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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에겐 "등불"이라 불린다…'맞춤법 검사기' 만든 이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5일 연구실에서 만난 권혁철 부산대교수가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지난 5일 연구실에서 만난 권혁철 부산대교수가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운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권혁철(65·사진) 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는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를 만든 아버지다. 1994년부터 일반에 무료로 제공 중인 검사기로 정확도가 높단 평가를 받는다. 한 달 평균 검사량이 1000만건을 넘을 정도로 인기다. 올바른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싶은 취업준비생에겐 ‘등불’로도 불린다. 한글날을 앞둔 지난 5일 부산대 연구실에서 권 교수를 만나봤다.

90년대 컴퓨터 문서제작 도우려 개발 

권 교수는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부산대에 부임했다. 이후 맞춤법 검사기를 내놨다. 그는 “1990년대 사무 자동화(OA)가 본격화하면서 컴퓨터로 문서를 제작하는 일이 흔해졌다”며 “올바른 문서 제작을 도우려 검사기를 개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 교수는 “무료 서비스를 통해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 등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맞춤법 검사기는 온라인 사이트(http://speller.cs.pusan.ac.kr)에 접속하면 이용할 수 있다. 작성한 글을 복사해 창에 붙여만 넣으면 된다. 단순 오·탈자는 물론 문맥상 틀린 표현을 찾아주는 기능이 뛰어나다는 게 업계 평판이다. 이용할 때 별도의 회원가입을 통한 개인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용자가 입력한 글의 내용은 검사를 마치면 삭제된다. 서버에 남지 않는다.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웹페이지. 작성한 글을 입력하면 오탈자 및 문맥에 맞지 않는 표현을 찾아 준다. 이용자는 교정 내용을 확인하고, 적절하지 않아 보이면 운영자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사진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웹페이지 캡쳐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웹페이지. 작성한 글을 입력하면 오탈자 및 문맥에 맞지 않는 표현을 찾아 준다. 이용자는 교정 내용을 확인하고, 적절하지 않아 보이면 운영자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사진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웹페이지 캡쳐

기능 개선 위해 최소한 단어만 저장

권 교수는 “검사하려는 글에 개인정보나 민감한 내용이 담길 때가 많기 때문”이라며 “이용자의 글 내용이나 정보를 수집해 활용하는 건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발견된 오·탈자를 기준으로 앞뒤 일곱 단어는 남겨둔다”며 “제대로 검사가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검사 기능을 더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가 이 검사기를 만든 사실이 알려져 이용자들 사이에선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로도 불린다. 검사기 유지ㆍ관리는 권 교수가 설립한 벤처 기업인 ㈜나라인포테크가 맡고 있다. 나라인포테크에선 국문학 전공자와 엔지니어 등 직원 5명이 일한다. 하루 평균 5만명이 검사기에 접속하며, 한 달 검사량은 1200만건에 달한다.

아파트서 접속한 수상한 ‘600만건’ 검사

이 맞춤법 검사기에 최근 거대 언어 모델 AI의 학습 용도로 의심되는 ‘수상한 접속’이 감지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받았다. 권 교수는 “특정한 IP 한 곳에서 짧은 시간에 검사를 약 600만건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접속한 IP를 확인해보니 경기도에 있는 한 아파트였다”며 “처음엔 이 같은 사실을 몰랐지만, 비정상적으로 검사기를 과다하게 이용해 클라우드 서버 비용이 평소의 2배 가까이 나왔다. 원인 조사 끝에 AI 접속이 의심된다고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나라인포테크는 지난 7월 맞춤법 검사기 웹페이지를 통해 “최근 특정 IP에서 비정상적인 이용 패턴이 발견됐다.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청구됐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기 불가능해진다”고 공지했다. 이용자들은 30년 가까이 무료 제공된 맞춤법 검사기가 유료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7월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웹페이지에 올라온 공지사항.

지난 7월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웹페이지에 올라온 공지사항.

하지만 권 교수는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의심스러운 IP 접속을 차단하는 등 조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라며 “개인 이용자에 대한 서비스를 유료화할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맞춤법 검사기는 개인에겐 무료이나 법원 등 관공서나 주요 언론사 및 소프트웨어 제작사 등엔 유료 판매해 별도의 수익 모델을 갖추고 있다. 인크루트 등 취업 관련 포털 또한 권 교수의 검사기 기능을 사들여 회원에게 제공한다.

“챗 GPT 매일 분석… 밀려나겠지만 버텨봐야죠”

권 교수는 매일 맞춤법 검사기의 검사 데이터를 분석하고, 매달 한 차례 정기 업데이트를 해왔다. 하지만 챗 GPT 등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생성형 AI가 머지않아 맞춤법 검사기 기능을 대체할 것으로 본다.

권 교수는 “우리 검사기와 챗 GPT, 클로바 X 같은 AI가 똑같은 표현을 각각 어떻게 고쳤는지, 뭐가 더 적절한지 매일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다”며 “이를 기반으로 검사기 기능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스스로 학습하는 AI와 비교하면 사람이 연구해 규칙을 만들고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며 “아직은 비용 등 측면에서 맞춤법 검사기의 경쟁력이 있지만, 마차가 자동차에 밀렸듯 언젠가 AI에 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끝으로 권 교수는 “AI와 경쟁하며 10년은 더 버텨보고 싶고, 이후엔 맞춤법 검사기 (운영 시스템을) 공개하는 등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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