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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돔이 다 막는다" 착각…이스라엘 50년전처럼 또 당했다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2023년 10월 7일 6시 30분(현지시간, 한국시간 오후 12시 30분).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20분 동안 약 5000발의 로켓 발사와 함께 시작됐다. 이스라엘의 고위 당국자들은 이에 대해 “기습을 당했다(We are surprised)”고 실토했다. 한마디로 ‘정보의 실패(Failure of Intelligence)’라는 의미다.

지난 8일(현지시간) 새벽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가자 지구에서 로켓을 쏘자 이스라엘이 단거리 요격 체게인 아이언돔(Iron Dome)으로 격추하려고 있다. AFP=연합

지난 8일(현지시간) 새벽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가자 지구에서 로켓을 쏘자 이스라엘이 단거리 요격 체게인 아이언돔(Iron Dome)으로 격추하려고 있다. AFP=연합

물론,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추후 조사과정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정보가 실패하는 경우에 작동하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 상황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보는 어떤 경우에 실패하고, 유사한 사례는 어떤 것이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적에 대한 ‘고정관념’이 객관적인 상황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자유 의지’를 가진 적을 상대로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해 대결하는 행위다. 내가 선택권을 가진 만큼, 상대방도 시기ㆍ방법 등에 있어서 일정한 선택권을 가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본 전제는 종종 잊히기도 한다. 특히, 내가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승리한 경험이 누적했거나, 압도적인 능력을 갖췄을 경우에 이러한 현상이 더욱 자주 발견되곤 한다.

제4차 중동전쟁에서 파괴된 이스라엘군 전차. 이스라엘은 개전 초기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의 기습 공격에 크게 당했다. 위키미디어

제4차 중동전쟁에서 파괴된 이스라엘군 전차. 이스라엘은 개전 초기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의 기습 공격에 크게 당했다. 위키미디어

50년 전인 1973년 10월 6일, 제4차 중동전쟁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집트의 침공 징후는 넘쳐났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이집트가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다. 소련에서 스커드 미사일과 폭격기가 도착해야 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총동원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발령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하마스가 경제적 이익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대규모 입체적인 공격능력은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졌을 수 있다.

정보 분석의 대상은 ‘위협’이다. 위협은 ‘의도’와 ‘능력’으로 구성된다. 의도는 적의 선택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정보 판단에서 의도를 중심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적에 대해 장기간 고정관념을 갖거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함정에 빠져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위협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능력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기술’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과도한 의존은 위험할 수 있다.

첨단 기술의 발전이 정보능력을 향상하고 있다. 특히, 사이버ㆍ우주 영역의 수집자산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분석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파악 알 수 있다” 혹은 “기술이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만이다. 기술이 인간의 과오까지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적의 원시적인 수단에 의해 역으로 기만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총을 들고 패러글라이더를 타 이스라엘로 침투하는 하마스 대원. 트위터 clashreport

총을 들고 패러글라이더를 타 이스라엘로 침투하는 하마스 대원. 트위터 clashreport

총을 들고 패러글라이더를 타 이스라엘로 침투하는 하마스 대원. 트위터 MarioNawfal

총을 들고 패러글라이더를 타 이스라엘로 침투하는 하마스 대원. 트위터 MarioNawfal

제4차 중동전쟁에서도 이와 같은 과오가 있었다. 전쟁 발발 9개월 전,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카이로와 수에즈 운하를 연결하는 도로 상의 감제고지인 ‘아타카(Ataka)’에 첨단 도청장치를 설치했다. 하지만, 일부는 이집트에 사전 발각되었고, 나머지는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잘못된 판단으로 뒤늦게 가동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요격 성공률 90%를 자랑하던 아이언 돔(Iron Dome)이 로켓의 대규모 동시발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분리 방벽은 모터 패러글라이딩에 뚫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은 정보의 불확실성을 감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완전하게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적이 어떠한 희생도 감내할 각오가 돼 있다면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극단적인 수단과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의 역할은 보조적인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점’을 ‘선’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실패할 수 있다.

첩보는 수집ㆍ분석ㆍ평가의 과정을 통해 정보로 변환한다. 이 과정을 흔히 “점을 선으로 연결한다”고 표현한다. 여기에 필요한 핵심적인 능력은 조각조각으로 산재한 첩보의 상호 연관성을 통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능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보의 실패는 이러한 과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2001년 9ㆍ11 테러 당시 뉴욕 맨해튼 남부가 연기와 먼지로 뒤덮인 모습. 남쪽뉴욕 경찰국

2001년 9ㆍ11 테러 당시 뉴욕 맨해튼 남부가 연기와 먼지로 뒤덮인 모습. 남쪽뉴욕 경찰국

2003년, 미국 상ㆍ하원 정보위원회는 900쪽 분량의 ‘9ㆍ11 테러 진상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보고서에서는 “정보기관 사이의 협력 부재가 9ㆍ11 테러를 예방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 등이 공히 단편적인 첩보를 입수했지만, 공유와 연결을 통한 종합적인 분석에 실패했다는 의미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해외), 신베트(국내), 아만(군사)도 이와 같은 과오를 범했을 개연성이 있다.

정보기관의 본질적인 속성은 ‘공유와 협조’를 어렵게 한다. 정보 자체가 조직의 예산ㆍ인력 등과 연결돼 있고, 궁극적으로 ‘권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기관과의 관계에서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도 9ㆍ11 테러 이후 범국가적인 차원의 정보조직인 국가정보위원회(NIC)를 대폭 개편했던 것이다. 최상위 수준의 리더는 이러한 정보조직의 특성을 알고 통제ㆍ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보는 안보(국방)의 출발점이다. 군사전략, 싸우는 방법, 대규모 예산을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ㆍ부대구조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보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적에 대한 고정관념,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 정보기관의 협업 시스템 등에 대한 냉철한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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