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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尹은 "총력전" 외치는데…반도체 단지 인프라 예산 '0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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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가첨단산업벨트 추진계획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가첨단산업벨트 추진계획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초강대국’을 천명하고 반도체 특화단지를 지정했지만, 내년 정부 예산에 전기와 용수(물) 등 필수 기반시설(인프라) 조성비용은 아직 배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구체적인 사업이 계획이 나오면 (지원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주요 경쟁국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경쟁적으로 기업을 유치하는 만큼 ‘미래 먹거리’ 지원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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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내년 인프라 예산, 필요액의 1.2% 불과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이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된 7개 지방자치단체를 전수 조사한 결과, 특화단지 조성에 필요한 예산은 총 14조316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경기도의 필요 예산이 8조6156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경기도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거점인 평택과 2026년 반도체 클러스터(집적단지)가 들어서는 용인이 속한 ‘반도체 메카’다. 반도체소재 특화단지로 선정된 경상북도 구미의 필요 예산도 3조3360억원이었다.

전국 7개 지방자치단체는 반도체와 2차전지‧디스플레이 첨단산업 특화단지 조성을 위해 총 14조3168억원, 내년에만 1조3101억원의 인프라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힌 상태다. 주로 전력과 용수 및 공급, 폐수 처리 등에 투입된다. 〈그래픽 참조〉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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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첨단산업 단지를 공모해 올해 7월 7곳을 선정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하면서 “중앙정부는 전력·용수 등 인프라를 국비 지원하고, 지자체는 인허가를 신속 처리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실질적인 조치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도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라며 “기업과 투자, 유능한 인재가 다 모이도록 정부가 제도 설계를 잘하고, 인프라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달 제시한 ‘첨단산업 글로벌 클러스터 육성방안’ 계획에 따르면 내년에 첨단산업 단지 7곳에 국비로 지원되는 인프라 예산은 포항(2차전지‧154억원) 한 곳뿐이다. 반도체 특화단지인 용인‧평택·구미를 포함해 나머지 6곳에는 내년뿐 아니라 2028년까지 인프라 예산이 전혀 배정되지 않았다.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 예산이 내년 기준으론 필요 금액의 1.2%, 2024~2028년 기준으론 0.1%밖에 책정되지 않은 셈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600개 기업 몰렸는데…국비 지원 8%뿐  

인프라가 아니더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연구개발(R&D) 등을 포함한 전체 특화단지 예산은 5년간(2024~2028년) 5432억원이었는데, 여기서 국비 지원은 444억원(8.2%)에 그친다. 대부분은 지방비와 융자 등으로 충당하도록 했다.

기업들은 정부의 첨단산업 단지 계획에 발맞춰 오는 2042년까지 총 614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입주 예정인 기업은 반도체 관련 기업만 약 600곳이다. 양향자 의원은 “특화단지를 지정만 해놓고 책임은 지자체와 기업이 지라고 하는 것”이라며 “정부 지원을 믿고 투자를 결정한 기업은 뒤통수라도 맞은 심정일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정부 “사업 계획이 확정돼야 예산 지원”

정부는 사업 계획이 구체적으로 확정되면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금은 규제 완화 단계이고, 인프라 지원은 2025~2026년쯤 착공 시점부터 이뤄질 것”이라며 “관련 예산을 지금부터 반영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역시 “특화단지 지원은 일단 올해 안에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내후년 예산안부터 재정 당국과 협의해 차차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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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예상과 다르면 특화단지 안 갈 것”  

하지만 비록 최종 예산안이 아니라고 해도 정부의 ‘연도별 투자계획안’을 접한 지자체와 업계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해에도 기존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던 용인과 평택의 인프라 구축에 3884억원이 편성됐다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전액 삭감당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내년도 반도체 R&D 예산도 사업별로 지난해 대비 많게는 83.5%(시스템반도체 핵심 설계자산), 적게는 6.8%(인공지능 반도체 핵심기술) 삭감된 상태다. 더욱이 정부와 특화단지 관련 지자체 간 공식 회의는 그동안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수익 창출에 최적화한 곳에서 사업을 하는 건데, 지원 규모가 예상한 것과 다를 경우 입주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반도체는 최소 5년이 지나야 수익이 나오기 때문에 미국·중국·일본 등 경쟁국은 속도의 경쟁을 위해 빚을 내서라도 지원을 하는 것”이라며 “투자 기간과 규모가 큰 인프라에서 발목이 잡히면 기업은 빨리 투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국가 경쟁력의 백년대계가 돼야 할 특화단지가 오히려 발목을 잡지 않도록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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