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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추석에도 발달장애 가족 비극…16% "극단선택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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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9월 16일 오전 전남 영암군 영암읍 한 주택에서 일가족 사망 사건과 관련한 현장 감식이 이뤄지고 있다. 아버지는 지적장애 등 발달 장애를 앓는 20대 아들 세 명을 살해하고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지난 9월 16일 오전 전남 영암군 영암읍 한 주택에서 일가족 사망 사건과 관련한 현장 감식이 이뤄지고 있다. 아버지는 지적장애 등 발달 장애를 앓는 20대 아들 세 명을 살해하고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추석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60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숨졌다. 30대 아들은 지적 장애가 있었고, 아버지가 남긴 유서에는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은 병간호에 지친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3월엔 말기 갑상샘암에 걸린 50대 여성(경기도 수원)이 홀로 키우던 20대 지적 장애인 딸을 살해한 뒤 극단 선택을 시도하려다 실패해 경찰에 자수했다. 엄마가 써놓은 유서엔 “다음 생엔 좋은 부모 만나라, 미안하다”라고 적혀 있었다.

2020~2022년 발생한 발달 장애인 관련 극단 선택 사건들. 사진 '발달 장애인 생활실태 전수조사'

2020~2022년 발생한 발달 장애인 관련 극단 선택 사건들. 사진 '발달 장애인 생활실태 전수조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 연휴의 행복은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이번 연휴에도 비극이 되풀이됐다. 지난 3년간(2020~2022년) 이들의 극단적 선택은 알려진 것만 8건이다. 정부도 사안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실태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가 최근 나왔다. 전수 조사를 위해 선정된 3개 도시를 전수조사했더니, 발달장애 환자의 주 보호자 158명이 심각하게 극단 선택을 고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첫 전수조사 봤더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발달장애인 생활실태 전수조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 결과다. 이는 발달 장애인이나 그 가족의 생활 실태를 정부가 처음으로 특정 도시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그간 조사는 표본 조사 방식이어서 복지 사각지대 가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정부의 전수조사는 장애인단체의 숙원 사업 중 하나다.

복지부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다섯 달 동안 경기도 하남(대도시), 전북 김제(중소도시), 경남 창녕군(농어촌)에 사는 발달 장애인 2453명(하남 1080명, 김제 879명, 창녕 494명)과 그 보호자를 대상으로 1~3차에 이르는 대면 전수조사를 했다. 사망·전출·거절 등 여러 이유로 조사가 불가능한 가구가 있어서 응답률은 67.9%였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실제 극단 선택 시도했다” 답변도 9명

조사 결과, 발달 장애인 보호자 10명 중 2명꼴로 최근 1년 사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응한 보호자 981명 가운데 16.1%(158명)가 “지난 1년간 극단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 있다”고 답했다. 지역별로는 대도시인 하남이 21.2%(83명), 창녕 14.2%(51명), 김제 12.1%(24명) 순이었다.

이런 보호자 158명 가운데 18.4%(29명)는 극단 선택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 있다고 답했다. 이들(158명) 중 5.7%(9명)는 실제 극단 선택 시도를 한 적 있다고 했다.

보호자들은 경증의 우울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울척도가 평균 18.2점으로 우울증을 의심하는 수치(16점 이상)를 상회했다. 75세 이상 보호자에 대한 우울척도 점수가 19.4점으로 가장 높았고, 60~74세가 18.8점, 40~59세가 17.9점, 20~39세가 15.3점이었다. 연령대가 높은 부모일수록 우울 정도가 더 심한 것이다.

자녀 돌봄시간과 관련한 보호자들의 설문조사 표.

자녀 돌봄시간과 관련한 보호자들의 설문조사 표.

“24시간 일하는 것…너무 힘들다”

보호자가 어려움을 느끼는 가장 큰 위기는 발달 장애인 자녀에 대한 돌봄 스트레스였다. 일상생활 유지와 경제적 사유가 각각 1·2위로 꼽혔다.

보호자의 70.4%(691명)는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돌봄을 자녀에게 제공하고 있었고, 평균 돌봄 시간은 9.25시간이었다. 이 중 12시간 이상 자녀를 돌본다고 답한 경우는 24.9%(172명)에 달했다. 75세 이상이 10.4시간으로 가장 길었고, 60~74세 9.63시간, 20~39세 9.93시간, 40~59세 8.61시간 순이었다.

경북 울진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딸(27)을 키우는 김신애(55)씨는 “명절엔 활동지원사가 없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경북 포항에 있는 친정에 홀로 다녀왔다”며 “부모도 늙어가는 데 힘에 부치는 상황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발달 장애인 아들(12)을 둔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사실상 24시간 일하는 것이라 육체적·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내일은 꼭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강선우 의원은 “발달장애인 가족의 참사가 잇따르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부담을 여전히 가족에게만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호자가 겪는 심리적 우울감 등이 실제 통계로 확인된 유의미한 결과로 본다. 다른 지역으로 전수조사를 확대해 관련 정책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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