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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홍의 시선

안보 근간 흔드는 초급 간부 처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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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국군의날을 맞아 경기도 연천군 육군 제25사단 병영식당에서 연 장병 간담회에서 “국군 통수권자로서 여러분들이 다른 것 신경 쓰지 않고 전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말은 장병들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다. 장병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물 샐 틈 없는 국방을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 첨단 국방 시대에도 전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건 사람이다. 우수한 병력이 높은 사기로 국방을 책임질 때 북한 위협을 억제하고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

초급 간부 지원율 역대 최저치
열악한 처우에 젊은 세대 외면
군 정예화 위해 처우 개선 시급

그런데 지금 군에서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군의 허리에 해당하는 초급 간부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육군 학군장교(ROTC) 제도를 운영하는 전국 108개 대학 중 절반인 54곳이 후보생 정원에 미달했다. 초급 장교 모집난에 직면한 육군은 62년 만에 처음으로 ROTC 후보생 추가 모집에 나섰으나 100명 정도만 지원했다. 올해 전반기 ROTC 후보생 지원 경쟁률도 역대 최저인 1.6대 1에 그쳤다.

사관학교와 육군 3사관학교, 학사장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2019년 각각 35대 1을 웃돌던 육사·공사의 남자 경쟁률은 2021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육군 3사와 학사장교 경쟁률도 절반 안팎 하락했다. 부사관 후보생 경쟁률도 2018년 4.5대 1에서 지난해 3.2대 1까지 낮아졌다.

이는 병사 복무 기간이 단축되고 월급은 크게 오르는 데 반해 초급 간부 지원책은 소홀한 데 따른 것이다. 초저출산 인구 절벽 시대와 겹치면서 초급 간부 지원 기피는 더욱 심해질 수 있다.

현재 병사 복무 기간은 육군 기준 18개월이지만, ROTC는 군별로 24~36개월로 최대 2배까지 길다. 또 내년 병장 월급은 165만원(봉급 125만원+내일준비지원금 40만원)이고, 2025년에는 205만원(봉급 150만원+내일준비지원금 55만원)까지 인상된다. 반면 내년 소위 1호봉은 기본급 183만원에 공통수당 평균 101만원을 합쳐 284만원이고, 하사 1호봉은 기본급 182만원에 공통수당 평균 91만원을 합쳐 273만원 수준이다. MZ 세대 입장에서는 복무 기간이 길면서 일은 많고 봉급은 많지 않은 초급 간부보다는 병사 복무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중위·소위, 중사·하사인 초급 간부는 병사들과 생활하며 부대 대소사를 챙기고, 유사시 병사들을 지휘해 적과 싸우는 군의 허리 역할을 한다. 이들의 사기는 병사들의 전투력으로 직결된다.

출산율 저하로 현역병 자원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전투력 유지에 큰 몫을 담당하는 초급 간부 지원율이 하락하고, 중도에 군을 떠나는 상황은 심각하다. 초급 간부의 자존심과 사기를 살려주는 대책이 절실하다.

국방부는 내년 국방 예산안을 짜면서 초급 간부 처우 개선 명목으로 5620억원을 요청했으나 예산 당국은 1998억원만 반영했다. 고강도 건전 재정 기조의 내년 예산 편성 방침에 따라 국방부 요구안이 대폭 깎였다. 북핵 대응 3축 체계 등 전력 향상이 최우선으로 다뤄지다 보니 초급 간부 처우 개선은 후순위로 밀렸다. 이로 인해 초급 간부들의 휴일·야간 수당 신설 예산이 전액 반영되지 않았다. 1만원인 평일 당직 근무비를 3만원으로 인상하는 요구안도 거부됐다.

지난 5월 국회 앞에서는 “군 간부 당직비가 평일 기준 시급 714원에 불과하다”며 수당 체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1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평일 기준 시급 714원은 최저임금 시급(올해 9620원)에 한참 못 미치고, 일반 공무원의 평일 당직비 3만원과도 큰 차이가 있다.

그동안 군은 초급 간부와 병사들을 소모품 취급하며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왔다. 정치인들의 인식 개선과 표 계산 등으로 병사 처우는 크게 나아지고 있으나 초급 간부들은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해 사기가 떨어지면 국방력 강화는 사상누각이다.

초저출산으로 병력 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장기 복무 인원을 늘려 병력을 정예화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이를 위해서는 초급 간부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아 군이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방부가 초급 간부 처우 개선을 위해 요구한 예산 5620억원은 내년 국방 사업을 조정해 예산 당국과 협의하면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윤 대통령과 국방부, 군 당국은 장병들이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전투력 개선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장병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