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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원 쯤이야" 성장주사·교정·드림렌즈 3종 세트 유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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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호 10면

신종 ‘등골 브레이커’

취학 전 시력검사를 하는 예비 초등학생. 지난 해 9세 이하 근시환자는 27만명에 달하면서 ‘드림렌즈’ 착용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취학 전 시력검사를 하는 예비 초등학생. 지난 해 9세 이하 근시환자는 27만명에 달하면서 ‘드림렌즈’ 착용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성장주사 0.5년차, 드림렌즈 2.5년차’ 김지원(가명·41)씨의 아들 스펙이다. 중학교 입학 첫날 아들이 “앞에서 두 번째”라며 온종일 시무룩하던 그날이 시작였다. 같은 반 친구도 맞는다는 성장주사를 맞게 됐고 지금 6개월째다. 아직 4㎝ 정도 컸는데, 무엇보다 아이가 좋아한다. 드림렌즈는 진작에 해줬다. 일찍이 근시가 찾아왔던 탓인데, 얼굴형도 그렇고 축구할 때 불편하다해서 렌즈를 맞춰 줬다. 이제는 알아서 잘 끼고 잔다. 성장주사로 급성장해 시력이 급감할 걱정은 미리 덜긴 했다.

드림렌즈는 특수렌즈로 근시, 난시 진행을 늦춰준다. 렌즈를 착용하고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시력이 회복된다. 렌즈가 각막 중심부를 눌러주면서 일시적으로 안경처럼 오목렌즈 효과를 내는 원리다. 간편한데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더 인기인 건 안경을 써서 코가 눌리거나 관자놀이에 안경다리 홈이 생기는 등 얼굴형 변형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다.

성장주사 제품 매출도 100% 넘게 늘어

심지혜(43)씨의 둘째 아들은 6년 전 한창 치아교정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 교정을 시작했다. 5살 무렵 아랫니가 윗니보다 앞으로 튀어나와 주걱턱 증상을 보이면서다. 어릴 때 교정을 해두면 성인 때는 편하게 교정할 수 있다는 말에도 솔깃했다. 편하게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실리콘 교정장치를 끼고 자면 된다. 초기비용은 50만원에서, 구강구조가 변하면서 3번 교정틀을 바꿔 총 300만원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걸 보면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최근 맘카페에선 종합3종 선물세트(성장주사·치아교정·드림렌즈)가 유행이다. 이르면 5세 유아부터 중학생까지 성장기 아이들의 치료 목적 외에도 외모에 필요한 항목이 고루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각각 성장주사(키), 치아교정(얼굴형, 고른치열), 드림렌즈(얼굴형)와 같다. 실제 성장주사 호르몬 처방은 근 3년 새 2배 늘었다. 2020년 처방인원 수는 1만2500명에서 2022년 2만5300명으로 늘었고, 금액도 597억원에서 108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환아 중 치아교정 비율도 2017년부터 급증세다. 전남대병원 방문 환아 기준, 2017년 7.09%에서 2020년 13.28%로 늘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이제는 단순 동조심리라기보다 외모의 표준이 상향됐고 이게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외적 요소가 성실함, 자기관리 등의 인격적 요소로까지 비춰지다보니 필수 고려사항이 됐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남들이 다 하는데 안 하면 내가 노력을 안 한 것처럼, 열심히 안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이렇다보니 부모들도 ‘남들 못지 않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남들만치 키 큰다는데 1년에 1000만원은 아깝지도 않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성장주사의 경우 키가 전국 하위 3% 미만 중 성장호르몬 분비 관련 질환이 있을 경우 급여항목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비급여 항목으로 취급돼 모두 자부담을 해야 한다. 여기에 몸무게에 따른 투약용량, 약품 종류에 따라 구입비가 1년 기준 6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길게는 6~7년까지도 맞기 때문에 비용은 몇 배가 될 수 있다. 한 달치 약값 공식으로 알려진 ‘아이 몸무게×1.5~2’를 따져보면 몸무게가 적을수록 이득이다. 그래서 더 어릴 때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치아교정은 상대적으로 성인 치아교정보다는 저렴한데 그래도 200만~300만원은 든다. 드림렌즈도 한 번 맞추는 데 90만~100만원 정도지만, 크면서 시력변동이 생기면 다시 맞춰야 한다. 1년 기준으로 3종 종합세트는 최대 1400만원 꼴이다.

이전에는 나이키 운동화, 노스페이스 패딩 등이 ‘등골 브레이커’라 불렸다. 부모가 무리해서 비싼 물건을 사느라 등골이 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런 ‘원조 등골 브레이커’는 30만~40만원에 불과했다. 아무리 소득이 늘고 생활 수준이 높아졌다지만 1000만원이 넘는 신종 등골 브레이커는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물론 치료 목적이라면 마땅히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게 전문의들의 소견이다. 안문배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요새는 100명을 진료 보면,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아는 10명도 채 안 된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키 작은 게 너무 주눅드는 요인이 된 탓이 크다”고 말했다. 키크는주사 제품으로 알려진 유트로핀(LG화학), 그로트로핀투(동아에스티) 등은 2018년 대비 2021년 매출이 모두 100% 넘게 늘었다. 최근엔 키크는주사 외에 피부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키크는 패치, 키크는 분유 등의 제품들도 보인다.

소아치아교정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모(7)양은 엄마와 함께 지난해부터 세 차례 대학병원 소아치과를 찾았다. 분명 얼굴이 비대칭인 것 같은데 계속해서 진료 결과 이상소견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이모양은 올해 치아교정을 시작했다. 박소연 서울아산병원 소아치과 교수는 “치아교정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요새 정보가 너무 많다보니 골든타임, 즉 적기를 놓칠까 하는 불안감에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보통 윗턱이 아랫턱보다 성장이 빨리 멈추기 때문에 3급 부정교합인 반대교합(주걱턱)엔 조기교정이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단순 치열이 고르지 못한 1급 부정교합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성장에 따른 재발 위험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부모, 아이 잘때 몰래 성장주사 놓기도

게다가 호르몬을 포함한 약물을 투입하는 성장주사의 경우 부작용 우려가 적지 않다. 성장주사 설명서에 명시된 부작용엔 두통, 고혈당, 관절통 등이 있다. 안문배 교수는 “성장주사 부작용에는 급격한 성장으로 인한 척추측만증이나 뇌압이 올라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실 지금껏 성장호르몬 치료를 이렇게 많이 하던 때가 없어 아직 발견이 안 된 부작용이 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주사 후기글엔 두통이나 척추측만층이 생겨 고민이라는 글도 종종 보인다.

장모(45)씨가 딸아이의 성장주사를 과감히 거절한 것도 그래서다. 장씨의 딸 김모(11)양은 성조숙증으로 1달에 1번씩 지난 2년간 사춘기호르몬억제주사 치료를 받았다. 흔히 성조숙증 진단을 받으면 성장판이 빨리 닫힌다는 우려에 성장주사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장모씨는 “치료받는 중에도 키가 10㎝ 컸다”며 “여아는 초경시기 때문에 서둘러 하던데 안전성이 입증이 안 됐을 뿐더러 건강이 우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5~8세 같이 더 어린 경우엔 고민이 커진다. 어리다보니 주사바늘 자체를 무서워해서 피하거나 아직 너무 어려 약물 투여가 부담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가 잘 때 몰래 성장주사를 놓는, 일명 도둑주사를 놓기도 한다. 일각에선 성장호르몬 결핍이 아니면 그렇게까지는 안 하고 싶다는 의견도 있다.

지나친 교육열, 잦은 스마트폰 사용 등 환경적 요인이 3종 세트를 부추기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9세 이하 근시환자 수는 2017년 74만7181명에서 2021년 75만8464명으로 1만1283명 늘었다. 초중고학생들의 치아 부정교합 비율은 같은기간 16.91%에서 20.09%로 3.18%포인트 늘었다. 박소연 교수는 “진화론적으로 최근 두상 형태가 바뀌고 있긴 하나, 실질적으로 딱딱한 것을 씹지 않아 저작근 발달이 더뎌 뼈가 제대로 지탱하지 못한 탓도 있다”며 “식습관 등 올바른 생활태도부터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10대 중 절반은 일주일 중 30분도 채 안 움직인다. 지난해 10대 생활체육(일주일 1회 30분이상) 참여 비율은 52.6%으로 지난해(55%)보다 더 줄었다. 해외에선 초등교육에서부터 체육시간 비중을 늘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초등교육에서 ‘전체 필수교육과정 중 체육시간 비중’은 2015년 8%에서 2022년 10%로 늘었다. 한국은 7%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생활습관 변혁을 강조했다. 모두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어서다. 박신혜 서울성모병원 소아안과 교수는 “안경이든, 드림렌즈를 착용하건 그건 본인의 선택사항”이라면서도 “무엇을 하든 근본적으론 시력을 보전하는 생활습관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드림렌즈는 착용 후 수면만 취하면 효과가 있는 게 아니라 일정시간 충분한 숙면이 병행될 때 유효하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안문배 교수는 “학원을 다니느라 어떻게든 짬을 내 성장주사를 맞으면서 새벽 2시에 잔다는 건 아이러니하지 않나”라며 “일찍 자면 열심히 안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3종세트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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