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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단축근무' 신청하자, 상사 폭언했다…이런 일 올해 1159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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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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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A씨는 임신 초기 단축 근무를 신청했다가 직장 상사로부터 폭언을 들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뒤 상사와 분리 조치됐지만, 이후엔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다. 현재 육아휴직에 들어간 A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면 육아휴직에 불이익은 없을지, 오히려 역고소를 당하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매년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다. 2005년 제정돼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A씨의 사례는 임신·육아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저수준인 합계출산율(0.78명)을 끌어올리기 위한 여러 정책이 나왔지만, 정작 기본적인 모성보호 제도조차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많았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2018~2023년 8월)간 모성보호 제도 위반으로 적발된 사건은 모두 6174건에 달했다. 특히 올해는 8월 기준 1159건으로, 이미 1000건을 돌파했다. 2020년 306건, 2021년 691건, 2022년 993건으로 조금씩 오르더니 올해 급등세를 보였다.

유형별로 여성·임산부·연소자의 야간 휴일근로 관련 위반이 전체의 77.8%로 가장 많았고, 임신근로자 시간외 금지 위반(7.7%)이 뒤를 이었다. 근로기준법상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연장근로나 야간근로, 휴일근로를 할 수 없다. 근로자의 요구가 있더라도 ‘쉬운 종류의 근로’를 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육아휴직 미허용(3.9%), 배우자출산 미허용(2.5%), 출산휴가·산재요양 중 해고(1.8%), 출산휴가 미부여(1.3%), 출산휴가 유급 위반(1.3%) 등 임신·육아 근로자를 노골적으로 배척하는 위반 사항이 많았다. 만일 사업주가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영세한 사업장일수록 위반 건수가 많았다. 30~99인 사업장이 전체 위반 건수의 35.8%로 가장 많고, 뒤이어 10~39인(26.0%), 10인 미만(14.9%) 순으로 이어졌다. 100인~299인은 14.6%, 300인 이상은 6.5%를 차지했다. 특히 33개 사업장은 2회 이상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이렇게 신고가 이뤄져 통계에 잡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회사로부터의 불이익을 문제 제기해도 보복당할까 두려워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45.5%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출산휴가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비중도 40%에 달했다.

미약한 처벌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6년간 발생한 6174건의 위반 사건 가운데 사법처리된 건수는 5.9%인 367건에 불과하다. 과태료 처분(49건)까지 합쳐도 6.7%인 416건에 그친다. 나머지 93.3%(5758건)는 모두 ‘시정완료’로 종결됐다. 노무법인 돌꽃의 김유경 노무사는 “출산·육아휴직 미부여나 휴직 이후 노동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는 노동관계법령상 형사처벌 조항이 있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실효성 있는 제재 조치 대신 방관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모성보호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제도 마련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부모들이 사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대수 의원은 “영세중소기업일수록 현재 시행되고 있는 모성보호 제도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정부는 모성보호 제도 확충뿐 아니라, 현장에서 제도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관리·감독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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