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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려다 일본 간다…동남아 관광객 막는 ‘K-ETA’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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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는 최근 일본·대만 등 입국 거부율이 낮은 22개국 외국인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K-ETA) 없이 입국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뉴스1]

정부는 최근 일본·대만 등 입국 거부율이 낮은 22개국 외국인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K-ETA) 없이 입국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뉴스1]

말레이시아인 A는 최근 한국으로 관광을 계획했다가 급하게 일본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가족 5명 중 한 명이 한국 전자여행허가(K-ETA) 승인을 받지 못해서다. 결국 가족 전체가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일본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ETA가 이처럼 동남아시아 출신 관광객의 한국 여행을 망설이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불법 체류 대응을 위해 2021년 9월 도입됐으나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심사와 행정 절차 때문에 불만이 쌓인다는 지적이다.

국내 여행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동남아 현지에서 K-ETA를 ‘제2의 비자’로 인식하면서 방한 심리 자체가 많이 위축됐다”며 “한국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K-ETA 발급 여부가 불확실하다 보니 현지 여행사에서는 다른 국가의 상품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관련 업계에 따르면 K-ETA는 특히 불법 체류 이슈와 맞물려 있다 보니 동남아 출신 여행객에게 사실상 더 깐깐하게 적용된다고 한다. K-ETA 신청 후 입국 불가 판정을 받은 경우에도 사유를 설명해주지 않을뿐더러, 3번 거부되면 별도의 비자 신청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에서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시행하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는 태국·말레이시아는 K-ETA 도입 이후 사실상 무(無)비자국에서 유(有)비자국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국내 여행 산업에서 동남아 관광객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9년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11%였던 동남아 여행객 비중은 지난해 26%로 증가했다. 필리핀·베트남·태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는 각각 4~8위를 기록했다.

정부가 ‘방한 관광객 3000만 명’을 목표로 내세우면서 동남아는 중요한 손님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24개국 대상 잠재 방한 여행객을 조사한 결과 가장 높은 잠재 방한 지수를 기록한 국가는 태국(63.5), 베트남(66.2), 인도네시아(61.2), 필리핀(64.6) 순이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하지만 K-ETA는 여전히 이들에게 ‘벽’이다. 법무부는 지난 3월부터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일본·미국 등 22개국 여행객에 K-ETA 면제했으나 동남아 국가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제도 개선에 나선 상태다. 지난 7월부터 전자여행허가의 유효기간을 2→3년으로 확대하고, 청소년(17세 이하)과 고령자(65세 이상)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K-ETA에 더해 동남아 여행객에 대한 은근한 인종 차별 논란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해 말 한국관광공사가 해외 여행객들의 소셜미디어(SNS)를 분석한 결과 방한 태국 여행객 중 한국 여행에 대한 부정적 언급 비중은 42.7%로 조사됐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일본에 대한 부정 언급은 28.2%에 그쳤다.

무엇보다 인종 차별 논란으로 인해 여행 중 불쾌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았다. 최근 수년간 매해 한 차례 이상 한국을 방문했다는 태국인 관광객 핍 낙통은 “입국 심사에서 불쾌한 일을 경험한 뒤로 한국을 싫어하게 됐다”며 “한국인은 무례하다. 외국인은 한국을 방문해서 돈을 쓰는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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