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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에 폐수 버리지 마"...대구∙구미 14년 물싸움, 점입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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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경북 구미 선산시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김장호 구미시장 후보 선거유세에서 홍준표 대구시장 후보가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현 이철우 경북도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뉴스1

지난해 5월 경북 구미 선산시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김장호 구미시장 후보 선거유세에서 홍준표 대구시장 후보가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현 이철우 경북도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뉴스1

한동안 잠잠했던 대구와 경북 구미시 등 두 도시 물싸움이 재발화하고 있다. 대구시가 최근 구미산업단지에서 나오는 폐수를 낙동강에 버릴 수 없도록 하는 ‘무방류시스템’ 도입을 요구하면서다.

10일 대구시에 따르면 시는 2022년 4월 구미시와 체결한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이하 맑은 물 협정)’ 해지 통보에 따른 후속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우선 대구시는 구미 5산단 5구역에 입주한 양극재 기업과 그 협력업체 공장을 가동할 때 낙동강에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도록 무방류시스템을 도입하라고 구미시에 통보했다.

무방류시스템은 오염된 폐수를 처리한 다음 외부로 보내지 않고 정수해 다시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대구시는 이를 설치하지 않은 상태로 시설물을 가동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장 가동을 막기로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50만 대구 시민은 구미공단에서 발생한 공장 폐수 때문에 오염된 낙동강 물을 식수로 사용해왔다”며 “앞으로 구미공단에 유해물질 배출업체가 들어올 수 없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 “불법 압박이다” 반발

이에 구미시는 “자유시장 체제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처사”라며 반발했다. 구미시는 지난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상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는 구미산업단지 내 기업을 향해 근거 없고 실효성도 떨어지는 무방류시스템 설치를 일방적으로 요구했다”며 “대구시의 불법적 압박 행위는 대구‧경북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다음날 대구시는 법적 근거를 설명했다.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제10조, 물환경보전법 제33조를 근거로 하천 상류 지역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할 가능성이 있으면 하류 지역 동의를 얻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구시는 “그동안 실질적인 기능을 다 하지 못했던 하류 지역 동의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했다.

2009년 시작된 대구-구미 물싸움 

두 도시는 취수원 문제로 14년간 물싸움을 해왔다. 2009년 발암 의심물질인 ‘1,4-다이옥산’이 구미공단에서 낙동강으로 유출됐다. 낙동강은 대구시민이 사용하는 수돗물의 67%인 하루 53만t을 취수하는 곳이다. 대구시 달성군 매곡리에서 취수해 매곡·문산정수장에서 정수한다. 매곡리는 구미공단으로부터 34㎞ 하류에 있다.

2003년 페놀방류로 낙동강 오염소동을 빚었던 두산전자 구미공장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페놀을 드럼통에 넣어 임시로 마당에 보관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3년 페놀방류로 낙동강 오염소동을 빚었던 두산전자 구미공장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페놀을 드럼통에 넣어 임시로 마당에 보관하고 있다. 중앙포토.

앞서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겪은 상황에서 또다시 발암 의심물질이 유출되자 대구시민 불안감은 커졌다. 이에 대구시는 구미공단보다 더 상류에 있는 구미 해평취수장을 식수원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구미시가 반발했다. 대구에서 물을 빼가면 해평취수장 물이 줄고 수질도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 물싸움은 이렇게 시작됐다.

10년 넘게 옥신각신한 끝에 지난해 4월 경북도·대구시·환경부 등이 협정을 맺었다. 협정에 따르면 구미 해평취수장을 거친 하루 30만t의 물이 대구시에 공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3개월 뒤 대구와 구미 시장이 바뀌자 협약도 무용지물이 됐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취임 후 “해평취수장 공유 협정은 주민 동의가 부족한 졸속 합의였다”며 재검토를 주장했고, 홍 시장도 “더는 구미에 매달리지 않겠다”며 협정 해지를 통보했다.

2020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가 장마로 물에 완전히 잠겨 있다. 연합뉴스.

2020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가 장마로 물에 완전히 잠겨 있다. 연합뉴스.

지자체 갈등에 사라져가는 선사시대 바위 그림 

이에 국보 285호인 울산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 해결도 불투명해졌다. 선사시대 그림인 반구대 암각화는 장마 때마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부식하고 있다. 대구-구미 맑은 물 협정에 따라 대구 식수원인 청도 운문댐 물 일부를 울산으로 공급, 암각화를 보존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암각화가 물에 잠길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정 파기에 따라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울산시 관계자는 “아직 환경부가 협정 파기를 결정하진 않았지만, 대구와 구미가 물싸움하고 있어 울산시도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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