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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채 발행 늘고 부동산 PF 부실 여전…또 돈맥경화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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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호 13면

레고랜드 사태 1년, 채권시장 진단

지난해 9월 이후 은행들의 고금리 예금 만기가 도래하면서 대출 금리도 상승세다. 사진은 한 은행에 붙은 대출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이후 은행들의 고금리 예금 만기가 도래하면서 대출 금리도 상승세다. 사진은 한 은행에 붙은 대출 관련 현수막. [연합뉴스]

국고채 금리가 지난해 10~11월 수준으로 회귀한 가운데, 지난해 터진 ‘레고랜드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시 채권 가격이 치솟고, 자금줄이 막히면서 기업들은 ‘돈맥경화’에 허덕였다. 부동산 부실이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으로 파급될 우려에, 자금시장이 사실상 멈춰 섰던 혼돈의 시기였다. 그로부터 1년, 한파가 다시 몰아치고 있다. 글로벌 긴축 영향으로 가뜩이나 얼어붙고 있는 시장에 레고랜드 사태의 ‘후불 청구서’가 속속 도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사태를 전후해 금융권이 지난해 9~11월 고금리로 조달한 116조원 규모의 예·적금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 은행권의 정기예금 재유치 경쟁으로 조달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는 데다, 은행들이 만기가 돌아온 예금을 돌려주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려 시중 자금을 끌어당기면서 전체 채권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글로벌 긴축 기조로 인한 금리 급등, 환율 상승까지 그때와 닮은꼴이다. 여기에 뇌관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인낸싱(PF) 연쇄 부실 그림자는 더 짙어지는 모양새다. 금리가 뛰고, 은행채·한국전력채권(한전채) 등이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일 경우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돈맥경화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무디스, 한국 부동산 PF 부실 확대 경고

레고랜드 사태는 지난해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기업 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시장에선 이를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채무불이행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시장은 미국 등 주요국의 금리 인상으로 이미 돈줄이 말라가는 상황이어서 큰 혼란이 야기됐다. 채권시장은 전례 없는 지자체의 채무보증 거부에 패닉에 빠졌다. 지방채의 신용이 와르르 무너지며 회사채의 발행이 연쇄적으로 와해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신용등급이 최고등급(AAA)인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도 채권 발행에 실패하면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시장이 혼돈에 휩싸이자, 시중 자금은 안전한 ‘고금리 예금’으로 대거 피신했다. 은행채 금리는 지난해 10월 연 5%를 돌파했다. 레고랜드 사태 전후 3개월(2022년 9~11월) 정기예금 유입액은 100조원을 넘어섰다. 9월 32조5000억원, 10월 56조2000억원, 11월 27조7000억원이었다. 대규모 ‘머니무브’가 일어난 것이다. 직전 3개월(2022년 6~8월) 정기예금 월평균 유입액은 20조원대에 불과했다. 이에 놀란 정부가 레고랜드 사태 25일 만에 50조원이 넘는 긴급자금대책을 마련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 24일부터 2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가동키로 하고, 만기 도래한 회사채(AA- 이상)와 여전채(A+ 이상), CP·전단채(A1)를 매입했다.

돈줄이 말라가는 시장에서 블랙홀처럼 자금을 빨아들인 은행채와 한전채는 발행 규모를 줄이도록 했다. 이후 신용도가 높은 우량채권 위주로 시장엔 온기가 퍼져갔다. 한때 수급불안으로 6%대 중반까지 올랐던 한전채 3년 금리는 연말이 가까워지며 4%대로 내렸다. 회사채도 AA 이상의 우량등급을 중심으로 안정세를 찾아갔다. 레고랜드 사태 직후 5.7%까지 치솟았던 3년 만기 AA- 등급 회사채 금리는 그해 12월 5.2%대로 하락세를 보였고, 올해 3월에는 4%를 밑돌기도 했다.

이처럼 유례없는 충격을 줬던 레고랜드 사태가 1년을 맞으면서 채권시장은 다시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이달 금융당국은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을 전격 폐지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레고랜드 건설자금 지급보증 거부 사태 이후 채권시장의 안정을 위해 은행의 채권 발행을 만기 물량의 100~125% 선에서 제한해왔다. 그러나 100조원이 넘는 만기 예금 재유치 등을 두고 과도한 수신 경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이달 전격적인 해지를 결정했다.

당국의 규제 완화와 맞물려 은행채 발행은 슬금슬금 늘어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 순발행액은 4조70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전월(3조7794억원) 대비 24.35% 늘어났다. 은행들은 레고랜드 사태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5월 한 달 제외) 줄곧 은행채 순상환 기조를 이어왔지만, 최근 태세를 전환한 것이다. 이는 은행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 시장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한전채도 다시 등판했다. 한전은 지난달 3개월 만에 채권 발행을 재개했다. 한전은 지난달 2년 만기 3100억원, 3년 만기 1900억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한전은 지난해 자금쏠림 현상의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채권 발행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최근 유가 급등과 대규모 영업적자를 고려할 때 재정 안정화가 시급한 한전의 채권 발행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은행채·한전채가 다시 시장에 등판하면서, 회사채 시장은 움츠러들고 있다. 우량채인 은행채·한전채 발행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위험이 있는 회사채 등의 수요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 올 상반기 17조3142억원에 달했던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하반기 들어 확 쪼그라들었다.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늘어나면서 7월 이후 회사채 순발행액은 마이너스(-) 추세다. 7월 -1조2627억원, 8월 -260억원, 9월 -1454억원으로 순상환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회사채가 시장에 외면받으면, 기업들은 수요를 끌어오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금리를 더 올려 수요를 충당해야 한다.

기업들의 발등엔 이미 불이 떨어졌다. 시장은 이미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를 다시 떠올리면서 금리가 상승하는 추세다. 비우량 등급인 BBB-급의 회사채(무보증/3년물) 금리는 4일 11.281%까지 치솟으며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한 달 전인 지난달 1일 금리는 10.865% 수준이었다. 수년간 10%대에 머물던 BBB- 등급의 회사채 금리가 11%를 넘어선 것은 레고랜드 사태 직전인 지난해 9월 23일이었다. 이후 올해들어서는 다시 안정세로 돌아서며 줄곧 10%대를 유지해 왔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되며 시장을 위협하고 있고, 국내 자금시장 경색의 뇌관으로 꼽히는 부동산 PF 등 부동산 부실 우려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3일(현지시간) 미국 국채금리는 최고 연 4.81%로, 2007년 8월 이후 16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뒤 국내 금리도 덩달아 폭등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4일 4.351%를 기록하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원화 가치가 급락(환율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상저하고’와 달리 향후 경기 흐름이 악화하면 기업들의 자금난은 가중될 위험이 매우 크다.

취약 부분 유동성 투입 다각 준비해야

지난해 레고랜드 개발을 맡은 GJC의 회생 신청으로 채권 신용도가 폭락했다. 박진호 기자

지난해 레고랜드 개발을 맡은 GJC의 회생 신청으로 채권 신용도가 폭락했다. 박진호 기자

이미 시장에선 건설사들의 줄도산을 우려하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8월 서울 노른자위 땅인 용산에서 진행 중이던 상업시설 개발 관련 50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PF 전 대출) 연장이 무산되고, 수천억원대 강남 호텔 사업마저 차환에 실패하면서 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다. 올해 들어 범현대가의 HN Inc와 시공능력평가 100위권인 대창건설에 이어 시공능력평가 113위의 신일까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부동산 부실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3일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지속하는 만큼,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과도한 시장 쏠림 현상 등이 발생할 경우 상황별 대응계획에 따라 시장안정조치를 신속히 시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부동산 PF 부실 확대를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달 26일 무디스는 “증권사 등 한국 비은행 금융사들의 PF와 관련해 PF 대출에 대한 자산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증권사의 PF 부실 위험이 심각하다. 지난 상반기 국내 증권사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17.3%까지 급등했다. 정부도 부동산 PF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려 40조원을 부동산 PF발 돈맥경화 완화에 쏟기로 했다. 정부는 추석연휴 직전인 지난달 2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국민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통해, 금융지원 규모를 기존 20조원에서 40조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시중 금융기관도 지원에 동참한다. 하지만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지원으로 부동산 부실의 노출을 잠시 미뤄놓는 수준이어서 부동산 침체가 이어지면 손실이 불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전문가들은 당장 제2의 레고랜드 사태가 발발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도, 위험이 점점 시장 전체로 전이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직후 금융시장 및 자본시장 위험요인 점검 보고서를 내놨던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해에는 레고랜드라는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이벤트 발생이 시장을 위협하는 트리거(방아쇠)가 됐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신용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시 보고서에서 그는 레고랜드는 트리거일뿐, 급격한 금리 인상과 적자 해소를 위해 채권을 대거 발행한 한전, 규제비율 준수를 위한 은행채 발행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이미 자금시장이 얼어붙던 상황이었다고 진단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레고랜드 사태 직후 정부는 유동성 공급 등으로 적절히 대응했지만, 레고랜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 자체는 충분히 제어되지 않아 위험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물가를 잡기 위한 점진적인 금리 인상과 더불어 취약 부분에 대한 유동성 투입 방안을 다각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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