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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 들고 "장비 세워"…학교도 점령, 수억 뜯은 '건폭'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건설현장에서 공갈·협박으로 이권을 챙기다 기소된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 사범 3명 중 1명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폭 출신이 유령 노조를 만들거나 장애인 없는 장애인 노조를 만들어 채용을 강요하고, 공사 방해를 하지 않는 대가로 수억원의 금품을 뜯어간 사건들이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뉴스1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뉴스1

3일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건설현장 불법행위 수사에 착수한 뒤 지난달 21일까지 선고된 건폭 사범 115명에 대한 1심 판결 중 39.1%(45명)가 징역 10월~징역 2년6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55.7%(64명)는 집행유예를, 5.2%(6명)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전체 형사사건 1심 판결에서 실형 선고 비율이 7.0%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큰 수치다.

건설현장에선 ▶집회와 민원제기 등으로 공사 방해 ▶조합원 채용 강요 ▶노조 전임비·복지비 요구 등 명목으로 건설사·협력업체를 상대로 한 공갈·협박이 이뤄졌다. 일부 지역의 노조는 범행 대상 건설현장 물색, 채용 강요, 불법행위 신고 등 방해할 단계별로 역할을 나눠 맡아 범죄단체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올해 초 부산의 한 초등학교는 신축 공사 지연으로 개학 후 두 달 동안 학생들이 임시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한 건설노조 지회가 자신들이 보유한 장비를 시공업체가 사용해주지 않자 공사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레미콘 공급을 막으며 공사를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해당 노조는 부산에서만 4곳의 공사현장에서 장비 임대료 등의 명목으로 3억1100만원을 갈취했다.

지난해 12월 충북 충주에선 노조 본부장 A씨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던 노동자 B씨를 차에 태운 뒤 칼로 위협하며 작업을 중단하라고 강요한 사건도 있었다. A씨는 B씨에게 “내가 여덟을 묻은 놈인데 너 하나 묻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 “죽어봐야 (장비를) 세울 거냐. 회칼로 쑤셔야 하는데…”라고 협박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A씨는 지난 3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래픽=김현서

그래픽=김현서

‘가짜 노조’를 만들어 금품을 뜯어낸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노조 부·울·경 지부 본부장 C씨는 비장애인 5명으로만 구성된 ‘장애인 없는 장애인 노조’를 만든 뒤,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집회하는 등 공사를 방해했다. C씨는 “노조 발전기금으로 1000만원을 달라.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각종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협박하면서 3406만원을 뜯어냈다.

충북 청주와 진천에선 조폭 출신들이 노조를 만들어 약 8500만원을 갈취했다가 지난 8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조폭 행동대원 출신인 일당은 ‘노조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권유를 받고 노조를 설립,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자신들의 채용 요구를 거부한 공사장 앞에서 확성기를 틀고 집회를 하거나 레미콘 차량 진입을 막으며 금품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를 지낸 D씨는 철근콘크리트 하도급 업체 10여곳을 상대로 노조원 971명을 채용하도록 강요하고, 전임비 등의 명목으로 8290여만원을 받아낸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 6월 “건설비용 증가와 부실공사로 이어져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건전한 노동시장마저 왜곡했다”며 D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 관계자는 “폭력행위처벌법 위반, 공갈·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대부분 적용됐지만, 공사현장 물색부터 시위·협박까지 사실상 범죄단체와 다름없는 체계적인 범죄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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