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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억에 산 사택, 100억에 되팔려했다…공기업 직원 '기막힌 알박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감사원이 공공기관 경영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10일 발표했다. 뉴스1

감사원이 공공기관 경영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10일 발표했다. 뉴스1

감사원이 공공기관의 방만·부실경영에 대해 연일 수술칼을 들이대고 있다. 지난달 정부 출자·출연기관 감사 결과를 공개한 데 이어 10일엔 ‘공공기관 재무건전성 및 경영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택 알박기와 장거리 법인카드 대납 등 기상천외한 천태만상이 펼쳐졌다.

남부발전 직원들은 사택을 활용해 알박기 투자를 한 사실이 적발됐다. 한국전력의 그룹사인 남부발전과 동서발전은 울산 남구의 사택 단지인 ‘신정사택’ 지분을 공동소유해왔다. 2014년 공기업 개혁 여론이 거세지자 남부발전은 해당 지분을 팔기로 했다. 먼저 손을 든 동서발전은 "예산이 부족하니 ‘2014년 계약, 2015년 대금 지급’ 조건으로 45억3000만원에 사택 지분을 매입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남부발전은 "당장 매각해야 한다"며 자산관리공사에 매각을 위탁한 뒤 입찰 공고를 냈다.

남부발전 영남화력발전소가 캠코에 요청한 울산 사택 지분 관련 위탁매매 조건. 감사원 보고서 캡처

남부발전 영남화력발전소가 캠코에 요청한 울산 사택 지분 관련 위탁매매 조건. 감사원 보고서 캡처

그러나 남부·동부 발전이 지분을 공동으로 소유한 까닭에 양측 동의 없이는 개발이 불가능해 매각이 어려웠다. 이를 알면서도 남부발전 직원들은 2014년 8월과 9월, 10월 세 차례 걸쳐 공매했고, 유찰될 때마다 이사회 심의 없이 가격을 8~10%씩 임의로 내렸다. 사택 매각 담당자 A씨는 지분 매입에 관심을 보이던 남부발전 직원 B씨에게 “입찰자가 없다”는 정보를 흘렸고, B씨는 2014년 10월 단독으로 입찰해 거의 반값인 23억 7000만원에 사택 지분을 낙찰받았다.

감사원에 따르면 B씨는 남부발전 전·현직 직원 12명과 외부 투자자 3명을 통해 매입 자금을 마련했다. 이들 중엔 B씨에게 정보를 흘린 A씨뿐 아니라 사택 매각 승인권자를 비롯해 관련 사정을 잘 아는 남부발전 고위관계자도 여럿 포함됐다. "내부 정보를 빼돌린 전형적인 알박기 투자"라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2020년 9월, B씨는 동서발전에 "사택 지분을 100억원에 매입하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법원에 공유물 분할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0월 1심에서 승소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법원 판결이 확정되면 B씨는 보유 지분을 경매에 넘겨 대금을 받을 수 있다”며 “자금을 댄 직원들에게 최소 수십억 원의 차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관련 거래를 주도한 남부발전 직원 등 관련자 3명을 배임 혐의로 대검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 조사결과 채희봉(사진) 전 가스공사 사장은 해외 출장에서 1박에 260만원하는 스위트룸에 묵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채희봉 당시 가스공사 사장의 모습. 뉴스1

감사원 조사결과 채희봉(사진) 전 가스공사 사장은 해외 출장에서 1박에 260만원하는 스위트룸에 묵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채희봉 당시 가스공사 사장의 모습. 뉴스1

원거리 법카 대납을 지시한 공무원도 적발됐다. 산업통상자원부 C사무관은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3년 5개월간 산하기관인 난방공사 파견직원의 법인카드를 유용했다. 사용 횟수 897회, 사용 금액 3827만원으로 가족과 식사를 한 뒤 법인카드로 바꿔치기 결제를 시키거나, 식당에 선결제를 요구하는 식이었다. 특히, C씨는 경기도 성남에 근무하는 난방공사 직원을 강원도 삼척까지 불러 식사비를 계산토록 하고, 자녀 도시락 준비를 시킨 정황도 발견됐다. 감사원은 C씨를 수뢰 및 강요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미수금만 8조원인 공기업을 이끌면서 1박에 260만 원짜리 호텔 스위트룸에 묵은 전직 기관장도 있다. 채희봉 전 가스공사 사장은 지난해 4월 영국 출장에서 하루 숙박비가 260만원인 런던의 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3박을 했다. 차관급인 공기업 사장의 숙박비 상한액은 48만원이다. 채 전 사장은 재임 기간 총 16회 해외 출장을 다녔는데, 일평균 숙박비는 87만원이었다. 가스공사 감사에선 허위로 시간외근무를 입력하고, 그 시간만큼 보상 휴가를 타낸 직원도 대거 적발됐다. 3급 이하 직원 640명 중 129명에 대한 표본조사 결과, 87.6%인 113명이 시간외근무 실적을 허위로 입력하고 226일간의 보상휴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3년 을지연습 사후강평회의에 참석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뉴스1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3년 을지연습 사후강평회의에 참석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뉴스1

감사원은 또, 문재인 정부가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미뤄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 위기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르자 산자부는 ‘원가연계형 요금제’에 따라 그해 7월부터 전기·가스 요금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물가 안정과 국민 부담을 이유로 반대했고, 대선 기간인 지난해 1분기까지 전기와 가스 요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감사원은 특히, 2021년 12월 17일 경제현안조율회의에서 “요금 인상 부담을 차기 정부에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음에도 정부가 이를 묵살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한전은 지난해 32조7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가스공사의 미수금도 2021년 1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8조 6000억원으로 늘었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감사원은 이 밖에도 발전 공기업과 중앙 부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의 부실 투자를 더할 경우 최대 2조원가량 예산이 낭비됐다고 추산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50여명의 감사 인력을 투입해 한전과 가스공사 등 재정적자가 심각한 공기업과 관련 그룹사 25곳, 이들을 감독하는 산자부 등 5개 중앙부처를 감사했다. 범죄 혐의가 드러난 18명은 대검에 고발 및 수사 요청하고, 부당행위자 21명에 대해선 징계와 문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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