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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EU “전략 부품은 자급자족이 원칙…자국 공급망 강화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21년 요소수 품귀 사태가 일었던 당시 경기 용인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21년 요소수 품귀 사태가 일었던 당시 경기 용인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동안 저가 공급만 고집하다가 곤욕을 겪은 사례는 곳곳에서 발생했다. 지난 2021년 자동차·철강·물류 등 국내 산업 전반에 대혼란을 일으킨 ‘요소수 품귀 대란’이 대표적이다. 경유 차량의 대기오염 물질을 줄이는 데 필수품인 요소수는 생산이 크게 어려운 제품은 아니지만, 당시 요소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이 전무했다. 세계 최대 생산국인 중국에서 저가 제품을 들여와 쓰는 게 훨씬 이득이란 판단에 2011년께 생산을 모두 중단해서다. 그러나 중국이 석탄 부족을 이유로 석탄으로 만들어지는 요소 생산·수출을 통제하자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일본 역시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로 타격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만큼은 아니었다. 일본 정부·기업들이 요소수의 전략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필수 원료인 암모니아를 자국 내에서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쓰이는 암모니아의 약 80%가 미쓰이화학·닛산화학 등 자국 기업에서 만들어진다. 이와 함께 진작부터 수입처를 다변화해 중국뿐 아니라 호주·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요소를 들여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일본 정부는 최근 자국 내 공급망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AP=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일본 정부는 최근 자국 내 공급망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AP=연합뉴스

전략적 가치를 지닌 제품·부품에 대한 선진국의 ‘자급자족’ 전략은 최근 들어 부쩍 강화되고 있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은 반도체 등 첨단 분야는 물론 기타 전략 제품·부품에 대해서도 자국 내 공급망 확대 고삐를 더욱 죄는 모습이다. 미·중 갈등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 등 국제 정세도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어서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국 공장들이 폐쇄돼 각종 원자재 공급망이 무너져 애를 먹었던 경험도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역시 미국이다. 조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발효된 이후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공급망을 북미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반도체만큼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희토류·의약품·에너지·정보통신기술(ICT) 등에 대해서도 공급망을 자국으로 끌어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북미 시장 내 공급망 강화가 골자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을 임기 내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북미 시장 내 공급망 강화가 골자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을 임기 내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도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특정 중요 물자의 안정적인 공급 확보를 목표로 ‘경제안전보장추진법(경제안보법)’을 제정했다. 반도체·배터리는 물론 의약품·희토류·비료 등을 전략 제품으로 지정했다. 이 법안에 ‘에너지·금융·통신·철도 등 14개 업종의 인프라 사업자가 설비 등을 도입할 때 외국 제품 및 기술의 사용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5일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물자의 자국 생산을 촉진하고자 관련 기업을 위한 새로운 감세 조치를 마련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과 발을 맞추되 모든 것을 기대진 않겠다는 의지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이 지난 3월 핵심원자재법 관련 논의 후 기자회견에서 원자재를 들어보이는 모습. AP=연합뉴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담당 집행위원이 지난 3월 핵심원자재법 관련 논의 후 기자회견에서 원자재를 들어보이는 모습. AP=연합뉴스

EU는 오는 12월 ‘유럽판 IRA’라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 최종안 확정을 앞두고 있다. 2030년까지 제3국에서 생산되는 ‘전략 원자재’의 의존도를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반도체·배터리용 광물 원자재의 대(對)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전략 원자재는 배터리용 니켈·리튬·천연흑연·망간을 비롯해 구리·갈륨·영구자석용 희토류 등 총 16개로 그 범위가 매우 넓다. 최대한 자급자족한다는 뜻이다.

전기차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은 기존에도 고부가가치 부품의 자국 생산을 멈춘 적이 없다”며 “그런데도 자국 내 공급망을 점점 더 강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 역시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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