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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설립 24년간 '0'…거리 나온 1000명 "지방 의대 신설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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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북 안동시 원도심 일대에서 시민 1000여 명이 국립의대 신설을 촉구하는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가해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지난 4일 경북 안동시 원도심 일대에서 시민 1000여 명이 국립의대 신설을 촉구하는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가해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지난 4일 오후 경북 안동시 원도심 일대. ‘위대한 시민의 힘으로 의과대학 유치하자’ ‘국립의과대학 유치하여 새로운 안동 건설하자’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든 주민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비슷한 내용이 적힌 붉은색 손팻말도 각자 하나씩 손에 들고 있었다.

이들이 나선 집회는 ‘국립의과대학 유치 범시민 궐기대회’였다. 안동시 주민자치협의회와 안동의료원·안동상공회의소·안동대학교 등 지역 기관·단체에서 1000여 명이 동참했다. 앞서 지난달 9일에도 안동에선 의대 신설을 촉구하는 범시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안동 시민이 한 달 간격으로 범시민 궐기대회를 연 것은 의사 부족 등으로 인한 지역 의료 공백이 심해지고 있어서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권기창 안동시장은 “경북은 ‘치료가능 사망률(효과적인 치료가 이뤄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망 비율)’이 높고, 의사수·공공병원 설치율 모두 전국 평균 이하인 의료취약지”라며 “반드시 국립의대를 설립해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안동서 “국립의대 신설”요구, 1000여명 거리로 

실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내놓은 ‘지역 의료격차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안동이 속한 경북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1.39명(전국 평균 2.18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16위였다.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 사망률도 전국에서 5번째로 높다.

지난 4일 경북 안동시 원도심 일대에서 시민 1000여 명이 국립의대 신설을 촉구하는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가해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지난 4일 경북 안동시 원도심 일대에서 시민 1000여 명이 국립의대 신설을 촉구하는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가해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안동시

의대 신설을 요구하는 지자체는 안동만이 아니다. 전남과 경남, 충남 등 비수도권 지역 상당수가 의대 신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역을 떠나 영호남이 손잡는가 하면, 지역 국립대학이 연합해 ‘의료인력 확충’에 한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지난달 4일 국회에서 정태주 안동대 총장, 송하철 목포대 총장, 박병희 순천대 의대설립추진단장과 함께 ‘의료 최대 취약지 경북·전남 국립의대 설립 촉구’ 대정부 공동 건의문을 발표했다.

영호남 손잡고 의대 설립 촉구 공동건의문

경북도와 전남도는 공동 건의문에서 “경북과 전남 450만 도민은 오랜 세월 생명권과 건강권을 박탈당하며 수많은 불편과 위험을 감내해 왔다”며 “지역의 의료환경 개선과 부족한 의료자원 확보를 위해 지역 국립의과대학 설립에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지난달 4일 국회 소통관에서 '의료 최대 취약지 경북·전남 국립의대 설립 촉구' 대정부 공동건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정태주 안동대 총장, 송하철 목포대 총장, 박병희 순천대 의대설립추진단장 등도 참석했다. 연합뉴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지난달 4일 국회 소통관에서 '의료 최대 취약지 경북·전남 국립의대 설립 촉구' 대정부 공동건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정태주 안동대 총장, 송하철 목포대 총장, 박병희 순천대 의대설립추진단장 등도 참석했다. 연합뉴스

앞서 지난 7월 14일에는 목포대‧순천대‧안동대‧창원대‧공주대 등 5개 대학이 지역 국립 의과대학 신설을 보건복지부에 공동 건의하기도 했다.

현재 전국 40곳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1999년 이후 전국에 설립된 의대는 없다. 2006년 이후 18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7월 당정 협의를 통해 2022년부터 연간 400명씩 10년 동안 의사 4000명을 양성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보건의료 분야 노사정 합의를 넘지 못해 무산됐다.

억대 연봉 내걸어도 의사 못 구해

이런 상황에서 비수도권의 의료 공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용인병)이 전국 지자체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공공의료기관 222곳 중 44곳이 의사를 확보하지 못해 67개 진료과를 휴진했다. 특히 지방의료원 35곳 중 23곳에서 37개 과목을 휴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산청군보건의료원. 사진 산청군

경남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산청군보건의료원. 사진 산청군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이 3억6000만원의 연봉을 내걸고도 지원자가 없어 5차례 공고 끝에 어렵사리 내과 전문의를 구한 것도 지방 의료공백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강원 속초의료원도 올해 초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중 3명이 퇴사해 한동안 응급실 단축 운영이 불가피했다. 경북 울릉군보건의료원은 연봉 3억원을 내걸고 9차례 공고를 낸 뒤에야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 의사를 겨우 구했다.

의료계 “의료현안협의체 통해 논의해야”

의대를 신설하고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의료계는 보다 신중히 해야 한다고 한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의대 신설이나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우선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난 1 26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간담회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다섯 번째),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오른쪽 다섯 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 26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간담회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다섯 번째),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오른쪽 다섯 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와 여당, 의료계는 ‘9·4 의정합의’를 통해 의대 정원을 포함한 4개 주요 의료정책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정부·의료계 간 구성된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의대 정원 확대 움직임이 일자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9·4 의정합의가 지난 정부에서 이뤄진 합의라고 해도 정부가 한 약속은 신뢰가 중요하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존중되는 것이 마땅하다”며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계 협력을 위해선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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