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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엔 가라오케방, 여성가무단도…'쉬 황제' 꿈꾼 中부자 몰락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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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쉬자인 헝다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쉬자인 헝다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쉬 황제의 혈맥으로, 가정이 나라라는 정서, 중국적인 인상에, 탁월하고 비범하며, 한계를 넘어선 성취는, 멀리 나아가며, 웅대한 인생, 큰일 할 사람은 하늘이 만든다(許帝血脉 家國情懷 印象中國 卓爾不凡 越界成就 且行且遠 偉岸人生 大器天成).”

지난 2017년 쉬자인(許家印·65) 헝다(恒大)그룹 회장이 헌사 받았던 한시가 그의 체포와 함께 재조명받고 있다. 첫 구절 ‘쉬 황제(許帝)’뿐만 아니라, 행간의 첫 글자만 이어 읽으면 “쉬자인은 탁월하고 위대하다”라는 정치적 야심을 담은 문장이 숨어 있다. 삼행시처럼 머리글자에뜻을 숨기는 쉬자인의 장두시(藏頭詩)를 지난 1일 중국의 대표 논객 쓰마난(司馬南)이 좌파 토론방에 공개하면서다.

지난 2017년 쉬자인(왼쪽) 헝다그룹 총수가 자신을 찬양하는 장두시 액자를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의 첫 글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 읽으면 “쉬자인 탁월 위대”라는 문장이 숨어 있다. 쿤룬처 사이트 캡처

지난 2017년 쉬자인(왼쪽) 헝다그룹 총수가 자신을 찬양하는 장두시 액자를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의 첫 글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 읽으면 “쉬자인 탁월 위대”라는 문장이 숨어 있다. 쿤룬처 사이트 캡처

천문학적인 부채로 중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전락한 헝다 사태는 총수 쉬자인 체포로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헝다그룹은 지난달 28일 “집행이사 및 이사회 의장인 쉬자인 선생이 위법 범죄 혐의로 법에 의거 강제조치(체포) 당했다”고 공지했다.

체포를 계기로 쉬자인의 과거 치부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1958년 허난성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부동산 그룹 헝다를 일군 쉬자인은 지난 2017년 자산 2900억 위안(약 54조원)을 기록하며 마윈(馬雲)을 제치고 중국판 포브스 후룬이 선정한 부자 순위 1위에 등극했다.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폭풍 성장했던 쉬자인은 정치적 야심에 각종 부정 행각을 저지르다 결국 몰락의 길에 빠졌다.

쉬자인 헝다 회장의 베이징 저택(동그라미). 웨이보 캡처

쉬자인 헝다 회장의 베이징 저택(동그라미). 웨이보 캡처

베이징 중난하이 인근 초호화 쓰허위안 보유

쉬자인의 베이징 호화 저택을 찍은 영상이 최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퍼졌다. 중국 최고 지도부의 집단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와 이어진 스차하이(什刹海) 옆을 흐르는 위허(玉河)와 인접한 곳에 신축한 전통 주택 쓰허위안(四合院)이다. 전통시대 황제가 배를 타고 지났다는 곳으로 항저우와 이어지는 대운하가 시작되는 곳이다.

저택 시가는 1억 5000만 위안(약 279억원)에 이른다. 지상으로 높이 올리지 못하는 쓰허위안의 특성 때문에 지하 3층으로 지었다고 한다. 현재 쉬자인 저택의 정문은 담으로 봉쇄된 상태다. SNS 영상엔 집안에 심으면 부귀와 영화를 가져다준다는 속설에 궁정에서 주로 심던 한 그루 200만 위안(3억7000만원) 상당의 자미화(紫薇花)를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보인다. 쉬자인의 저택 바로 옆이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저택이라고 설명하는 음성도 담겼다.

쉬자인은 베이징 저택 외에도 홍콩에 총 25억 위안(4600억원) 상당의 주택 세 채를 보유했다. 현재 그중 7억 위안 상당의 저택을 중국 국영기업에 넘겼고 나머지 두 채도 압류된 상태다.

지난 2017년 9월 12일자 헝다그룹 기관지 ‘항대보’ 1면. 쉬자인 헝다 총수가 구이저우를 방문해 당시 쑨즈강 당서기와 천이친 대리성장(현재 국무위원)을 만난 소식을 게재했다. 오른쪽 위에 내부 간행물, 비밀 주의라는 스탬프가 찍혀 있다. 웨이보 캡처

지난 2017년 9월 12일자 헝다그룹 기관지 ‘항대보’ 1면. 쉬자인 헝다 총수가 구이저우를 방문해 당시 쑨즈강 당서기와 천이친 대리성장(현재 국무위원)을 만난 소식을 게재했다. 오른쪽 위에 내부 간행물, 비밀 주의라는 스탬프가 찍혀 있다. 웨이보 캡처

짝퉁 인민일보에 지방 1·2인자 회견 과시

당을 배경으로 기업을 키운 쉬자인은 정치적 야망도 키웠다. 특히 지난 2017년 19차 당 대회 전후 극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헝다 그룹은 그룹 매체로 ‘항대보(恒大報)’를 발간했는데, 문체와 양식 모두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를 베낀 듯 유사했다. 항대보 2017년 9월 12일 자 1면에는 ‘쉬자인 주석, 2017년 구이저우 투자유치회에서 쑨즈강 구이저우 성 서기, 천이친 대리성장과 회견’, 26일 자에는 ‘쉬자인 주석 장쑤성 고찰서 성위 서기 성장과 회견하고 협력 심화, 투자 확대 의견 일치’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싣었다.

쉬자인은 줄곧 당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지난 2018년 9월 제10회 중화자선상을 받은 쉬자인은 수상 소감으로 “본인과 헝다의 모든 것은 당이 준 것”이라며 감사를 표시했다. 그는 관영 매체 인터뷰에서 줄곧 “헝다는 당 위원회를 설치한 광저우시의 첫 번째 민영기업”이라며 “그룹 내에 35개 당 위원회, 1023개 당 지부, 1만 841명의 당원을 보유했다”고 과시했다.

지난 2020년 헝다 민족가무단의 연습 장면. 쉬자인 헝다 회장은 이들 미녀 무용단을 접대에 이용했으며, 중국중앙방송(CC-TV) 설 특집 방송에도 여러차례 출연시켰다. 웨이보 캡처

지난 2020년 헝다 민족가무단의 연습 장면. 쉬자인 헝다 회장은 이들 미녀 무용단을 접대에 이용했으며, 중국중앙방송(CC-TV) 설 특집 방송에도 여러차례 출연시켰다. 웨이보 캡처

미녀 가무단 CC-TV 설 특집 프로 출연도

그의 체포를 계기로 광저우 헝다 본사의 비밀 호화 접대시설도 폭로됐다. 지난달 30일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스토리)의 공공계정 서우러우추(獸樓處)는 ‘쉬씨의 죄와 벌’이라는 글에서 광저우 헝다 그룹 본사 건물 41층과 42층에 호화 식당과 다실, 헬스 시설과 가라오케가 접대용으로 마련되어 있다고 공개했다. 쉬자인은 이곳에서 루이 13세 코냑, 마오타이 바이주를 즐기며 황제와 같은 호사를 누렸다고 알려졌다.

그룹 차원의 미녀 가무단도 운영했다. 헝다민족가무단이란 명칭의 여성 공연단이 중국중앙방송(CC-TV)의 춘절 특집 방송에 네 차례 출연했다는 글이 웨이보에 속속 올라온다. 여성 단원들은 쉬자인의 접대 로비에도 동원됐다. 그는 정부 관리를 뇌물로 회유해 헐값에 알짜 토지를 확보한 뒤, 다시 토지를 은행 담보에 맡겨 자금을 확보하고, 착공 전부터 사전 분양으로 부동산 투자자의 돈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기업 규모를 확장했다. 헝다와 같은 기존 중국 부동산 기업의 비정상적 성장 모델에 대해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3일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 위험의 전국민화” 모델이라며 비판했다.

지난 2016년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 양회 기간 쉬자인(단상 왼쪽 두번째) 헝다 회장이 보인다. 쉬 회장 오른쪽으로 최근 은퇴한 이강 인민행장이 기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 2016년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 양회 기간 쉬자인(단상 왼쪽 두번째) 헝다 회장이 보인다. 쉬 회장 오른쪽으로 최근 은퇴한 이강 인민행장이 기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이번 쉬자인의 체포는 대대적인 반(反)부패 캠페인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다. 쉬자인은 이미 지난달 21일 새벽 자택에서 당국의 체포 시도에 경호원과 함께 격렬하게 반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2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9월 월례 정치국회의를 열고 ‘20기 1차 중앙 순시 보고’를 심의했다. 관영 신화사는 이날 회의에서 국유기업, 금융, 체육 영역에 대한 정치 감독 강화가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쉬자인의 각종 범죄 행위와 처벌 수위도 결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쉬자인은 부인과 위장 이혼 방식으로 거액의 외자를 도피한 것으로 전해진다.

28일 당 중앙기율위는 “반부패는 가장 철저한 자아혁명”이라는 제목의 의미심장한 8000자 장문을 발표했다. 기율위는 여기서 “시진핑 총서기는 사상 전례 없는 반부패 투쟁을 직접 지도, 직접 기획, 직접 추진했다”며 “부패는 가장 쉽게 정권을 전복할 수 있는 문제이자, 당의 장기 집권에서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임을 강조했다”고 부패를 공산당 체제와 연계시켰다. 한때 중국 최대 부호로 ‘황제의 꿈’까지 꾸었던 쉬자인은 끝내 당의 서슬퍼런 칼날에 부패 기업가로 퇴장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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