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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장교와 의사, 그리고 미래

중앙일보

입력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10여 년 전 중앙일보에서 검찰 담당 기자의 수당이 단번에 수십만원(월 기준) 올랐다. 연유는 이랬다. 정기 인사 직전마다 검찰 취재를 맡은 기자 중 다수가 다른 보직으로 바꿔 달라고 부서장에게 요청했다. 걸핏하면 게이트 공화국이 되니 검찰청 출입기자의 하루 15시간 근무, 월화수목금금금 출근이 예삿일이었다. ‘기사 전쟁’ 스트레스도 컸다. 계속 그 일을 하고 싶다는 기자, 부서를 옮겨 그 일을 해보겠다는 기자가 드물었다. 인사를 책임진 당시 편집국 고위 간부가 전격적 수당 인상 카드를 꺼냈다. 검찰청 출입 2년 뒤에는 최대한 원하는 보직으로 이동시켜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수당 인상과 새 인사 규칙이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노고를 인정하고 보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회사의 성의가 어느 정도 전달되면서 불만이 상당히 누그러졌다.

50% 대학에서 ROTC 정원 미달
의대는 인재 빨아들이는 블랙홀
국가가 부의 배분 방식 고민해야

 요즘 우리 사회에서 군 장교를 하겠다고 손드는 사람이 줄었다. 학군 군간부후보생(ROTC)을 육성하는 108개 대학 중 54곳이 정원 미달(7월 기준)이다. 36명이 정원인데, 5명밖에 없는 학교도 있다. 서울대는 정원 47명에 현원 24명, 고려대는 65명에 28명이다. ROTC는 전체 군 장교 수급의 70%를 담당한다. 아직은 ROTC 출신 장교가 군의 필요에 모자라는 수준은 아니지만, 이 추세가 지속하면 그런 날이 머지않다.

 원인은 짐작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별로 좋은 게 없어서다. ROTC 출신에 대한 기업의 취업 가산점이 사라졌다. 혜택을 주면 차별로 간주한다. 육군 사병 복무 기간은 18개월인데, ROTC 장교 의무복무 기간은 그보다 8개월이 길다. 현재 병장 월급이 130만원(자산 형성 지원금 포함)이다. 초급 장교 월급은 200만원 중반대다.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후년에 병장 월급이 200만원이 된다. 군 급여 체계가 크게 변하지 않으면 병장과 소위 월급의 차가 수십만원 수준으로 준다.

 ROTC에서만 장교 수급 차질이 엿보이는 게 아니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에서 63명이 자퇴했다. 그중 절반 이상(32명)이 신입생인 1학년 생도였다. 세상의 변화를 상징한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관학교에서 지난 5년간 545명이 스스로 떠났다. 우수한 군 지휘관 확보가 위태롭다. 공식적으론 ‘휴전 중’인, 언제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 나라에서 생긴 일이다.

 지금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청년들이 몰리는 곳은 단연 의대다. 학원에 초등 의대 입시반이 생기고, 좋은 대학 공대에 다니다가 의대 진학을 노리고 수능시험 다시 보는 학생이 특이 사례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이한 현상이 속출한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숭고한 길을 택한 인재가 많다고 볼 수도 있는데, 정작 사람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분야에는 전공의 지원자가 모자란다. 소아청소년과는 하나둘 사라지고, 그 자리가 외모 향상에 기여하는 의원으로 대체된다. 의대·한의대·치대가 성적 우수 학생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니 공학과 기초과학 은하계가 썰렁해진다.

 의대 쏠림은 자유시장에서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의대 정원을 국가가 통제한다. 의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은 미용 시술에 쓰는 레이저 도구를 들지 못하게 공권력이 막아준다. 의사 고소득을 정부가 보장하는 셈이다. 장교 처우 결정은 온전히 국가 몫이다. 20대가 몰렸던 7·9급 공무원 시험도 경쟁률이 줄었다. 경찰 공무원 쪽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은 고된데 월급은 적어 평균적인 생활조차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결국 자원과 부를 배분하는 공동체의 방식에 선망하는 직업이 좌우된다. 역사적으로 흥한 나라에서 군인에 대한 보상이 박한 적이 없다. 로마 군인은 20년을 복무하면 13년치 급여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받았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 때문에 상속세 제도가 생겼다. 의욕 넘치고 유능한, 거기에 사명감까지 갖춘 젊은이가 무엇을 하게 하느냐에 국가의 성쇠가 걸려 있다.

글 = 이상언 논설위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