈을 떴다. 오는 13일 앞두고 있던 한국인 남편과의 결혼식을 포기하게 만든 사이렌 소리였다.

라비는 예루살렘 히브리대 재학중 유학생인 남편과 연을 맺었다. 지난 4월 한국에서 전통 혼례를 치른 라비 부부는 10월 13일 한국인 지인 10여 명을 포함해 150여명의 초대해 유대교식 전통 혼례를 치른 뒤 이스라엘에 정착할 계획이었다. 사이렌이 울린 건 라비의 시부모가 결혼식 참석을 위해 이스라엘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한국인 남편과 이스라엘에서의 두 번째 결혼식을 예정했던 로템 라비(32)는 지난 7일(현지시간) 발발한 전쟁으로 결혼식을 무기한 연기했다. 사진 로템 라비 제공

한국인 남편과 이스라엘에서의 두 번째 결혼식을 예정했던 로템 라비(32)는 지난 7일(현지시간) 발발한 전쟁으로 결혼식을 무기한 연기했다. 사진 로템 라비 제공

SNS를 통해 인터뷰에 응한 라비는 “공습 이후 돌아갈 항공편도 계속해서 취소되고 있어 막막한 상황”이라며 “전쟁으로 징집된 동창 한 명도 오늘(9일) 아침부터 연락이 닿지 않고 있고, 사람들은 전쟁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마트에서 물과 식료품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한 대학 어학당에서 6개월간 한국어 공부를 하기도 했던 라비는 하객들에게 준 답례품으로 한국 전통 부채며, 사물놀이 악기 모양 열쇠고리 등을 잔뜩 준비해 갔지만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그렇지만 그는 “전쟁이 내일 당장 끝난다고 해도 곧바로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남편과 이스라엘에서의 두 번째 결혼식을 예정했던 로템 라비(32)는 지난 7일(현지시간) 발발한 전쟁으로 결혼식을 무기한 연기했다. 사진은 그가 답례품으로 준비한 한국 전통 부채. 사진 로템 라비 제공

한국인 남편과 이스라엘에서의 두 번째 결혼식을 예정했던 로템 라비(32)는 지난 7일(현지시간) 발발한 전쟁으로 결혼식을 무기한 연기했다. 사진은 그가 답례품으로 준비한 한국 전통 부채. 사진 로템 라비 제공

 한국에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도 무너지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한남동 언덕배기에 있는 유대교 회당에는 이스라엘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할 곳을 찾아온 유대교인들의 발걸음이 계속됐다. 한국을 여행하던 중 전쟁 소식을 들었다는 유대계 미국인 리 앤(30)은 “할머니와 사촌들이 이스라엘에 사는데, 93세의 고령인 할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걱정돼 TV도 틀지 않고 있다더라”며 “재미있기로 유명한 놀이공원에 가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고, 남산 타워에 올라 교회들을 봤을 때도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말했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랍비 오셔 리츠만(41)이 지난 9일 회당에서 조국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랍비 오셔 리츠만(41)이 지난 9일 회당에서 조국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이 회당은 국내 유일의 유대교 랍비 오셔 리츠만(41)의 자택이기도 하다. 헤르츨리야 출신으로 2008년에 한국에 정착한 그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여전히 고향과 인근 도시에 살고 있어 가슴을 졸이고 있다. “랍비인 형제 한 명이 한 병원에서 사람들을 돕고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크고 격전지와 가까운 편”이라며 “잠을 잘 시간도 없이 바빠 통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걸프전 이후 이스라엘에선 건축법상 방공호를 갖추도록 되어 있지만, 부모님이 사는 오래된 아파트에는 방공호도 마련돼 있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리츠만은 “지난 주말 동안 정기 예배가 없었지만 100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와 기도했다”며 “지인이 공습으로 사망해 마음을 달래려고 온 사람, 하마스에 납치된 딸이 무사하길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불안과 근심에 휩싸인 건 팔레스타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한남동 이슬람 사원 인근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출신 A씨(34)는 “가자지구 내에 지인은 없지만 같은 나라 사람이고 무슬림인 만큼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며 “무력 충돌이 계속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 거주 무슬림들은 오는 11일 오후 12시 30분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근처인 광화문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보복 폭격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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