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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율 100% '소나무 에이즈'…포항서 20만그루 말라죽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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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구룡포 일대 해안가 소나무 집단군락지에서 재선충병으로 인해 고사한 소나무들이 노랗게 시들어 있다. 사진 포항시

포항시 남구 구룡포 일대 해안가 소나무 집단군락지에서 재선충병으로 인해 고사한 소나무들이 노랗게 시들어 있다. 사진 포항시

지난 9일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 바닷가. 해안선을 따라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 이파리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사계절 내내 푸르러야 할 소나무가 잎은 물론 줄기까지 바짝 말라 썩은 모습이었다. 흙 바닥 위론 시들어 떨어진 나뭇가지 등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소나무가 고사한 원인은 소나무재선충병(이하 재선충병) 때문이다. 국내 재선충병은 1988년 10월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길이 1㎜가량인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몸속에 기생하는데, 이들 매개충이 나무를 갉아먹을 때 생긴 상처를 통해 침투한다.

소나무 100% 죽는 재선충병 포항서 확산

감염된 소나무는 6일이 지나면 잎이 아래로 처지고, 20일 뒤엔 잎이 시든다. 30일이 되면 잎이 빠르게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말라 죽기 시작한다. 수분·양분의 흐름에 이상이 생겨서인데, 고사율 100%다. 재선충병을 ‘소나무 에이즈’로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이런 재선충병이 포항시 남구 일대에 확산하고 있다. 10일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남구 구룡포~호미곶을 잇는 해안가 소나무 군락지 약 2만1000㏊에서 소나무 20만 그루가량이 재선충병으로 말라죽은 것으로 조사됐다.

포항시는 재선충병 확산 원인으로 지난 겨울철 가뭄과 봄철 고온 현상 등 이상기후와 태풍, 염해(鹽害)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호미곶면은 과거 국방시설 내 지뢰 매설지가 있어 접근이 쉽지 않고, 동해·장기면에는 군 시설이 있어 예찰·방제 작업에 제한이 있다는 점도 재선충병 확산에 한몫했다.

이상기후·태풍 등 복합 원인…“방제 총력”

산림청과 경북도, 포항시는 지난 6일 구룡포·호미곶 일대에서 합동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이날 진행된 점검에서 포항시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한 현장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총력 대응에 필요한 예산지원을 남성현 산림청장에게 건의하는 등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다.

남성현 산림청장(맨 왼쪽)이 지난 6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지 현장을 찾아 경북도, 포항시, 남부지방산림청 관계자들과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산림청

남성현 산림청장(맨 왼쪽)이 지난 6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지 현장을 찾아 경북도, 포항시, 남부지방산림청 관계자들과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산림청

포항시는 지난해부터 이 지역을 복합 방제 구역으로 구분해 재선충병 방제와 숲 가꾸기 사업을 병행하며 방제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면적이 광범위하고 피해목 수도 많아 대안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피해 지역 지형과 특성을 파악하고 이에 맞게 드론을 활용해 약제를 분사하는 드론방제나 집단발생지 내 모두베기 등 효율적인 방제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상철 포항시 정무특보는 “남구 해안권 집단발생지 피해 유형에 따라 복합적인 방제를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행정력을 집중할 것”이라며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활용해 적합한 방제계획을 수립하는 등 산림청·경북도와 협력을 통해 재선충병 확산 방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7개 시·군 ‘심각’…금강송 군락지 소나무도 '고사'

경북도 역시 지난달 25일 경북도청 화백당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방지를 위해 21개 시·군 산림 부서와 산림청·국립공원공단 등 유관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피해 상황과 방제 전략을 공유하는 ‘2023년 경상북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지역협의회’를 열었다.

지난달 25일 경북도청 화백당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방지를 위해 21개 시·군 산림 부서와 산림청, 국립공원공단 등 유관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피해 상황과 방제 전략을 공유하는 ‘2023년 경상북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지역협의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경북도

지난달 25일 경북도청 화백당에서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방지를 위해 21개 시·군 산림 부서와 산림청, 국립공원공단 등 유관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피해 상황과 방제 전략을 공유하는 ‘2023년 경상북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지역협의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경북도

경북도에 따르면 현재 포항·경주·안동·구미·영덕·고령·성주 등 지역 7개 시·군 재선충병 피해 정도가 심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1000만 그루 이상의 소나무가 자생하는 금강송 군락지가 위치한 울진은 지난 3월 2년여 만에 재선충병 청정지역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금강송은 최근 재선충병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진군 소광리, 강원 삼척시 풍곡리, 경북 봉화군 석포리·고선리 등을 중심으로 금강소나무 고사목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울진·삼척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1만㏊ 숲에는 지름 1m에 키가 20m에 이르는 금강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조현애 경북도 환경산림자원국장은 “매개충이 성충이 돼 탈출하기 전에 피해 고사목을 파쇄‧훈증 처리해 매개충을 없애는 것이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재선충병 방제에 시·군과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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