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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Review] 4분기 전기요금 인상 급한데…‘동결’ 군불 때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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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박모(63)씨는 대전 서구에서 1500㎡ 규모 목욕탕을 운영한다. 목욕탕은 특성상 문을 여는 오전 5시부터 문 닫는 오후 11시까지 보일러를 가동한다. 손님이 없더라도 열탕은 43도, 온탕은 40~41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스 난방비 부담을 덜기 위해 10년 전쯤 전기보일러로 바꿨다.

그러다 올해 1월 전기요금만 1500만원 나온 ‘고지서 폭탄’을 맞았다. 박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기 전과 비교해 손님은 줄었는데 전기요금은 200만~300만원 가까이 더 나왔다”며 “그동안 전기료가 더 오른 만큼 올겨울 전기요금 내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인상폭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전력공사]

전기요금 인상폭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한국전력공사]

선선해진 10월로 접어들었지만, 4분기 전기요금 향방은 안갯속이다. 정부는 추석 연휴 민심을 고려해 발표 시기를 일단 뒤로 미뤘다. 누적 적자가 201조원에 달하는 한국전력공사(한전)의 경영 상황, 3분기에 동결한 전기요금 등을 고려하면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여러 외부 변수와 맞물려 정부 안팎에서 ‘전기료 동결론’이 유력하게 대두된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결국 한전의 모든 일들이 중단되고 전력 생태계도 붕괴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 못 올린 부분을 대폭 올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전날인 3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전기요금 인상 여부에 대해 “내년 4월 총선에 정권의 명운이 걸려있다. 그 전에 (전기요금 인상은) 안 된다”고 단언했다.

전기요금은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가 결정한다. 여당은 전기요금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당정 협의를 통해 전기요금 결정에 관여해왔다. 전기요금 결정이 경제보다 정치적인 영향을 받은 배경이다.

총선을 떠나 4분기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전기 사용량은 한여름인 3분기(7~9월)가 가장 많다. 겨울철인 1분기(1~3월)가 뒤를 잇는다. 최근엔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가스보다 상대적으로 싼 전기 난방이 늘어나는 추세다. 4분기 전기요금을 올릴 경우 1분기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친다.

올해 1~2분기 누적 전기요금 인상 폭은 킬로와트시(㎾h) 당 21.1원에 불과했다. 산업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올해 적정 전기요금 인상 폭(㎾h 당 최소 51.6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한전의 적자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며 “한전 경영 상황과 에너지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전기요금의 상당한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선 국제유가가 변수다. 유가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올해 6~7월 2%대까지 떨어진 물가가 8월 들어 3%대로 다시 오른 상황이다. 물가 잡기에 집중하는 정부로선 전기요금 인상은 쓰고 싶지 않은 ‘최후의 카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받은 지난해 겨울보다 에너지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며 “한전 경영 상황도 다소 나아진 만큼 국민 물가 부담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4분기 전기요금은 산업부가 지난달 말 기재부에 제출한 건을 부처 간 협의하는 단계다. 전기요금 결정을 좌우하는 국회 당정 협의는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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