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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안꾸' 스타일, 소리없이 강한 '스텔스 럭셔리' 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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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호 18면

올 가을 유행 ‘올드 머니 룩’  

올 가을 패션 트렌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Y2K 가고, 올드 머니 룩(old money look) 왔다’이다. Y2K 스타일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까지 유행했던 스타일로 배꼽이 보이는 짧은 상의, 엉덩이까지 흘러내리는 힙합 바지, 머리 두건, 찢어진 청바지, 가슴 한복판에 큼지막하게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메이크업 스타일도 눈밑을 시커멓게 칠하는 세기말 분위기의 스모키 화장이 유행했다.

반대로 올드 머니 룩이란 대대로 부를 이어온 ‘금수저들’의 패션 스타일을 이르는 말로, 어려서부터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들만 보고 자란 이들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일컫는다.  비슷한 말로는 ‘조용한 럭셔리’가 있다. 영어로 조용하다는 의미의 ‘콰이어트(quite)’ 또는 ‘스텔스(stealth)’를 사용해 ‘콰이어트 럭셔리’ ‘스텔스 럭셔리’라고 쓰기도 한다. ‘스텔스 럭셔리’는 소리 없이 조용하지만 효과는 강력한 스텔스기를 빗댄 표현으로도 쓰인다. 이 모든 표현의 핵심은 대놓고 ‘나 명품 패션이야’ 드러내는 로고가 없어도 아는 사람은 알아보는 고급스러움이다. MZ세대 신조어로 말하면 ‘꾸안꾸(꾸미지 않은 것처럼 꾸민)’ 스타일인데, 이를 위해선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울 카디건 판매 작년보다 2060% 늘어

지난 2월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뉴시스]

지난 2월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뉴시스]

드라마 ‘부부의 세계’ ‘밀회’ 등에서 배우 김희애 의상을 디렉팅하면서 고급스러운 패션 스타일을 제안했던 정윤기 스타일 디렉터는 “눈에 띄는 화려한 컬러나 문양·로고 없이 언제 입어도 우아하고 심플한 멋을 낼 수 있는 클래식 또는 타임리스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조용한 럭셔리’를 위해 옷장 안에 기본적으로 구비해야 할 아이템으로 꼽은 옷들은 다음과 같다. “옥스퍼드 소재로 만든 기본 디자인의 화이트 셔츠, 라운드 또는 V 네크라인의 케이블(일명 꽈배기 문양) 니트 스웨터&조끼, 울 또는 캐시미어 카디건, 스트레이트 실루엣의 울 팬츠&청바지, 헤링본(청어의 뼈 모양 문양을 가진) 재킷, 네이비 컬러 블레이저, 검정 턱시도 재킷, 카멜 컬러 울 코트, 클래식한 디자인의 트렌치코트가 기본이며 이런 담백하고 심플한 옷차림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 토즈 드라이빙 슈즈, 버클이 로고로 장식된 벨트, 무릎까지 오는 부츠, 블랙 타이 등의 액세서리가 필요하다.”

종합해보면 ‘조용한 럭셔리’의 첫 번째 조건은 ‘좋은 소재’다. 패션 업계에서 좋은 소재를 꼽을 때 우선 거론되는 것은 캐시미어와 울이다. 실제로 젊은 층에서 인기 있는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가을 시즌을 앞두고 아우터 품목에서 ‘울 소재 카디건’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에이블리의 8월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 내 카디건 품목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21배 이상(2060%) 늘었다. 특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거래액은 14.5배(1350%) 증가했고, 작은 크기의 하트 모양 로고로 유명한 꼼데가르송의 거래액도 4.6배(365%) 증가했다.

벨기에 왕실이 사랑한 가방 브랜드 ‘델보’. [사진 델보]

벨기에 왕실이 사랑한 가방 브랜드 ‘델보’. [사진 델보]

두 번째 조건은 군더더기 없이 기본에 충실한 심플하고 우아한 클래식 디자인이다. 남녀 모두에게 기본 디자인의 화이트 셔츠는 필수 아이템. 에이블리가 집계한 아이템 중 해외 프리미엄 프랜드 내 셔츠 품목 거래액은 8월 전년 동기 대비 68배(6370%) 증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올드 머니 룩의 대표 브랜드로 꼽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사진 각 브랜드]

올드 머니 룩의 대표 브랜드로 꼽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사진 각 브랜드]

패션잡지 ‘보그 코리아’의 신광호 편집장은 ‘조용한 럭셔리’를 위한 세 번째 조건으로 중성적인 분위기의 ‘뉴트럴 컬러’를 꼽으며 “블랙 앤 화이트는 기본이고 여기에 그레이·베이지·카멜·골드를 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 편집장은 네 번째 조건으로 클래식한 명품 시계를 포인트로 활용할 것도 추천했다. “크림색의 여성스러운 블라우스를 입더라도 매니시한 블랙 팬츠를 매치하고, 화려한 컬러의 보석 반지나 목걸이보다는 까르띠에 또는 파텍 필립 같은 브랜드의 클래식한 명품 시계 하나를 차는 것이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조금씩 몸을 움직일 때마다 손목 위에서 반짝이는 클래식 명품 시계의 존재감은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이부진·케이트 미들턴 등 대표 인물

영국의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 [로이터=연합뉴스]

영국의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 [로이터=연합뉴스]

또한 신 편집장은 다섯 번째 조건으로 “풍성하고 윤기 나는 헤어 스타일과 피부 톤”을 꼽았다. 예를 들어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만 보더라도 의상은 대부분 검정·회색·베이지 등의 무채색으로 단조로운 톤을 유지하지만 머리 모양만큼은 늘 풍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스타일이야 말로 진정한 올드 머니 룩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조용한 럭셔리’ ‘올드 머니 룩’의 정석을 보여주는 인물로는 누가 있을까. 따라하기 쉬운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스타일 연출은 훨씬 쉬워지는 법. 국내에선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을 들 수 있지만 이들의 사생활은 쉽게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패션 스타일을 관찰하기 어렵다.

최고급 소재로 유명한 브랜드 ‘로로피아나’. [사진 각 브랜드]

최고급 소재로 유명한 브랜드 ‘로로피아나’. [사진 각 브랜드]

이 질문에 정윤기 스타일 디렉터는 영화배우 다이안 레인과 영국의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을 꼽았다. “다이안 레인은 영화 ‘언페이스풀’ 등을 통해 중년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선보인 바 있고, 케이트 미들턴은 로열 패밀리의 정석이라 부를 만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신광호 보그 코리아 편집장은 영화 ‘타르(TAR)’ 속 주인공을 꼽았다.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의 욕망과 굴곡을 그린 영화로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주인공을 연기했다. “영화 의상을 맡은 비나 다이겔은 ‘누구도 그녀의 옷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게 목표였다’고 했지만 개봉 후 주인공의 의상은 ‘우아할 뿐 아니라 강력하다’는 평과 함께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 내내 케이트 블란쳇은 완벽하게 균형 잡힌 버튼다운 검정 재킷, 머플러처럼 등에 두른 캐시미어 카디건, 에르메스 버킨 백, 롤렉스 시계 등을 매치한 차림으로 튀지는 않지만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스타일을 선보이며 패션계를 사로잡았는데, ‘조용한 럭셔리’를 위한 교과서라 할 만하다.”

이 외에도 업계에선 영화 ‘위대한 유산(1998)’ 속 의상으로 이미 90년대부터 우아한 럭셔리 룩으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귀네스 팰트로를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주자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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